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우리 오렌지 주스 안 먹었네요. 수다 떠느라 주스가 안 나온 것도 모르고 있었네. 그런데 계산이 되었던데."
별, 귀리, 보리
SNS인연
보리, 귀리, 은정씨
단골 반려동물 샵 사장님이자인친(인스타그램친구)인 은정 씨와 파주에 있는 애견카페를 동행한 적이 있다. 은정 씨는 비숑프리제 보리(여자), 귀리(남자) 남매를 키우는데, 두 녀석 모두 롱다리에 귀티가 줄줄 흐르게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은정 씨 왈 잡곡이들 이란다). 성격 좋고 화끈한 은정 씨와 언니(나),동생(은정 씨)이 되었고 우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사람 많고 북적거리는 것이 싫어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허물어져 가는 곳이라도 풍경 좋고,음식 맛이 좋은 곳을 찾아내는 것을 즐겨하는데, 이름이 주는 호감도 때문인지 '농가의 식탁'은 왠지 모를 동경의 대상이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나있는 창
맛 소문, 뷰 소문,친절 소문이 자자한 데다 반려견 동반도 가능하다니내가 바라던 최적의 장소였다. 마침 은정 씨와어딜 갈까 탐색하던 차였기에 바로 실행에 옮겼다. 먼저 도착한 나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쯤 나있는 통창으로 시선이 꽂혔고,창문 너머로 보이는 목가적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봉구 속을 태우는 아이들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사장님의 다감한 목소리에친척집인 줄 착각했다.바둑 문양의 커다란 타일로 된 미끈한 바닥 위에 정갈하게 자리 잡은 테이블과 의자, 커다란통유리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은유할 것도 없는 한 편의 시다. 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 백신과 코로나로 찌든 음흉하고 껄끄러운 도시의 기운을 털어내고 새로 만들어진 행성처럼따뜻한 기운이 전해오는 내부 풍경.
신선한 자연의 색채가 더없이 안정감을 주는데 식사를 하는 사람들과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은 여유가 넘친다. 반려견들이 있어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안되었음 하는 마음에 프라이빗한 공간을 원했는데 운 좋게도 방이 하나난다. 은정 씨를 기다리며정원 산책을 하는데 성격 좋은 별은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탄다.
마른 잔디 위를 기웃대던 바람이 복숭아나무 가지 순을 툭툭 건드려보는데 봉구(농가의 식탁 반려견 시베리안 허스키)는 뛰쳐나오고 싶어 애가 탄다.보리 귀리가 합세하여 약을 올리니봉구의 낑낑거리는소리는 점점 커진다.
농가의 식탁
농가의 식탁 내부
농가의 식탁은 홀 테이블과 프라이빗 룸, 유리 테라스로 나뉘어 있는데 어떤 공간을 선택해도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보리, 귀리, 벼리(별) 짓궂은세 녀석을프라이빗한 방에 몰아넣고 정신을 수습한다.
"뭘 드시겠어요?"
"살치살 스테이크랑 빨간 토마토 파스타, 그리고 오렌지 주스 두 잔 주세요."
보리 귀리 보느라 정신없는 은정 씨. 나는 샐러드바에서 애피타이저로 먹을 채소를 담아온다.신선한 유기농 채소로 구성된 건강한 먹거리가 아주 흡족하다. 나누어 먹자며
달려드는 녀석들이 혼을 빼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가지런히 식탁에 놓이는데 먹기도 전에 색감에 반한 우리는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한다.
떼를 쓰는 아이들 달래라며 군고구마를 두고 가는 센스쟁이 사장님.
살치살 스테이크와 빨간토마토 파스타
먼저 스테이크에 곁들여져 나온 구운 가지를 맛보는데 두어 번 오물 거리니사라져 버렸다. 구운 단호박과 파프리카는 본래의 향긋한 맛을 살렸으면서도 아주 담백했다. 육즙이 팡팡 튀는 스테이크는 너무나 고소해 은정 씨랑 서로 더 먹으라며 치열한(^^) 양보를 한다.
파스타 면을 포크로 당긴 후 스푼에 올려 돌돌 말아 입안 가득 밀어 넣으니, 신선한토마토의 향이 귀까지 퍼지며 건강한 맛이 온몸으로 스미는 느낌이다. 빨간 토마토답다.
음식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에너지 넘치는 녀석들과 씨름하다 보니 설거지를 한 것처럼 음식이 담긴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누가 더 덜렁이 일까^^
농가의 식탁 외부 풍경과 내부 전경
"언니! 우리 주스는 안 먹지 않았어요?"
"어! 그러네. 금액을 계산해보니 주스값까지
결재되었네."
다른 장소로 이동해 커피를 주문하다 말고 은정 씨가 건넨말에 결재된 금액을 보니 그랬다. 사장님이나 우리나 정신널어두고 나온 건 비슷한가 보다며 웃는다. 말을 해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되는데, 말해주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고 인스타그램에 메모를 남겼다.
너무 황송하고 미안해하시는 사장님. 메모를 남긴 나는 더 미안해 몸 둘 바를 모르는데 통장으로 주스값 12,000원이 입금이 되었다. 나는 절판된 수필집 중 소장본 '아버지의 꽃지게'와 아직도 1,200권 중 150권이나 남아있는 '단 하루의 마중'을 사인해서 보내드렸다. 사장님은 바로 인스타에 릴스로 만들어 원본보다 더 예쁘게 올려주셨다.
사장님이 인스타에 올리신 릴스 캡쳐
그런데 글을 쓰며 농가의 식탁을 검색하다 더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하..,, 나.., 참.. 덜렁이 맞네 맞아.누가 내게 덜렁이란 별명을 붙여줬는지 찰떡일세.
살치살 스테이크 36,000원 빨간 토마토 19,000원 합 55,000원 결재된 금액 61,000원(차액 6,000원) 돌려받은 금액 12,000원 !!내가 다시 6천 원을 돌려드려야 한다!!
여하튼 농가의 식탁은 주저 없이 추천해도 좋을 만큼 신선한 유기농 채소로 만든 건강한 먹거리가 주를 이룬다. 건강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이토록 절실하게 사회적 불안요소로 작용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먹거리뿐만 아니라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환경과 기후변화로 인한 회색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스스로 개선하고 바꾸고 지켜야 할 것들이 산재해 있다.
그런 면에서 농가의 식탁은 바람직한 식탁문화를 선도하는 건강한 먹거리의 표본일 뿐만 아니라,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가 손님들 식탁 위에 오른다는 건 매우 중요한 메시지처럼 여겨진다.소비자들과 더불어 상생하며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2주 전의 시간을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