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현희 Sep 15. 2016

가을이 오는 아침,  가드닝 하는 즐거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새벽, 공기가 제법 싸늘하여 무엇이라도 하나 어깨에 둘러야 할 정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여름 두 달이 그렇게 뜨겁더니 가을은 하루아침에 속행으로 온다. 지난봄에 심은 자목련은 여름의 뙤약볕에 잎이 타 들어가더니, 며칠 일삼아 물을 준 데다  비마저 며칠 내려준 뒤라, 금세 풋풋한 초록잎을 새로 내고, 놀랍고도 기특하게도 꽃송이 마저 두어 개 피워 올린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니, 크레이트가 아닌 티피에서 얌전히 자고 난 강아지가 부지런을 떨며 업 다운 기지개를 켜기에 커피 한잔 뽑아 들고 지체 없이 산책을 나선다. 대기가 서늘해지는 계절이면, 아침 산책길에 동네의 정원들이 유난히 눈에 자세히 들어온다. 정원을 열심히 가꾸어 산책길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세심한 정성을 가진 이웃들에게 고마운 마음이고, 그대들 덕분에 아침을 맞는 기분은 포만감 가득하다.  지난가을 태풍 소식이 있을 때, 동네의 몇몇 가정은 자신들의 오크 나무에 마녀를 장식함으로써 태풍의 위기를  유머러스하게 대처했다. 태풍은 오지 않았고, 마녀들만 강풍에 날려와 나무에 걸렸다.


        



        다소곳이 화분에 담겨 핀 풍성한 자줏빛 가을 국화를 마주하는 아침은 신선한 계절감을 선사한다. 요즈음은 기품이 더해 가는 몇몇 정원들이 눈에 띈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앞마당엔 라이브 오크 두 그루가 기본으로 심겨있고, 좀 더 풍성한 정원에는 오리알처럼 둥글고 흰 꽃송이를 다는 메그놀리아가 두어 그루씩 추가로 심겨있다. 또한 큰 나무들 아래를 서너 그루의 회양목 같은 관목들로 둘러놓았다. 집 정면 창문 아래는 크리스마스 때 많이 쓰이는 호랑가시나무를 심어 창문을 반쯤 가리도록 해 놓은 것이 이 동네 정원이 가진 기본적인 레이 아웃이다.  어느 경험 많고 솜씨 좋은 정원사의 손길이 어루만진 것인지, 몇 달 전부터 몇몇 가정의 정원들에서 발견되는 변화는 산책길을 더 기분 좋게 한다. 각개로 떨어져 심겨 있던 회양목이며 꽝꽝나무라고 하는 관목들의 가지를 솜씨 좋게 연결하여, 오크 나무가 나지막한 초록색의 담장에 에워싸여 있는 듯한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난다. 오크 아래는 예쁜 돌을 두르고 작은 화초들을 심어 색깔을 입힌다. 가정마다 각 다른 정원사팀들을 고용하지만, 이 정원팀의 남다른 솜씨는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일을 하는 사람들은 서너 명씩 팀으로 움직이며 요일별로 잔디를 깎고 나무를 손질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정원사를 불러 앞마당과 뒷마당을 대청소 하지만, 대부분의 소소한 정원일은 머리도 식힐 겸 해서 잠깐잠깐씩 내가 하는 편이다.


        지난가을, 그 정원사 귄터 씨와 동료들의 도움을 얻어 앞마당에 화단을 하나 더 만들었었다. 연중 꽃이 피고 지는 무궁화의 일종인 정열적인 열대의 색깔을 보여주는 히비스커스와 언제나 은은한 핑크빛 내 사랑 수국, 그리고 이른 봄을 위한 나일강의 백합이라고도 불리는 아가판터스를 심었었다. 그때 수국과 히비스커스와 아카판터스는 시기를 달리해 가며 앞마당을 빛내주었다. 수국은 자리를 좀 더 그늘진 곳으로 진작에 옮겨 주었고, 히비스커스는 무성해진 오크의 가지 덕분에 빛을 받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양지 식물인데 반음지에서 자라고 있는 셈이 된 것이다. 히비스커스를 옮길 수 없으니 오크 나무의 크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내도록 벼르던 앞마당의 십 년 된 오크 나무를 그저께 가지치기하였다. 지난봄, 일차로 가지를 솎아 주었지만, 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웃자라고 빡빡해진 두 그루의 나무는 집의 전면을 가릴 만큼 무성해져 있었다. 또 여름의 작열하는 생명력은 지난봄의 수고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나무들의 크기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기온이 떨어지면 무수한 누런 잎이 잔디를 뒤덮을 것을 생각하면, 미리 나무 가지를 잘라 주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큰 가지를 자르는 것은 전기톱의 힘을 빌리므로 큰 힘들지 않았으나, 포획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체조선수의 등을 가진 첼리스트 솔 가 베타의 근육으로 둘러진 팔과 등을 머릿속에 그리며, 손아귀의 악력을 기른다는 생각으로 전지가위를 들고 잘라진 가지들을 비닐봉지에 담기 위해 조각내고 분해하였다. 네 시간이 걸렸다. 차라리 네 시간을 첼로 연습을 할 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었지만, 이작한 일은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잘라낸 나뭇가지들을 대충 길이를 맞추어 추려 두어도 청소차가 당연히 담아 갈 것이었지만, 그러기엔 미안해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다하고 싶었다. 네 시간씩 나뭇가지를 분해하는 그런 짓은 이제는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 이제 집의 전면에는 창문이 시원하게 드러나 홀가분한 마음이다. 가지를 쳐 주었더니 날씬해진 탓에 나무가 더 커 보인다. 가지를 잘라내고 나니 서재로 난 창 밖으로 손에 잡힐듯 날아가는 구름이 한 눈에 가득 들어온다. 화들짝 반갑다.


  고국의 한가위 소식에 집안 분위기를 덩달아 바꾸어 보았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이 가을이 풍성하고 행복한 계절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https://instagram.com/p/BKcANbfAExX/




이전 09화 포도가 익어가는 유월의 뒤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