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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Feb 15. 2018

꽃과 사막의 고원이 있는 풍경: 조지아 오키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젊은 시절의 조지아 오키프

조지아 오키프(1887-1986)는 강렬한 색채의 추상적인 꽃그림과 미국 남서부의 풍경을 미니멀리즘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선보여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 화가입니다. 오키프의 추상화된 꽃그림들은 에로틱하면서 도발적인 이미지일뿐더러 강렬한 색채와 과장된 크기가 부담스러워서 왠지 선뜻 친해지기 어려운 그림들이었지요. 그런데, 미술관에 갈 때마다 그녀의 그림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림의 형태와 색상보다는 그림 너머에 있는 화가의 내면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191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뉴욕과 텍사스 그리고 뉴 멕시코를 오가며 활동을 하였던 그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부하고 평범한 소재들에 애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진부한 대상들의 소소하고 작은 모습들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는 관찰한 사물의 핵심은 그녀의 붓끝에서 도발적인 색을 입고 강렬한 에너지를 뿜으며 거대한 크기로 개화합니다. 시각장을 압도하는 크기로 추상화해 냄으로써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아 놓습니다. 길가 꽃들과 뉴 멕시코의 사막과 돌산의 마른 풍경을 섬세하게 훑어내던 그녀의 집중력과 대상의 본질을 담아내려던 그녀의 의지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요즈음에 와서의 일인데, 그것은 내 인식의 변화 때문이기도 합니다.  Nauture라는 단어는 물리적 세계인 자연을 뜻하며 동시에 사람이나 현상의 본질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그린 꽃과 뉴 멕시코의 풍경들은 그녀 자신의 본성이자 자연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삶은 예술과 완전한 통합을 이룬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지아 오키프 여사는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을 꽃으로 표현한 여인이라고 정의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나무라면, 그들을 기꺼이 즐길 수 있을 텐데... 
“I wish people were all trees and I think I could enjoy them then.” Georgia O’Keeffe

그녀의 상상은 기발하고 깜찍해서 나도 몰래 미소를 짓게 됩니다. 미술사가 Erin B. Coe는 오키프에 대해서 쓴 주목할만한 에세이에서 그녀의 초기 몇 년을 정원사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오키프 여사의 흙에 대한 친밀감( 애정) “an intimacy with the soil”을 특히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뉴욕주의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조지 호수의 스티글리츠 저택에 기거하던 시절, 그녀는 정원을 가꾸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꽃의 접사와 나무와 나뭇잎들 그렸습니다. 스무 점이 넘는 칸나와 페투니아, 양귀비 칼라 릴리 등을 줌인하여 관찰하고 그렸습니다. 이후 남서부의 사막 한가운데로 거쳐를 옮긴 이후에도 생명의 원초적 본질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정원을 일구고, 계속해서 꽃을 그려나갔던 것이지요. 


Dead Rabbit with Copper Pot, 1908



Petunia no 2. 1916
Blue Flower 1918



Light Iris 1924


Black Iris III.  1926


Two Calla Lily on Pink by Georgia O’Keefe 1928



Jack in the pulpit no V. 1934



Jimson Weed 1936


오키프의 꽃들, 그녀의  자화상


36인치의 거대한 캔버스에서 개화한 아래의 칸나와 양귀비는 그녀가 24세 연상의 사진작가 스티글리츠와 오랜 연애 끝에 법적으로 결혼을 하게 된 1924년에 그려졌습니다. 그녀의 개인적인 삶의 전후 사정을 모르고 보더라도 이 꽃은 만개한 사랑을, 그리고 사랑의 주체인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캔버스에 투영된 것은 칸나의 본질인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본질이기도 하지요. 꽃으로 표현된 그녀의 자아상은 그녀의 절대 지지자이자 남편이었던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여인로서의 개화였고 미국의 예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세겨넣기 시작한 화가로서의 화려한 개화이었을 것이리라 짐작이 됩니다.


