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지금 나의 머릿속에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들은 샴쌍둥이처럼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어딘가에 가서 보면 서로가 꼭 뭉쳐 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보려고 서로를 끌어당긴다. 그것은 그들의 권리이다. 그것이 실패일지라도 온전한 자기 삶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빈약한 몸을 나누어 가지면 모두가 죽고 한 얼굴에 몰아주면 다른 얼굴이 죽어 버린다. 가여운 내 얼굴들. 그래서 나는 그 어떤 이야기도 끝까지 쓸 수가 없다. 그냥 이렇게 어떤 것도 완성하지 않은 채 불면의 밤들에 정신없는 수다를 나누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성공이 없는 그래서 실패도 없는 유치해서 정다운 어린것들의 밤샘 수다.
귀찮아서 덜 닫은 덧창의 틈으로 하얀빛이 새어 들어왔다. 아침은 노랗고 늦은 오후는 하얀 신기한 이곳의 빛. 그러니까 나는 하루를 노력도 들이지 않은 채 절반이나 통과해 버린 것이다. 잘 타는 것과는 별개로 어떤 노력 없이도 어떻게든 미끄러져 가긴 하는 스키처럼 삶은 아찔한 내리막길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몇 개 있었던 거 같은데. 바닥에 가 닿아 더 이상 숟가락으로는 퍼지지 않는 커피를 통째로 들어 컵에 쏟아부었다. 커피 통 안에 갇혀 있던 티스푼이 제일 먼저 컵을 때려 귀가 먹먹해졌다. 씨발. 되도록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욕을 하고 있다. 병원을 가는 일이 무척 번거롭기 때문에 일종의 자가 치료를 하는 셈인 것. 누가 듣지도 않는데 욕을 하는 것을 보면 감정은 스트레스가 맞다. 스트레스는 독이고 행동은 그러니까 씨발 같은 말들은 일종의 설사인 것이다. 그래 그것은 일종의 자가 치료가 맞다.
핸드폰을 보는 것은 현실과의 접속이다. 현실은 가상의 세계로 몽땅 이주해 갔고 이제 이 땅에는 무지한 순수함만이 남아 있다.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아무 것도 듣지 않으면 슬플 일이 없다. 햇빛을 맞은 만큼 키를 키우다가 제 키를 못 이겨 쓰러지는, 쓰러져서 뿌리가 다 들려서 이제는 말라가는 그러다가 벌레가 들끓고 먼지가 되는 채소였던 적이 없는 파처럼 나도 ‘그’였던 적이 없는 것처럼 감당 못 할 만큼 큰 것도 되돌아가는 과정이라 힘이 들면 뿌리를 내어 보이고 누우면 되는 것이고 그것은 슬프기보다는 원하는 쪽에 더 가깝다.
나무는 욕망이 없다. 나무는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움직일 수 있기에 욕망이라는 오염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위치를 옮길 수 있다는 것 나에게 오는 것이 다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찾아 움직일 수 있다는 보잘것없는 가능성. 우리 내부의 박동은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강하게 나를 떨게 한다. 그래 이 심장은 움직이는 자를 위한 설계.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혹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이 가난한 축복은 곧 험난한 임무가 된다. 뭔지도 모르는 것을 찾는다는 것 그것만큼 바보 같은 불행이 어디에 있나. 이제 우리는 가상의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무한대로 움직인다. 시간은 중첩된다. 여러 시간대가 동시에 있고 심지어 과거와 미래도 다 한 자리에 박혀 있다. 그런 만큼 콩나물을 다듬는 늙은 엄마들의 쪼그라든 머리도 무한한 욕망을 꿈꾸고 그만큼 씻어낼 수 없을 만큼 오염되었다. 가당치도 않을 것들을 다 알고 또 너무나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있어서 그 모든 것들을 다 질투한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들. 오스카. 내가 보지 않을 개봉한 영화들. 잘 알지도 못한 사람들의 연애들도. 여행들. 라틴아메리카. 우승들.
그럼에도 난 오늘 또 핸드폰을 들어 보았다. 독에 찌든 식물은 독을 먹고 산다. 머나먼 곳까지 와서 굳이 질투를 한다. 안전한 곳에 앉아서 관음을 한다. 불이 꺼진 극장에 앉은 것처럼 그들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고 나는 그들을 더 선명하게 바라본다. 내가 걸어 나온 만큼 더 집중해서 자세히 그리고 끈질기게 바라보며 질투를 한다.
10⁻¹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