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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Apr 21. 2017

히비스커스, 무궁화 이야기

조지아 오키프 여사가 그린 수 많은 꽃 그림이 있지만 그녀가 히비스커스를 그린 적이 있었던진 모르겠다. 접시꽃을 닮은 열정적인 히비스커스를 마주친 것은 텍사스에 내려온 첫 해였다. 접시꽃과 히비스커스는 매우 닮아 보이지만 실은, 접시꽃은 evening prime rose라 하는 달맞이꽃과 같은 종류이고, 히비스커스는 Rose of Sharon 이라고 불리는 무궁화과 인지라 알고 보면 전혀 다른 꽃이다. 영화관에서든 이런 시절 토요일 티비 방송시작 전이든 애국가가 흘러 나올 때, 배경화면에는 무궁화도 비쳤지만, 실은 접시꽃도 비췄던것을 기억한다. 그 영상을 만든 사람도 두 가지 꽃을 정확히 구분을 못했던 것이다.


색깔도 그러하거니와 일년내도록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히비스커스는 무척 정열적인 열대꽃이지만, 살짝 젖은 차거운 핑크톤의 무궁화를 주로 보고 자라온 나로서는 둘이 같은 꽃이라는 사실에 선뜻 동의가 가진 않는다. 국화임에도 한국에서는 무궁화가 아무집 앞마당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꽃은 아니었고, 국화인 무궁화의 핑크색은 화사하기 보다도 살짝 젖은 듯한 차거운 톤이라고 하기에도 형용이 좀 어려워,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애매함이 있는 꽃이었다.


오히려 기억에는 봄이면 야산에 지천으로 피어올라 온 산을 짙은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진달래가 각인되어 있다. 진달래를 입은 핑크빛 산의 병풍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홀린듯 바라보던  스무살의 기차 여행의 기억이 있다. 봄 날 기차 여행을 하면서 온통 분홍으로 일어서던 야산들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던 날을 기억한다. 연산홍과 철쭉의 짙은 색과는 달리 윤이나면서도 은은한 진달래의 색깔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에, 왜 우리 국화가 진달래가 아닐까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었다. 정작 무궁화를 자주 보았던 곳은 캐나다의 벌링턴에서였다. 정말 그랬었다. 많은 가정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정원의 꽃을 가꾸는 캐나다의 그 동네에서는 서너집 건너 한집마다 서늘한 핑크색의 무궁화가 담장을 이루고 있었다. 골목마다 무궁화의 물결이 잔잔히 일렁이던 봄 날의 그 바다같은 호숫가 동네 정경은 참 따듯한 풍경이다.  


앞마당의 히비스커스


단골 악기점에 입구에서 나를 반기던 산뜻한 노란 히비스커스



텍사스에서의 첫해, 우연히 눈에 띈 히비스커스의 화려한 자태에 반해 화분을 하나 현관 입구에 들여 놓았는데, 계절을 지나면서 꽃이 끊임없이 피고지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왜 무궁화라 이름붙였던지 이해가 되었다.  그토록 열심히 피고 지던 히비스커스는, 그해 겨울 새로 지어 이사 들어간 집에서 불어닥친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얼어버렸고, 이듬해 봄 내도록 혹여 다시 순이 나려나 기대하며 말라버린 나무를 파내지 않고 오래 기다렸으나 끝끝내 마른 가지만 여름을 맞았다. 언젠간 다시 들여야지 했었으나 삶은 너무 바빴고, 다시 흙을 파고 꽃을 심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힘들기도 했었다. 정원일은 알고보면 중노동이다.


앞마당의 오렌지색 히비스커스



어쨋건, 히비스커스와 보낸 첫해  그 시절,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키우던 화분을 조조록 앞마당에 모아 놓고, 현관 입구에 이젤을 놓고 앉아서 꽃그림을 그리며 오후 시간을 보낸 날도 많았다. 그맘 때, 큰 아이가 학교에서 그려온 조지아 오키프의 테마를 흉내낸 히비스커스에는 튼튼한 꽃술이 인상적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오키프의 추상 꽃그림들은 대체로 꽃술이 생략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던 나는 일순간 프로이트를 떠올렸으나, 실은 매우 사실적인 묘사였다. 현관에 두었던 히비스커스의 강렬한 색깔과 꽃술의 모양을 세밀하게 관찰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 찾아보니 오키프 여사가 그린 칼라 릴리는 유일하게 꽃술이 있는 그림인데 아마 이를 예제로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비슷한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오키프 여사는 감각적이고 강렬한 추상 꽃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나는 그녀가 후년에 그린 미니멀리즘의 풍경화를 좋아한다. 그녀가 남편이었던 알프레도 스피츨러와 사별후 뉴 멕시코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그려낸 여백 가득한 미니멀리즘의 세계는 눈과 마음을 오래 붙들어 놓는다. 최소한의 색과 형태가 연출하는 풍경 속으로 무심리 이끌려 들어가 한참을 거닐게 된다.  


Lake George in wood
Winter Road 1963 oil on canvas


Road past the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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