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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Mar 11. 2019

봄이 오나 봄? 가지치기의 계절이 돌아 오나 봄.

집에 돌아온 아들이 비행기에 봄을 싣고 왔다. 바야흐로 봄방학이 돌아왔다.

봄은 긴가 민가 싶게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어느 순간 파도처럼 정원을 덮친다. 초록이 넘실대는 남부의 정원은 낭만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 프리미엄이 붙은 300평 남짓한 뒷마당은 애초에 그냥 놀리라고 설계한 것이 아니다. 이 정도의 크기의 백 야드에는 자연석을 높이 쌓아 케스케이드라는 조그만 폭포가 흐르는 수영장과 핫텁을 설치하는 것이 이 동네의 스탠더드이나..... 그 캐스케이드와 수영장의 설치는 물론 지속적인 관리에 신경 쓰고 비용을 들일 자신이 없어, 수영장이 들어갈 공간을 순전히 잔디밭으로, 빈 땅으로 놀리고 있는 것이다. 가끔 아이들이 캠핑을 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형태의 정원을 만들었다 없애고, 또다시 다른 형태의 정원을 만들고 하면서 땅을 가지고 놀다가 담장을 따라 석류 무화과 레몬 복숭아 포도 등의 몇 가지 유실수를 빙 둘러 심어 놓고, 이제는 힘들어서 더 이상의 미니 정원을 만드는 수고는 접어 놓고 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뒷마당의 나무들은 손질할 때를 놓치면 우리를 망연자실에 빠뜨리는 무서운 초록 괴물로 변하곤 한다. 그래서 겨울이 떠나지 않고 우리 곁을 빙빙 돌고 있을 때쯤 미리 전기톱과 전지가위를 들고 분주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잘라 낸 오크의 가지들을 한 가득 싣고 동네를 떠나는 트럭들로 분주한 주말이다. 어느 산책길에 이웃집 나무를 정리하는 정원사에게 우리 집의 13년 된 오크 두 그루를 정돈해 달라고 주소와 연락처를 남겼다. 그날 당장 답을 주겠노라 해 놓고 아직까지 답이 없는 정원사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오전 운동 다녀오는 길에 봄의 훈풍을 느꼈다. 봄바람이 든 마음은 용감해져  "전지. 가지치기를 내가 하고 말겠다"며 2미터짜리 전기톱과 사다리를 꺼냈다. 굵은 가지를 대여섯 개, 작은 가지들은 수도 없이 잘라내었다. 잘라낸 가지들은 5미터가 족히 넘고 밑동은 우리 아들 허벅지만큼 굵다. 내가 운동용 캡과, 고글, 마스크로 무장하고 사다리에 올라가 전기톱을 휘두르는 사이 아이들은 잔디를 깎고 내가 잘라 놓은 가지들을  뒷마당으로 가져가 자르고 정리해서 컴포스트 박스에 쌓아 두었다. 아들 둘이 협심해서 움직이니 그 엄청난 작업이 두어 시간 안에 순식간에 해결되는 기적 같은 일이 있어 났다. 아이들에겐 재미도 없고 성가시기만 한 일일텐데 당연한 듯 도와줄 때는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


비행기에 봄을 싣고 돌아온 큰 아이는 지난겨울 다녀간 이후로 앙상했던 몸엔 15파운드가 더 붙어 제법 견고해 보이고 팔 근육은 눈에 띄게 굴곡이 잡혔다. 그 튼튼해진 팔로 잘라낸 나무를 후다닥 분해해 놓았다. 키는 작년보다 2cm가 더 커 6'1"가 되었다며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 너는 아직도 자라는 중이야. 이제라도 우유를 많이 마시렴..이라고 말해주었다. 아기 때는 한 번에 300ml씩 마시던 우유를 네 살 무렵부터 딱 끊고 입에 대지 않던 녀석이다. 이유는 베이비 동생이 마시는 거라 저는 마시기 싫었다는....  네 살짜리의 동생을 향한 은근한 자존심 세움이었다.


엔지니어링 전공인 아이는 대학 진학과 함께 수영을 그만두었지만 수영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은 프로선수 못지않게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방학이 되어도 쉽게 만날 수 없어 아쉬워했다. 하버드에 가서 수영을 하는 친구는 지난 겨울방학 때는 푸에르토리코로 전지훈련을 가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그나마 가까운 주로 진학한 친구들도 학교 훈련 일정이 빠듯하여 며칠간만 자유시간이 허락되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 매일매일 분초를 다투고 있고, 체구와는 상관없이 강력한 의지의 힘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말라깽이 잭슨은 입학하여 한 학기 만에 자기가 속한 주립 대학의 기록을 두 번씩이나 갱신했다는 소식을 알려오기도 했다. 잭슨 만세! 정작 우리 집 아이는 취미로 워터폴로 를 하고싶어 했으나 매일의 훈련이 부담스러워 훈련시간이 적은 럭비 팀에 가입했다. 그리고는 가늘 가늘한 체구를 키우기 위해 밥을 열심히 먹고 있는 중이다. 오늘 저녁엔 고등학교 동기 여학생인 제이드와 저녁을 오래오래 먹고 돌아왔다. 주로 네댓 명이 우르르 몰려서들 만나곤 하는데, 역시나 수영선수들은 봄방학을 즐기지 못하는 관계로 오늘 저녁은 둘이 데이트였나 보다. 사교성이 굉장한 이 여학생은 모든 남학생 여학생들과 두루두루 애착을 형성하는 친구다. 눈과 손끝이 야무진지 내 아들 녀석의 머리를 나보다 더 잘 깎는다. 디스트릭트 경기 전 주에 서로서로 머리를 깎아주고 염색을 하는 전통이 있어 남자아이들은 주로 삭발을 하고 간혹 모학으로 화살표를 만들어 놓거나 하는 장난을 치곤 한다. 제이드는 금발로 물들인 아들 녀석의 머리를 귀 아래를 삭발을 하고 정수리와 윗부분을 아톰처럼 만들어 놨는데, 놀랍게도 굉장히 스타일리시했다. 오늘 저녁 새삼스레 나를 웃게 만들었던 건, 제이드를 한국 이름으로 부르자면 레트로의 정취가 물씬한 '옥'이라는 사실이었다. 제이드를 생각하면 늘 옥이 아른거렸지만 제이드를 옥이라고 부를 생각은 왜 하지 않았던 것을까.... 그리고 그 시절 한국에선 왜 이름들을 그렇게 지었을까? 옥이, 진주. 보석 같은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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