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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Jun 08. 2016

포도가 익어가는 유월의 뒤뜰

가장 깊은 포만감을 맛보는 일은 내 집에  기거하는 생명을 돌보는 일


희미하게 혼자서 음미하던 즐거움의 정체에 대해서 불현듯 확신을 갖게된 것은 마흔을 넘어서면서였다.

이름 뒤에 따라오는 타이틀을 수집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일보다는 내 집에 기거하는 아이들과 동물,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것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충만한 정신적인 포만감을 안겨다 준다는 사실을..


외국어로 공부하고 일하며,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정에 최대한으로 충실하기란 옆 돌아볼 틈 없는 속도전. 총력전. 아침마다 입안에 든 모래를 털어내며 눈을 뜨던 시간들. 과제와 보고서에 파묻혀 숨쉬기가 힘들었을 때 부엌으로 도피를 했고 그럴 때는 요리를 한다는 행위는 과제로부터의 일탈이자 달콤한 휴식이었다.

가사에 지칠 무렵에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읽고 쓰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몸은 하나인데 시간이라는 정해진 자본이 빠듯했기에, 그 긴 시간들은 카카오 농도 89%의, 단맛이라고는 없는 쌉싸름하고 텁텁한 다크 초콜릿을 먹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다크 초콜릿을 좋아한다 해도 농도 89%는 한번에 삼키기가 힘들다.

내가 조금 더 유능했더라면 숨쉴틈 없이 스스로를 몰아부치던 그 시간들이 밀크 초콜릿처럼 부드럽고 달기만 했을까?

 

마음이 개운한 날, 아침에 눈을 뜨면 발길은 뒤뜰로 향한다. 일과의 시작이라고 해봐야 나무를 둘러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일일 뿐이지만  소소한 뒷마당 식구들에게 밤새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변화를 살피고, 또 밤새 길게 돋아난 잡초를 뽑아주고 강아지도 정신이 반짝 들게 아침 공기를 쐬어준다. 식물들에게 하룻밤 사이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달라진 것이 있을까, 성장한 것이 있을까 나무들에 눈을 반짝 가까이 대고 초점을 맞춘다.




재작년 봄에 들인 캠벨종의 한국 포도나무를, 올해는 담장 옆 넓은 터로 옮겨 심어 가지를 본격적으로 훈련을 해주리라 생각하고, 뒤뜰에 만들어질 미니 포도밭을 디자인하며 설렌 겨울밤이 여러 날. 정작 봄 햇살이 들기 무섭게 솜털로 뒤덮인 아기 손바닥 같은 잎을 너울거리기 시작한 바람에 선 자리에서 다시 한 해를 나고 세번째 겨울이 오면 옮기기로 한 그 포도나무. 열린 포도송이가 참 예쁘다.



멀찍이서 바라보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새파랗던 포도송이가 오늘 아침은 색깔이 이상하다. 여름이 깊으려면 한참 멀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그러고 보니 유월이다. 숨이 차다.  

포도송이는 계절에 맞춰 당도를 높여가고 있는 중이고 아직도 늦봄 언저리를 서성이며 맴돌고 있는 것은 나뿐인가 보다.   




현관 앞에 오래 묵은 관목들을 잘라내고 새로 심은 수국 세 그루도 핑크빛으로 만개하여 계절을 만끽한다.

토양의 알칼리 농도에 따라 핑크에서 블루로 색이 변한다는 수국인데, 이 자리에선 언제나 핑크색 꽃을 피워올린다. 왠지 모르게 고향같은 꽃이다.




무화과와 석류나무가 담장을 이루다시피하고 있는 정원의 맞은편에선 하루가 다르게 그늘이 짙어간다.

저 짙은 그늘은 태양의 고도가 높은 시간에 마음이 쉬어갈 그늘을 보여 주지만,

나무를 닮은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과의 서늘한 대화의 자리 또한 마련해 준다. 자고 나면 돋아나는 나무의 잔가지들은 부드러울 때 잘라 주지 않으면 뻣뻣해기에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제멋대로 난 나무의 잔가지들을 정리하는 시간은

성인이 된 아이들의 모습이나,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엄마의 삶을 자연스레 그려보게 된다.

어느덧 할머니의 삶과 엄마의 삶, 그리고 자신이 살게 될 삶에 대한 관점을 세워가는 아이를 발견한다. 

너도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생각의 가지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구나 아가야. 

"엄마가 그러하였듯이, 나도 그렇게 스스로 살 수 있어요..." 라고 아이는 말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이야기가 나무 그늘 아래서 깊어간다.    



뒷마당의 레몬 나무를 손질하고, 레몬 꽃의 고혹적인 향이 마당 가득 퍼지는 아침을 맞이하고

텃밭에 허브를 심고 그것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 아이들이 커가는 길을 맑은 마음으로 관조하는 시간. 살아 성장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대견함과 감사함.  



© Yoon Hyunhee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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