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대2병
…따라서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 알랭 드 보통
재작년 이맘때인가, 대2병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어.
질풍노도의 사춘기 특유의 거침없고 허세 가득한 상태를 중2병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진로는 어떻게 해야 하며, 그래서 나는 지금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고민으로 가득한 대학교 2학년 즈음을 일컫는 말로 나왔더랬지.
그 말이 이렇게까지 유행이 되었던 것은 그만큼 그 말에 동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솔직히 너도 그렇잖아.
1학년 때는 새내기라는 핑계로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기도 하고, 날씨가 좋다며 강의를 빼고 다른 곳에 놀러가기도 했지만 2학년에 들어가면서 영문 모를 불안감이 천천히 드리워지기 시작했었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처음엔 남자 이야기, 학교 내의 가십거리, 연예인 이야기 등이 나오다가 최근에는 기-승-전-"아~인생." 하는 식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하고.
그리고 그 중에서는, 로스쿨을 갈 거라든지, 어떤 곳에 취직할 거라든지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래서 넌 점점 더 불안해졌을 거야.
저 친구들은 저렇게 나아가는데 난 뭘 하고 있는 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나.
그러다가 한 번 정도는, 이런 고민 따위를 하고 있을 여유가 있긴 한가 하는 의구심도 들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모두가 그런 거야. 우리는 그런 고민을 안고, 불안해할 수밖에 없어.
모두에게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존재해.
다만 네가 그걸 마주하는 용기를 한 번 정도는 내줬으면 좋겠어.
네가 고3이 되던 겨울 방학 때인가, 공부를 하느라 지치고 지쳤던 그 밤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고민하며 일기에도 털어두다가, 결국 울음이 터져서 집에 빨리 돌아왔던 그 날.
나는 그때의 네가 했던 고민이,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본질은 같았다고 생각해.
'나 지금 잘 하고 있나. 이렇게 한다고 잘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때, 아빠가 한 시간 가량 울고있는 나를 안아주더니 이런 말을 해줬었어.
"누구에게나 미래는 불안하단다.
스물을 향해 달려가는 너에게도 미래는 불안하지만, 쉰을 넘은 나에게도 미래는 불안해.
다만 나는 쉰을 넘게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걸었던 경험이 있잖니. 네가 어떤 것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나는 그 경험을 알려주는 것 뿐이란다.
나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여러 고민들을 가지고 있어. 너에게도, 나에게도, 미래는 어쨌든 처음 가보는 길 아니니. 깜깜하고.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야."
그리고 이제야 깨닫기를, 그게 참 맞는 말이지 싶다.
처음 가보는 길인데다가, 가시거리가 채 1cm도 되지 않는 상태라고 하면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니? 내가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천 길 밑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인지, 탄탄한 포장도로인지도 알지 못하는데 말이야.
사실 불안이나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근본적으로 아주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단다.
언젠가 한 번 보았던 진화심리학 논문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위험의 원천에 잘 대처하게 함으로써 생존 기능을 발휘한다고 설명하더라. 아주 먼 조상 때, 아무 생각 없이 헬렐레, 즐겁게만 다녔던 사람들은 수풀 속에 숨어있던 하이에나에게 먹혀버렸고, 혹시나 몰라서 여러 위험들에 대비해서 옷을 만들고, 단단하게 집을 지었던 사람들이 살아남게 되었다는 거야. 전혀 불안감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았다는 거지. 실제로 불안감은 우리 삶에서 꽤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던 거야. 그래서 아직도 존재하는 거고.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모든 것은 당신 생각하기 나름이랍니다. 라고 내가 말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큰 오산이야. 내가 무작정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하는 책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거야. 불안해 죽겠는데 어떻게 무조건 행복할 수 있니?
게다가 누군가는 그게 우리의 본능이라고까지 말하잖니. 그걸 그냥 덮어두고 마냥 행복하고 긍정적인 세상이라고 바라본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어? 하이에나는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에게도 취직의 어려움이라든지, 사업에 있어서의 어려움 같은 여러 생존 위협들은 존재하잖아?
나는, 네가 지금 안고 있는 고민들을 못 본 체만 하지 말고 한 번 쯤, 안아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
끊임없이 네가 지금 갖고 있는 고민들을 피하기만 한다면 더 나아질 것이 없단다.
네가 얼굴은 웃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민'이라는 놈에게 쫓기며 도망가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면 끊임없이 더 불안해질거야. 게다가 몇 십 년이 지나도 똑같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하잖아. 몇 십 년이 지나서도 계속 쫓기는 삶을 산다면, 어찌 더 나아지겠어?
한 번 정도는 친구들과 술, 혹은 드라마나 인터넷처럼, 도망갈 구멍들은 덮어두고 네가 어떤 고민 때문에 괴로운지 똑바로 마주하는 용기를 내보렴. 그 중 일부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것들도 있을 거야.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과제 해야 하는데,
친구들이랑 뭐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져서, 스스로가 가진 고민들을 그 자체로 바라보고 끌어안는 시간을 가져보렴.
오늘은 이만 줄일게.
막연함이라는 것이 주는 두려움, 이것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일이 있을 것 같다.
결국 이것이야 말로 네 모험의 시작과 끝이니까 말이야.
From 2017.05.21
To 201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