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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反影)

by stellaㅡ별꽃 Nov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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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글 이미지 1

제 옷섶을 다 여미지 못한 밤은 바스락 소리를 내며 산등성이를 기어오르고, 새벽은 그 틈을 낚아챈다.

밤도 새벽도 아닌 공간에 엎어진 고요함은 지나치다.

염치없이 자동차는 그 공간을 가르며 목쉰 재채기까지 보태는데, 기어코 따라붙는 시간과 공간은 밀착한다.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에 반해 특별한 계획도 없이 별(반려견)과 함께 떠나는 여행길이다. 누적된 피로감

탓인지 까만 도포자락으로 덮치듯 찾아오는 졸음. 몇 번을 까무룩 기절할 뻔하는데, 생과 사의 간격은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서늘함에 졸음은 저만치 달아난다.


덤프트럭이 기어오르는 고갯마루 끝엔  늦가을이 걸쳐있고, 잠에서 막 깨어난 아가 햇살은 황금빛 낙엽송 가지 사이로 빛 내림을 한다. 가만히 품에 안겨 이따금 눈을 맞추는 별이의 따뜻한 온기에 마음은 매번 사르르 녹는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여행자들에게 '한국의 작은 스위스'로 불려진다는 온빛 자연휴양림의 입구는 단아하고 조용했다. 개인 사유지이면서 입장료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었고 반려견 입장도 가능하다니 참 반가운 일이다.


초입에 , 파랑, 노  삼원색으로 지어진 건물은 유럽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렬하다. 하늘을 찌를 듯 건물 에 우뚝 선 메타세는 든든하다. 간밤에 내린 서리 하얗게 변한 잔디밭에 온몸을 문지르며 풍뎅이처럼 돌다 강종 강종 뛰어다니는 별. 좋아서 그러는 거리고 내 맘대로 생각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대포만 한 카메라를 들고 삼각대를 설치한 서너 쌍의 남녀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문득 눈에 들어온 풍경에 나 전용 카메라 스마트폰을 연다.  하늘, 구름, 나무, 작은집, 바람결마저도 호수에 비친 제모습에 정신줄을 놓고 있다.   흔적 사이로 반짝이는 윤슬은 치명적이다.


"저. 기. 요..... 그기(거기) 강아지랑 사진 한번 찍어도 될까요?"

리마인드 웨딩촬영을 나온듯한 중년의 여인은 덥석 내 팔짱을 끼더니

"사실은 주인이랑 찍고 싶었어요." 다.


얼떨결에 생전 처음 보는 모르는 여인과 사진을 찍고 인기쟁이가 된 별 덕분인지, 때문인지,

'저ㆍ두ㆍ요' 요청을 몇 번을 더 받는다.


기분 좋은 소란을 접고 호수 아래로 내려가 휴대용 접이식 의자를 펼친다. 반영(反影) 드리워진 호숫가에 침묵이 내려앉고, 세상 더없는 고요함에 빠진 이들의 눈빛은 깊어졌다. 이따금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만 정적을 흐트러 놓을 뿐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이 클라이막스로 치달을 때쯤 내 마음은 호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본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반영(反影)은 어떤 모습일까. 이 시대의 반영은 또 어떤 모습일까.


새파란 하늘로 뻗은 메타세사이로  쏟아지는 강렬한 빛 내림에 주변은 저절로 동화되고 아름다워졌다. 우린 가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볼 필요가 있다. 스로 볼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내고 마음을 읽어준다면, 반영을 들여다보는 일이 두렵거나 망설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시절도 호수에 비추어 볼 수만 있다면 귀신같은 소란이 잠재워 질까.


"어머 너 너무 예쁘다. 이름이 뭐니?"

"걔(그 아이) 말티즈죠?"


햇살이 내리쬐는 툇마루에 앉아 나는 솔잎차를 마시고

별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애교 삼매경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온갖 장비를 들고 반영(反影)을 접사 하러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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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ㅡ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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