Oriental Poppy, 1928                                                                                            Red Canna, 1924



오키프와 스티글리츠, 그들의 사랑


그녀가 미국의 미술계에 존재를 알리게 된 것은 1916년. 스물여덟 살에 그린 나팔꽃을 닮은 보랏빛 페투니아와 코스모스를 그린 그림이 52세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눈에 들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스티글리츠는 당시의 뉴욕 예술계를 이끌어가며 사진예술을 순수예술의 한가운데로 등단시킨 작가입니다. 그는 또한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 291을 통해 유럽의 피카소, 몬드리안, 마티스, 브라크의 미술을 소개하며 현대 예술의 본거지를 파리로부터 뉴욕으로 이끌어온 개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렌즈를 3-4 분간 장시간 빛에 노출시켜 사진을 그림처럼 보이도록 찍은 뉴욕의 거리 사진들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세련된 사진입니다.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방대한 양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깊이를 더해 가고 다양하게 변모해 갑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강력한 후견인으로 1916년 첫 전시와 1924년 두 번째 전시회이자 첫 개인전을 후원하였습니다. 이 기회들을 통해 조지아 오키프라는 이름이 현대 미국 예술계의 알려지게 되고, 결국에는 미국 현대 미술계의 가장 중요하고도 성공적인 미술가라는 평을 듣도록 후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후원인이 된 셈이지요. 스티글리츠는 그녀의 애인이었으며 결국에는 남편으로 법적 지위를 바꾸어가며 정신적인 지지자로서 긴 세월을 함께 하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게 오키프는 뮤즈였으며, 애인이었고, 그리고 두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초상화와 누드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는데, 1920년대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형태의 예술이었고,  이 일은 그의 작품 자체는 물론 세간으로부터의 오키프의 작품 해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손을 찍기를 즐겼는데, 그녀의 손을 찍은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은 2006년 소더비에서 147만 2000달러(약 15억)로 사진 경매가 최고를 기록합니다.

 

시대를 도발했을 그녀의 솔직한 그림들과 그녀를 모델로 한 스티글리츠의 사진전, 그리고 둘의 사랑이야기는 1920년대라는 시대상에 비춰보자면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그녀의 삶의 행보와 그림들은 비평가들과 대중들로 하여금, 동시대를 이끌어가던 프로이트의 세계관에 딱 떨어지는 해석을 제시하게 합니다. 그녀 자신은 프로이트적 세계관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부인하였으나, 누가 보더라도 그녀의 그림과 삶의 모습은 고스란히 프로이트의 프레임에 꼭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내가 그리고 있었던 것은 나 자신과 나의 삶이었단 사실을 내가 그 그림들을 그리고 있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이런 회고를 놓고 보면,  그녀가 그린 그림들은 무의식에 기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한 개인의 일생을 움직이는 동인이라고 가정했던 프로이트의 전제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매우 솔직한 그림들인 셈입니다.


Lake George 1922




  뉴 멕시코의 민둥산. 붉고 노란 흙으로 이루어진 산과 산 아래의 수풀들을 그린 그림들



오키프 전기의 그림 -조지아 호수, 꽃과 정물과 뉴욕의 야경 


1887년 북미의 위스콘신의 농가에서 태어나, 뉴욕과 텍사스 등을 오가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열 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고 배우기 시작했으니 생의 초기 10년과 시력을 상실했던 말기의 15년을 제외하고는 일평생 그림을 그렸던 것이지요. 시카고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던 그녀는, 피카소가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리던 그 해에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맨해튼에서 그림을 공부하며 꽃과 정물들을 주로 그리며 동료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하고, 상업미술과 미술 선생님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그림을 잠시 중단하기도 합니다. 한때, 노스 캐롤라이나와 텍사스에서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으나 아서 웨슬리 도브를 만나게 그에게 배우면서 선과 색채와 색감의 잘 어우러진 조합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그림이라던 그의 추상미술에 대한 개념에 공감하며 그림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같은 그녀의 초기 20년간 형성된 시각은 이후의 작품세계를 관장하며 객체의 본질적인 핵심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Ram's Head with Hollyhock, 1935


Red Hill And White Shell, 1938


오키프 후기의 그림 - 사막의 고원, 산타페 뉴 멕시코.


1916년부터 텍사스와 뉴 멕시코를 왕래하며 그림의 모티프를 얻곤 했었던 그녀는 62세가 되던 1949년, 스티글리츠가 작고한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난해에 뉴 멕시코 사막 위의 민둥산으로 완전히 은둔하게 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햇살이 춤추는 땅’이라고 부르는 해발 2135m 산타 페의 고원지대의 은둔하며여 그곳을 영혼의 안식처로 삼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런 행보는 탈속이며 그림을 통한 구도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선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주관적인 해석을 실어봅니다.


