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한개 Jul 26. 2020

결혼 준비를 시작하며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맞는가부터 시작한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겨우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평소 농담으로도 꺼내어 본 적이 없던 단어를 그와 함께 공유하게 된 것에는 그 어떤 계기가 없었다. 마치 미리 예정되어있었던 것처럼 그는 내게 "시간 한 번 내야 할 것 같은데. 돌아오는 일요일에 특별한 약속 없다 그랬지?"로 시작해서 "일요일 오후 1시로 식당 예약했어. 11시까지 데리러 갈게."로 끝나는 문장 두 개가 다였다. 좋고 싫음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그의 부모님을 마주한 자리에 앉아, 내 취향을 듬뿍 얹은 꽃다발을 품은 채 나를 꾸며내고 있었다.

식사 자리를 마치고, 그와 함께 할 세상을 생각하다 버트런드 러셀 작가의 '결혼과 도덕'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어 보았다. 1929년도에 발표된 책이었다. 작가는 남녀가 만나 혼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부부라는 관계를 맺게 되면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단위인 가족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아이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의 긴밀한 구조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중요한 제도로 작용한다고 의미를 더했다. 따라서, 결혼은 부부가 반려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낭만적인 사랑을 기초로 한 결혼이 바람직하다는 작가의 생각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유의한 단어를 꽤나 많이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눈여겨본 것은 '가취嫁娶'와 혼인結婚이다. 가취嫁娶는, '시집갈 가 嫁'와 '장가갈 취娶'를 합쳐 부르는 말로 부부가 되는 과정이나 방법을 표현하는 것에 더 가깝다면,  혼인結婚은 남녀가 정식으로 결합한다는 '관계'라는 것에 중심을 두는 의미만 비슷한 다른 단어이다. 결혼이라는 한 낱말을 가지고도 방법과 관계라는 상반된 의미의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니, 이것이 주는 무게가 얼만큼인지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그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늘어놓자, 이 거대한 제도를 앞서 통과한 사람들에게서 일관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통상적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정해진 절차가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또한 평생에 걸쳐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위해 모든 순서는 완벽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였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첫 번째 순서는 상대방의 부모님을 찾아뵈어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허락을 구하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결과로, 결혼이라는 제도에 나의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합격점을 받게 되면 양가 부모님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어 부부가 되는 특정한 날을 조율하고 공표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이 제도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는 '특별한 날'을 함께 목표로 삼아, '평생에 한 번만 있을 하루'를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어떠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을 것인지, 또 그와 내가 얼마만큼의 낭만적인 사랑을 유지하여 지금 여기에서 함께 손을 맞잡고 있을 수 있는지를 게시하기 위한 사진들을 몇 장이나 찍을 것인지 등을 결정하고 실행하면 된다.

드라마 속에서나 보았던 일들이 순식간에 나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살면서 한 번도 꿈꾸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이었다. '나의 커리어를 위해'와 같은 늘 입에 달고 살던 명분이 필요치 않았고, 흔히들 말하는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보았던 동경하는 공주님'과 같은 꿈 꾸는 로망도 없었다. 오로지 나의 결정 안에는 그가 내게 주었던 '안도감'과 같은 평화만이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종종 나를 스치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감정에 여러 번 치이고 나면, 나에게는 분류되지 못한 찌꺼기들만이 상당히 많이 남아 나를 괴롭히곤 했다. 속으로 삼키고 삼키다 소화되지 못한 어지러운 생각을 억지로 토해내고 나면, 항상 그 자리가 공허하고 목이 따끔거리곤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마구 잡아 계산하고 나면 다시 내 안으로 쑤셔 넣는 게 고작이었다. 더 유능한 사람으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순간이라고 여겼고, 오늘의 쓰라린 경험이 내일은 나를 한 발자국 더 앞서게 해 줄 거라고 믿었다. 이런 순간들의 반복으로 지쳐있던 나에게 다가와 뱉어진 찌꺼기를 빗자루로 쓸어 담아 준 것이 바로 그였다. 전후 사정에 대해 그 어떠한 사전 설명이 없어도, 그는 내가 쏟아내는 모든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고, 그 뒤에 따라오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하여도 늘 같은 곳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그 한결같음이 평화로워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의 또 다른 허상에 그가 담긴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이라는 것에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입장이 더 강했다. 그 이유는 결혼생활을 존속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고수해왔던 가치관을 일부 무시할 수 있어야 하지만, 성가신 의무들을 일체 무시하고는 존립하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사회적인 제도 아래 만들어진 부부라는 관계이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각자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또 '부夫'와 '부婦'로서의 역할에도 맡은 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내가 동시에 여러 역할을, 그것도 '아주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혼생활은 나에게 걸맞지 않다고 늘 생각해왔다. 예를 들어, 결혼식에 입장하는 신랑 신부는 그 날의 유일한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바람을 대신 수행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특별하고도 완벽한 하루를 위해서는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한 많은 사람의 기대와 의견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높디높은 장벽을 넘어갈 자신이 쉽게 생길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의 다정함을 잃지 않고 곁에 두고 싶은 욕심은 가득하였기에 오늘부터 나는 나를 욱여넣어보기로 다짐해본다. 장대 같은 게 없어도 맞잡은 그의 손이 그 무엇보다 단단할 것을 믿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온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