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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Jul 13. 2018

칭산, <안녕, 웨이안>
慶山, <告別薇安>

후텁지근한 불면의 밤을 통과하는 소설

1974년생인 칭산은 현재 중국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웹소설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작가답게 글에 젊고 트렌디한 감성을 잘 녹여냈다. 한국에 알려진 건 영화 <안녕 소울메이트>의 원작 소설인 <칠월과 안생>을 통해서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도 <칠월과 안생>이었는데, 이왕이면 첫 소설집부터 차례대로 읽고 싶어 이 책을 먼저 구매했다.  

총 8개의 단편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계속 등장한다. 처음에는 같은 인물인 줄 알았는데 이름만 같고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들은 직업도 외모도 각기 다르지만, 어딘가 묘하게 비슷하다. 그들은 대도시(상하이)에 살며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커피와 칵테일을 즐긴다. 조직과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으며 경쟁에 익숙하고 타인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늘 외롭고 공허하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은 버린 지 오래. 일에 치이고 남자에 치이고 사회에 치이며 사는 인물들은 이 시대 청춘들의 초상과 같다. 치열한 경쟁, 불안한 미래,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항상 그들을 따라다닌다.

책 읽는 내내, 습기 높은 장마철의 눅눅하고 숨 막히는 불면의 밤이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끈적이는 공기에 갇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나날들, 그렇게 지나온 20대가 떠올랐다. 잠도 오지 않는 후텁지근한 여름밤에 어울리는 소설이다. 


사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외로움이 저지르는 살인이다. 그건 상대가 없는 죽음이기 때문이다.(p.11)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고,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눈물의 온기가 그 자신의 기억을 뛰어넘고 있었다.(p.23)

여자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p.29)

지하철 플랫폼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늘 차가운 얼굴로 어딘가를 향해 바삐 가고 있어. 다들 외로움이라는 투명 외투를 걸치고서. 그 모습이 꼭 심해를 가르는 물고기처럼 보여. 제각각 자기 일을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들이지.(p.75)

그녀는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잘생긴 남자가 좋았다. 그녀에게 무관심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는 온갖 상상의 여지와 열정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그녀는 다가갈 수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껴안을 수도 없는 대상이 좋았다.(p.83)

그는 늘 오밤중에야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조명 아래 앉으면 맞은편 유리창에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한낮의 햇빛 아래서 썼던 가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무표정의 텅 빈 얼굴이었다.(p.98)

스물다섯의 나는 독신이었다. 컴퓨터 한 대로 여러 명의 잡지 편집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지냈고, 열대어를 키웠다. 그 어여쁜 작은 물고기들은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 물고기들은 사랑할 일도, 울 일도 없다. 그들은 내 롤모델이었다.(p.141)

오랜 시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망 다녔는데, 그 모든 의도와 결말이 흐지부지돼버렸어. 사랑은 단지 어떤 꿈의 대명사일 뿐인지 몰라. 그리고 난, 그냥 그와 함께 하룻밤 불꽃놀이를 보고 싶었던 거야.(p.184)

무얼 얻으려면, 반드시 먼저 그걸 줘야 한다. 이건 진리다.(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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