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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Apr 17. 2023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생긴 일

배려석에 앉아있던 건장한 아저씨가 내게 한 말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날도 지하철엔 사람이 많았다. 요즘은 자연스레 임산부 배려석을 찾게 된다. 겹겹이 서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도착한 임산부 배려석 앞. 배려석엔 건장하고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아저씨도 나처럼 짐이 많아 보이긴 했다. 아저씨 앞에는 커다란 마트 장바구니가 놓여 있었고, 장바구니 사이로 길쭉한 대파가 삐져나와 있었다. 그나저나 아저씨의 다부진 어깨를 보니 불쑥 화가 났다. 아니, 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거야? 


그러나 건장한 아저씨와 싸워봐야 나는 한 주먹거리일 뿐. 말씨름하다가 스트레스받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임산부 배려석엔 산모만 앉아야 한다는 법적인 의무도 없다. 내 신경만 곤두설 뿐이다. 만약에 상대방의 행동이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더라면, 따끔하게 짚었을 것이다. 즉, 내가 한 주먹에 날아갈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나는 조용하고 울적하게 출입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 어차피 금방 내리잖아...'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그때 누군가가 손으로 내 가방을 툭툭 쳤다. 배려석에 앉아있던 아저씨였다. 

“미안합니다. 내가 임산부 배지를 못 봤어요. 여기 앉아요.”


아저씨는 내 백팩에 달린 배지를 봤나 보다. "저도 곧 내릴 거라서 괜찮아요." "그래도 앉아요." 그리고 아저씨가 배려석을 가리켰을 때, 그 사이에 어떤 아주머니가 쓱 앉아버렸다. 아저씨는 난감한 듯 짐을 챙기고 두리번거리더니 열차 끝 노약자석을 향해 걸어갔다. 하... 미안했다. 아저씨도 비어있는 자리에 잠깐 앉았을 뿐이다. 몸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를 내게 비켜주려다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뺏겨버렸다. 


예전엔 배려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그저 밉고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일을 보니 다들 일부러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고 배려석에 앉아있는 게 아니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화날 일도 줄어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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