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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Feb 26. 2019

뒷마당 캠핑 - 고등학생들이 휴일을 보내는 모습

토요일 밤 외식을 마치고 작은 녀석은 아랫동네 한국타운까지 가서 공수한 호두과자 상자를 들고 친구집을 향했다. 주말이면 곧잘 친구네 집에 삼삼오오 모여서 영화를 보거나 각 주택 단지에 마련된 커뮤니티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참 느긋하고 평화로운 시절이다. 엄마가 일일이 따라다니며 케어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알아서 재미있게 노는 이런 시절이 올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었던 지난 주말. 아이들은 일요일 밤에 백야드 캠핑을 할거라고 했다. 휴일에도 새벽에 수영 연습을 빠질 수 없기에 집을 떠날 수는 없었던 아이들은 우리집 뒷마당에서라도 야생의 경험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침 전날 뒷마당에 나가 두 시간 동안이나 플라워 베드의 잡초를 뽑아 놓은 상태라 '우와 재미있겠구나 좋은 생각이야... '라고 응수할 수 있었다. 휴...


밤에 친구들과 캠핑을 할 생각에 아이는 낮동안에는 꼼짝 않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아기때 얼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순둥하고 환한 지미가 먼저 도착을 했다. 지미는 작년에는 우리집 큰 아이와  varsity에서 함께 수영을 했다. 큰 아이는 지미보다 순하고 착한 아이를 보지 못했다고 언젠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올해 수영팀 켑틴이 된 이 친구는 national air force academy에 지원 중인데, 시장과 상원의원의 추천을 받아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그 선발 과정은 입이 벌어질 정도로 흥미롭다. 고등학교 신입생이었을 때부터 시니어 형아들을 능가하는 190에 근접한 큰 키와 빠른 스피드로 곧 varsity 팀에 합류했던 아이다. 그런 지미가 초콜렛 푸딩을 한 상자 들고선 그 순딩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담고 들어오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좀 있다 들어온 두 녀석들 역시 지미 못지 않은 장신에 슬림한 체형을 가진 고등학교 2학년 생들이었다. 콜린이라는 친구도 목표의식이 무척 또렷한 뛰어난 아이라 꽤나 대화가 재미있는 친구였다. 우리집 둘째 아이는 고등학교 신입생 때는 수영을 하지 않았고 올해 처음 합류했다. 덕분에 varsity도 아닌 Junior varsity에 속해 있는데도 한 학년 위인 캡틴을 비롯해 varsity팀의 최장신 선수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뒷마당에서 캠핑을 하고 노는 친화력을 보인다. 신기한 녀석이다. 거실에 가득한 키다리들 사이에서 그들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우리집 둘째는 아기같아 보이기만 한다. 녀석들은 큰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근 조근 젊쟎게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목소리들이 아주 저음이라 더더욱 알아들을 수가 없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 사이의 화제가 무엇이었던지 알 길이 없다. 궁금했건만.... 이야기를 나누며 놀던 녀석들은 장을 보러 나간다며 하얀색 랭글러를 몰고 우르르 몰려나갔다. 작은 아이의 친구들은 구닥다리 하얀색 랭글러를 타고 와서 아이와 자전거를 싣고 주말 아침 라이드를 하러 떠나거나, 뒷마당에서 캠핑을 하러 찾아오곤 한다. 남자 고등학생들이 하얀색 랭글러를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역시 아직은 꼬마들이라 자동차 도식의 원형에 가까운 그 차의 모양을 친근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주관적인 감상으로는 아이들이 레고로 곧잘 만들던 자동차 (Lego car) 모양과 똑같다.


간식거리와 냉동피자를 사 와서 쿠깅을 하며 조용조용 놀더니 밤이 깊어지자 뒷마당에 나가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러고 놀 계획이라고 내게 미리 말해 주었기 때문에 부모가 간섭하면 패널티를 먹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음료수와 간식을 챙겨서 날라다 주긴 했지만 아이들은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것 같았다. 독립적인 녀석들 같으니라구.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내 방에서 나가지 않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다음 날 새벽 아이들은 각자의 스케쥴을 위해 새벽같이 떠났다. 여덟 시 무렵엔 전 날 저녁의 흔적조차 남지않고 집의 안 팎이 조용했다. 아이들이 참 순진하면서도 어른스럽게 노는구나. 아이들이 모여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재미있다. 비록 너무나 조용해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조자 알 수 없어도 말이다.


또 다른 한 무리의 키다리 고등학생들이 공휴일을 보내는 모습은 월요일 아침 요가 클라스에서 마주쳤다. 엄마들이 요가를 하는 시간, 역시나 콩나물처럼 가늘고 긴 고등학생 시니어 세 명이 들어왔다. 곱슬곱슬한 금발 위로 방울이 달린 귀여운 빵모자까지 눌러쓰고 반바지를 입고서 수줍은듯 '여기 우리가 참여해도 되나요?" 이러고선 들어와서 그 아이들은 일찌기 보지 못했던 에픽 롱다리 스트레칭을 선보였다. 장대처럼 큰 키와 대조되는 아기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한 남학생들이 엉거주춤 요가를 따라하는 모습은 클래스의 모든 엄마들과 강사들의 마음을 녹였다. 나를 모함한 엄마들은 그저 얼굴 표정과 눈빛으로만 '아이구 귀여워....아이구 대견해"를 발사하며 요가 시간 자주 들어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순하게 자란 아이들이 순하고도 침착하게 여가를 즐기는 모습은, 일상의 이른 새벽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꼭두세벽부터 차거운 수영장에 뛰어들곤 하는 역동적이고 치열한 모습과는 무척 대조적으로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한 이 아이들의 맑은 모습이 오래토록 유지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고요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치열한 학교생활을 하는 이 아이들의 미래가 무척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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