그녀가 남편과 사별 후 그린 뉴 멕시코의 메마른 고산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다보면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한참을 앉아 있게 됩니다. 동부의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조지아 호숫가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 그녀는 "정원을 가꾸는 일과 과일을 수확하는 일을 특히 관심이 있다"라고 친구에게 쓰고 있으며 이 시절 동안 가장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림을 통해 보게 된 사막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아도비로 지은 그녀의 거주지는 일체의 군더더기와 장식이 배제된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미니멀리즘의 건축이며, 그녀의 침실과 작업실을 들여다보면 과연 고요와 적막 속에서 영혼에 쌓인 먼지를 씻어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뉴 멕시코의 먼지 풀풀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로 삶의 거처를 옮겨온 그녀는 돌산이 빚어내는 색채의 조합을 사랑했고, 오랜 시간을 들여 사막 한가운데 자신의 정원을 만들어 내고 가꾸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키프여사가 직접 몸소 정원일을 했을것 같진 않지만, 정원일의 노동과 수고로움은 더구나 여러 해를 한결같이 식물을 가꾸는 일이 보통의 풍요로운 토양에서도 쉬운 일은 아님은 정원을 오래 가꾸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뉴멕시코의 사막의 고원 한가운데 물길을 내고 정원을 만들다니요. 사막의 한가운데 물길을 트고 자신의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일은 구도의 길에 다름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주어 세상 한가운데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하직하고 났을 때,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 사막으로 은둔하여 지칠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고 가꾸며 아침저녁으로 그곳을 거니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조지아 오키프의 도발적인 꽃그림들보다 그녀가 그린 텍사스, 그리고 옆 동네 뉴 멕시코의 미니멀리즘적인 풍경과들은 마음 깊은 곳에 와 닿아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Winter Road 1963 oil on canvas

    

Road past the View, 1964; 18 x 30 inches; Oil on canvas.


그래서 나는.....


푸른색 첼로를 옆으로 눕혀놓은 것으로도 보이는 1922년작 조지아 호수는 바라보고 있기에 한없이 좋습니다. 또한 1963년 작 Winter Road와 이듬해에 그린 Road past the view 이 두 작품도 매우 좋아하는 미니멀리즘의 추상화입니다. 재능 넘치고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정념을 불태웠던 화가의 일생이 탈속과 구도로 이어진 뉴 멕시코를 향한 한 줄기 길로 압축되어 표현된 것 같아 보입니다.


어느 해 겨울, 뉴 멕시코를 지나며 눈발이 흩날리던 민둥산의 옆모습을 몇 시간 눈으로 훑으며 지난 기억이 있습니다. 여름엔 사막이고 겨울엔 시도 때도 없이 눈보라가 시야를 가리는 그 혹한의 먼지 풀풀 날리는 지형 위에 하늘을 향해 솟구친 정수리 납작한 돌산은, 내게는 차갑거나 건조한 따가움으로 다가왔을 뿐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푸른 산과는 다른 형상이었습니다. 북부의 프레이리에서 나고 자라 뉴욕의 번영과 화려함 속에서 화가로 명성을 날리던 조지아 오키프 여사가 노년에 이르러 영혼의 안식을 찾은 곳이 그 돌 산의 높은 고원에서였다니.... 조금 더 살아봐야 이해가 될 일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뉴 멕시코의 황량한 사막과 돌산과 죽은 동물의 뼈와 꽃들을 그리다 눈이 멀어버린 화가로서의 그녀의 후기의 삶을 동양의 언어로 번역해보자면 영혼의 안식을 찾기 위한 구도의 과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눈보라 휘날리는 뉴 멕시코의 사막을 지나며 확실해졌습니다 다.  


코네티컷의 부촌에서 일생을 보낸 친구의 시부모님도 은퇴 후 뉴 멕시코의 타호로 거처를 옮기셨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었습니다. 시부모님을 방문하고 온 그 여름, 친구는 뉴 멕시코의 다른 공기를 내게 전해 주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푸른 산 푸른 계곡만을 향해 있는 내 마음에 경험해 본 적 없는 그 마르고 건조한 뜨거운 돌산의 색다른 공기가 와 닿았을 리가 없었지요. 그러나 오키프 여사와 친해지고 싶은 지금, 멀지 않은 시기에 마음을 열고 사막 한가운데의 돌산에 올라보아야겠습니다.  





                                                    노년의 오키프 여사와 노 사진작가 스티글리츠 선생의 다정한 한 때




참고

헌터 드로호조스카필드 (2008),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민음사

이미지와 작가에 대한 소개는 아래에 링크된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으로부터 얻어왔습니다.


https://www.okeeffemuseum.org/


http://www.georgiaokeeffe.net/



                                                    © 구름바다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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