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조네스 엄마

지켜야 할 것이 생겼을 때의 용기

by 온현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일 때 일이다.


남편의 연구년으로 미국에 잠시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자동차 여행을 많이 다녔다. 남편은 매우 알뜰한 사람이라 가능하면 아침을 주는 중저가 호텔을 찾아 예약했다. 그러다 보니 도착해 보면 기대보다 방범이 허술해 보이는 숙소도 종종 있었다.


여름방학에 미서부를 돌 때였다. 하루는 길가에 붙은 작은 호텔 1층에 묵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더블베드 두 개인 룸 하나에서 다 같이 자곤 했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문을 열면 바로 외부와 연결되는 복도가 있었다. 완전히 오픈된 공간과 맞닿은 방이라 평소에도 유난히 겁이 많은 나는 불안해졌다. 남편이 소심한 나를 놀렸다. 잠시 토론 끝에 장난 삼아 아이들이 들고 다니던 작은 야구방망이를 방문 옆에 세워 두었다. 문쪽이 더 무서우니 내가 안쪽에 눕고 남편과 아들들이 문 쪽에 누운 배치로 누웠다.


한밤중, 사막 부근 도시 외곽은 사방이 조용했다.
왠지 깊은 잠을 못 자고 있던 새벽 세 시쯤.


달칵달칵, 누군가 열쇠로 방문을 열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17일간의 자동차 여행은 이미 중반부였고, 전날은 이동이 많았던 일정이었다. 지친 남편과 아이들은 깊이 잠들었다. 겁이 덜컥 났다. 내가 작은 소리로 여러 번 불러도 남편이 깨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


어둠 속에 나만 깨어 있었다.

다음 순간,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갑자기 나라도 아이들과 남편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듬더듬 불도 안 켜고 일어나 야구방망이를 들고, 살금살금 문쪽으로 다가갔다. 아직 잠들어 있는 남편이 180cm의 건장한 체격이라는 사실은, 가족이 다칠까 두려운 마음과 뜬금없는 용기에 밀렸다.



무서움에 떨며 외시경(도어 렌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흰 양말, 흰 운동화에 반바지 차림인 백인남자의 하반신이 보였다. 외시경 각도 때문인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술에 취했는지 휘청대며 열쇠를 계속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가 안에서 이중잠금을 해놓아 문이 안 열린 것이다.


발목 위로 얌전히 올라온 흰 양말을 보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팽팽하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어쩌면 강도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나는 야구방망이를 든 채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냐고 물었다.


예약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자기 방이라고 술에 취한 목소리가 꼬박꼬박 대답했다. 방을 잘못 찾은 것 같다 하니 우리 방 번호를 댄다. 잠시 기다리라 한 후,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프런트 직원의 착오로 늦게 온 투숙객에게 우리 방 열쇠를 또 준 것이다.


실랑이하는 사이 남편이 깼다. 문은 열지 않은 채였다. 상황을 파악한 남편이 "여긴 우리가 예약한 방이 맞다. 프런트로 가 보라"라고, 소리를 쳤다. 잠시 뒤 구시렁거리며 발소리가 멀어졌다.


도둑이나 강도는 아니었지만 새벽에 얼마나 놀랐는지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이 되었다.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가 그 신발의 주인공이 옆에서 부인인 듯한 갈색머리 여성과 음식을 챙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이 적은 시간이었다. 그는 새벽과 똑같은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몰랐겠지만, 새벽의 해프닝이 생각나 다시 한번 보고 지나쳤다.


먼 이국땅에서, 체격도 크지 않은 동양여자가 남편과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아동용 야구방망이를 들었던, 그날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내 안의 모성본능이 남편에게도 적용됨을 깨달았던 그 새벽, 나는 잠시 아마조네스의 여전사가 된 기분이었다. 아마 살면서 내가 가장 용감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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