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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치게 하는 사람들

원망, 나를 스스로 유치장에 가둬놓고 미운 사람에게 열쇠를 건네는 일.

by 노르키

퇴근하고 현관으로 들어오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었다. 갓난아기를 껴안고 수유의자에 축 늘어진 내 지친 얼굴을 보고 굳는 남편의 표정에 화가 난다. 내게 고맙다고 매일 치하하거나 격려하지 않는 남편에게, 나의 고생을 알아주고 보상해주지 않는 이 세상에 화가 난다. 바쁘기로 소문난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빨라야 여덟 시에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그것도 무리해서 온 거란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미루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안다. 그는 바쁜 낮 동안에도 커피 한 잔의 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집에서 전력을 다해 아이를 먹이고 돌보고 재운 내겐 어떤 보상이 있나?


"아이가 자라는 걸 보는 자체가 선물이야. 아이에게 뭘 바라지 마라."

종종 이런 말을 하는 아빠에게 속은 기분이 든다. 지금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뭐란 말인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건강뿐이다. 문제는 내가 나 자신에게 바라는 게 많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봐 불안하다. 세상의 인정과 박수가 필요하다. 명성도 인기도 있으면 좋겠다. 하와이의 해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상상도 한다. 내 야심이 잘못인가? 그럼 유튜브가 내 마음의 소릴 들었는지 법륜스님 영상이 뜬다. "야심은 잘못이 없죠. 그건 욕심이 아니에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잘 됐으면 하는 게 욕심이지." 하지만 스님, 전 너무 졸리고 피곤해요.


이것은 다 핑계일 수도 있다. 나는 다시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고 남편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한다. 사실은 조금 더 혼자서 글 쓸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 둘을 낳고 집에 틀어박힌 것은 아닐까? 나는 막상 피곤해서 노트북도 켜지 못한다. 뉴스레터도 브런치도 방치해 놓았다. 출판사에 투고하지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글은 뭘까? 유축하듯이 내 몸 안에 있는 생각을 쭉 짜내어 보기 좋게 편집해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사랑받고 싶다고!! 그럼 엄마가 내게 말한다. "넌 실컷 사랑받았는데 왜 맨날 사랑 타령이야?"


내가 받았던 교육에 따르면, 나는 노력하기에 따라 힐러리도, 미셸 오바마도, 한비야도 될 수 있었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난 지금 아무것도 아닐까? ‘있어야 하는데 없다.’ 혹은 '됐어야 하는데 되지 않았다.'라는 결핍감이 몰려온다. (이력서는 넣지 않지만) 직장도 없고, (투고하진 않았지만) 내 글은 인기도 없고, (번아웃이 와서 퇴사했지만) 커리어도 중단됐다. 아무것도 없다! 물론 내게는 가족과 남편과 아이들과 거의 매일 연락하는 절친, 누워 잘 수 있는 집, 약 8년 동안의 직장생활로 모아둔 약간의 통장 잔고가 있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나이는 먹고 나만 뒤처지고 있다.


나는 잠시 달콤한 '왕년'을 소환한다. 몇 년 전까지도 나는 크롭티에 청바지를 즐겨 입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녔다. 몸에 딱 붙는 원피스도 좋아했다. 젊음을, 남자들의 관심과 친절을 받는 것을 스스로 기분 좋게 느꼈다. 까마득한 몇 년 전, 거리에서 "같이 곱창 먹을래?"라고 물었던 덱스 닮은 남자의 호감을 여유롭게 거절하던 여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때 그 여자와 지금 거울 속의 퀭한 여자가 과연 동일인물인가? 나는 뜨악한 눈으로 여자를 바라본다. 여름에도 나는 내내 집에서 늘어난 수유내복 차림이다. 배엔 짙은 갈색 선이 선명하다. 옆에서 본 엄마가 말한다. "넌 자연분만한 애가 배에 그 자국은 뭐야?"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게만 있는 것도 발견했다. 임신선.


"넌 아무것도 안 했잖아."

1년 반 전, 남편이 나와 말다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에 나는 분노의 짚불에 몸을 던져버린 광염소나타 그 자체가 됐다. 그땐 밤 열 시에 퇴근하던 남편을 대신해 나 혼자 아이를 돌보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고? 남편은 며칠 뒤에 사과했다. "그런 뜻이 아니야. 네가 글을 쓰고 작가가 되겠다고 했는데 투고도 하지 않잖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도 올리지 않잖아.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라고 말한 거야." 그 말에 나는 더 화가 났다. "내가 뭘 안 했는데에에?" 악 쓰는 내 안엔 잔뜩 위축된 여자아이가 웅크린 채 숨죽여 울고 있었다.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서.


