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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Mar 09. 2017

 모네의 그림 같은, 봄이 내려앉은 호숫가 꽃길


봄은, 밤새, 비밀스럽게  뒷마당에 내려와 있곤 했다. 대기의 찬 기운이 옅어지는 아침이 계속되면 눈을 뜨자마자 밤이 은밀하게 내려놓은 봄의 기척을 확인하고자 뒷마당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겨울 몇 달을 아무런 기척 없이 지내던 살구나무 두 그루. 그 가지 끝에서 감돌기 시작한 단 한 점의 핑크빛을 발견한 날 아침은 감동으로 기억된다. 거르지 않고 해마다 생명이 전해오는 소식.

나 살아있어. 오래 기다렸지?

반가운 기척을 전해주던 살구나무 꽃망울은, 어느 사이엔가 나뭇가지마다 팝콘이 가득 붙은 모습으로 만개해 있었다. 드레스 자락을 겹겹이 접어 놓은 것 같기도 한, 유화로 그린듯한 살구꽃.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의 노랫말로 기억되던 고향의 봄이, 텍사스 남쪽 마을에도 당도한 시간.

   




내숭도 없고 아련함도 없이 단도직입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의 모양으로 피어난 봄 또한 있었다. 사랑이 열리는 "오클라호마 레드 오크"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는 가지마다 상기된 붉은 낯빛을 띄고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봄을 향해 달려온다. 집 앞의 호숫가 공원에 서서 해마다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활달한 성격을 가진 봄의 전령사다. 이렇게 빛깔도 모양도 예쁜 나무를 왜 한국에서는 밥풀떼기 나무라 부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밥풀떼기의 줄임말은 더 가관인 박테기. 박테기 나무라 한다. 가지에 꽃송이가 붙은 모양이 밥풀이 붙은 것 같아서라니.... 핑크빛 밥풀은 세상에 본 적이 없다. 나뭇잎은 완연한 사랑의 모양인데, 사랑나무라 해도 좋았을 것을.



 



아이 하굣길에 잠시 들러본 옆 동네 호숫가 들길에는 이리 화사하게 봄이 내려와 앉아 있었다. 오후 세시를 지난 시간의 노란빛 감도는 나른한 햇살... 텍사스의 주화는 봄이면 텍사스 넓디넓은 평야를 청보랏빛으로 물들이는 블루 버넷이라는 이름의 들꽃이다. 블루 버넷을 계량한 것으로 보이는 좀 더 여린 꽃무리가 호숫가 들길 가득 피어있는... 완연히 만개한 텍사스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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