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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영 글쓰는한량 May 13. 2018

매일 블로그 해봤니?

좀 살아본 언니의 소확행-글 쓰는 한량

절대 하고 싶은 생각이 1도 없었다.
이제와 새삼 시작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일러스트 봄무릇


지난 겨울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21년 만에 리메이크되었다.

드라마를 보며 21년 전 대본과 어떻게 다른지 방송과 한 줄 한 줄 대사와 주요 장면들을 매일매일 옮겨 적었다. 더불어 그때그때 드는 나만의 단상들도 정리했다. 드라마 작가가 꿈이었던 나에게 노희경 작가의 작품은 험준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오아시스’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나고 나니 무려 30개의 대사와 글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매일 새벽, 어떤 대사를 고를까 대본집을 여기저기 뒤적이며 고민했던 흔적들과 그날의 대사에 맞는 다른 책, 여타의 작품들을 비교한 내용이 빼곡했다.

보기만 해도 뿌듯했다.

살짝 그냥 내버려두자니 너무 아까웠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의 작품을 좋아했지만 한 달 내내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필사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자 축복이었다. 매일매일 그녀의 대본을 보고 필사할 내용을 찾으며 나 역시 노희경 작가에 빙의된 듯 글에 아파하고 눈물지었다. 그때 문득 비록 드라마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이것들을 제대로 작품별로 정리해두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럼 어떻게 정리를 할 수 있을까.


노트북에 작품별로 디렉터리를 만들어서 정리할까. 그 방법이 좋긴 하지만 그때그때 필요한 문장이나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다음에는 모두 한글로 옮긴 후 출력을 해서 제본을 할까. 이것 역시 그동안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제본은 할 때뿐 절대 다시 꺼내보지 않는 기억이 남아있었다. 밤새 별별 생각들을 다 하다가 불현듯, 블로그가 생각났다. 블로그에 대본을 올리면 날짜별, 작품별 저장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수시로 꺼내볼 수 있고, 대사 속 단어 하나하나까지 검색이 가능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사실 블로그를 하라는 권유는 수없이 들어왔다.

남들은 두세 개쯤은 갖고 있는 블로그나 SNS를 단 하나도 하고 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다. 블로그를 해야 할 어떤 이유도, 필요성도 없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가 블로그에 쓸만한 이야기도 없었고, 딱히 쓰고 싶은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서툴렀던 나에게 블로그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그것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너도 나도 하는 블로그에 이제와 새삼 발을 들여놓고 싶지도 않았다. 또 다른 진짜 이유는 블로그를 안 해도 내가 먹고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절대 블로그를 안 해도 되는 이유는 수십 가지 아니 수백 가지라도 꺼낼 수 있었다. 블로그는 나에게 결코 하고 싶지 않은, 해서는 안 되는 그것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사정이 살짝 달라졌다.

.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드라마 대사를 한 달 내내 필사하고 정리한 내용을 어딘가에 저장하지 않는다면 다른 책들이 그렇듯 연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잊힐 듯했다. 밤새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 아침이 되자마자 오래전에 개설만 하고 아무 글도 올리지 않았던 블로그를 열어보았다. 아주 오래전 두세 개의 기사를 공유해 놓은 것뿐이었다 나는 그곳에 드라마 내용 및 대사를 하나하나 옮기고, 단상을 남겼다. 드라마에 대한 리뷰글도 올렸다.      


그런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쓴 드라마 리뷰글의 조회수가 엄청 올라가기 시작했고 (초보 블로거인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나를 이웃으로 신청하는 분들도 생겼다. 공감과 댓글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뜨였던 배우 염혜란에 관한 글은 점점 높은 조회수를 올렸다. 놀랐다. ‘아,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나처럼 노희경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구나. 나도 모르게 다음에는 어떤 글을 쓸까, 예전에 봤던 드라마들의 리뷰도 함께 써볼까라는 생각을 하며 갖고 있는 대본집을 이리저리 옮기며 예쁘게 표지를 찍기도 하고, 드라마의 명장면 등을 캡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블로그를 시작했고 약 5~6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나는 오늘도 매일 블로그에 나의 일상과 생각, 각종 기록들을 남긴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그토록 습관이 되지 않았던 매일 글쓰기 습관이 들었고, 관심분야에 대한 기록을 남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었다. 무엇보다 소소한 이웃들과의 소통도 블로그에 계속 글을 올리는 절대적인 이유가 됐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파워블로거’는커녕 이웃 수도 몇 명 되지 않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글쓰기와 책에 대한 글을 올리는 '그저 그런' 블로그 운영자다.


하지만 난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것,
그것은 이 작은 이탈들을 유혹하는 것이고,

기쁨의 되먹임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긍정하도록
촉발하는 것이다.

자유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게 되는
그 점증적인 고양을 위해

한 줌의 용기를 ‘선동’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유로운 삶을 향해
함께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를... ”     

    
- 『삶을 위한 철학수업』 (이진경 지음) 중에서     


블로그에 글을 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 자신이 이토록 자유로웠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그 어떤 때에도 느낄 수 없었던 삶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사회학자 이진경의 말처럼 ‘작은 이탈들을 유혹하는’ 블로그 글쓰기는 ‘기쁨의 돼먹음’을 통해 내가 다시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비록  잘 쓴 글은 아닐지라도 내가 쓴 글이, 내가 옮긴 드라마의 한 줄 대사가, 누군가에게 감동이고,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그 가슴 벅찬 자유과 기쁨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살면서 느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난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면서'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쓴다.   


@ 글쓰는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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