동시에 내 기억은 빛의 속도로 10년 전 신입사원 시절 첫 상사에게 닿는다. 그녀는 늘 화나있었다. "넌 아무것도 안 하잖아. 다른 직업 알아볼 생각 없어? 월급만 축내는 멍청이. 너랑 일하기 진짜 힘들다. 꺼져. 너 치마는 왜 이리 짧아? 그런 남자는 왜 만나? 네가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그런 말을 퍼붓던 그녀는 내가 자기를 존경하고 떠받들어주기를 바랐다. 나는 그 사람의 퉁퉁하고 울그락푸르락한 얼굴을 보며 콧김 뿜어내는 멧돼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둘 순 없었다. 돈도 벌고 커리어도 쌓고 싶었다.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게 최고인 줄 알고 살았다. 그래서 '넌 아무것도 안 한다'는 그 말을 절대로 납득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화통 삶아 먹은 듯 침 튀기며 외치는 그녀는 곧장 나의 웬수가 되어버렸다. 나는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두려움 속에서 온 힘을 다해 회사 생활을 이어갔다. 그녀의 퉁퉁 부은 얼굴은 10년이 지나도록 내 머릿속에서 현재진행형으로, 4k 영상으로 재생된다. 이제 나도 헷갈린다. 내가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인가, 내가 만든 영화를 기억하는 것인가?


몇 년 전, 불경 읽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열 명 남짓 참석한 세미나였다. 참가자들은 불경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나처럼 어디선가 분노에 휩싸여 아직 풀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나누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화난 에피소드를 잔뜩 늘어놓았다. 키 큰 남자는 사관학교를 졸업한 인재였는데 흠 없던 인생에서 이혼이라는 시련을 겪었다. 마트에서 일한다는 아주머니는 남편의 폭력과 무심함에 여전히 분노했다. 꿀피부를 자랑하는 젊은 여성은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였다. 창립 멤버들에게 나가달라는 권유를 받고 C레벨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너무나도 달랐던 우리의 공통점은 하나, 내게 고통을 준 인간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현재진형행'으로 끊임없이 재생된단 사실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을 '용서'하거나 '단죄'해서 이 분노를 풀고 싶어 한다는 의지로 이글거렸다.


세미나의 호스트가 내게 물었다.

"그 상사에게 잘못한 건 없었나요? 갈등이란 혼자선 만들지 못하잖아요. 부딪히니까 생기는 거죠."

나는 항변했다. "제가 운 나쁘게 미친 나르시시트를 만나 가스라이팅 당한 건데요. 폭언을 듣고 있던 제가 잘못한 게 있나요? 그렇다면 따돌림 피해자들에게 잘못이 있단 얘기인가요?"

호스트가 재차 말했다. "정말 내가 그 사람에게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지, 그 사람 덕을 본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라는 얘기예요."


나와 그 상사는 안 맞았다. 그 사람은 정말 함께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나도 그 상사를 거슬리게 하는 어떤 언행을 했을 텐데 내가 한 것은 까먹어버려서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에 그 상사의 기괴한 웃음과 함께 내게 응답했던 말만이 떠올랐다. "너 나 엿 먹으라고 이러는 거야?" 그땐 저 피해망상에 쩌든 인간이 일이나 할 것이지 또 지랄이네, 하고 넘겼다. 그러나 세미나가 끝난 뒤엔 내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괴로웠던 경험을 건드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여자를 볼 일도 없는데, 나는 '너 아무것도 안 하잖아'라는 그 말을 붙들고 살고 있다. 이제 놓아주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잘 살고 싶어서다. 그 말에 붙들려 살면 내가 손해다. 발전도 없이, 글쓰기는 막힌 채로, 언제까지 남 원망만 하면서 살 텐가? 원망해서 그 사람이 망한다면야 백 번도 원망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원망은 나 자신을 스스로 유치장에 가둬놓고, 유치장 열쇠를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던져주는 꼴이다. 용서? 그런 것은 내가 하기엔 주제넘다. 내게 미안해하는 자도 없는데 용서라니 희한한 일이다. 내가 할 일은? 나는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좋은 기분을 나눠주고 싶다. 나도 남에게서 용기와 응원과 살아갈 힘을 받는 삶을 꿈꾼다. 하와이 한달살이도 좋을 것 같다. 아침에 파도소리를 들으며 아사이볼을 먹다가 비키니를 입고 몸을 잔뜩 태운다. 아, 이 생각을 하자마자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웃으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그냥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가슴에 묻어놓고 하하 웃는 대인배 흉내 정도는 내보고 싶어진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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