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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Nov 07. 2018

여섯 번 사표 쓰니 보이는,
이직의 기술

회사’와 '나'의 관계란? 

첫 퇴사 이후, 다섯 번 더 사표를 썼다. 평균 1년에 한 번. 가장 짧은 재직 기간은 4개월이 좀 못되었다. 그것도 연륜이라고 사표를 쓰다 보니 보이는 게 있었다. '회사'와 '나'의 관계가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는 거였다. 사실 개인과 회사 사이의 관계는 다양하다. 회사도 개인도 다 제각각이니까. 그 경우의 수만큼 많은 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개인을 집요하게 ‘착취’하는 블랙 기업이 있는 반면 개인이 회사에 기생하는 경우도 분명 있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회사는 선후배의 정으로 버텼고 어떤 회사는 함께하는 동지로 시작했지만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헤어지기도 했다. 또 어떤 곳은 회사와의 관계가 꽤나 사무적이었지만 가장 군더더기 없는 관계로 기억되기도 한다. 반면 아는 이들이 새로이 시작한다 하여 합류했지만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악몽이 되기도 했다. 회사라는 존재와 그렇듯 복잡 다단한 관계를 겪고 나니 그제서야, 어쩌면 회사와의 관계야말로 가장 담백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기본은 '계약' 관계일 뿐

결국 '회사'와 '나'라는 존재가 맺는 가장 기본 토대는 결국 계약 관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그 사실을 망각한다. 분명히 근로계약서를 쓰는데, 그걸 썼다는 것조차 잊고 지낸다. 언제부턴가 취업은 항상 어려웠다. 이력서 100장 정도를 써야 겨우 면접이라도 보고 그러다가 취업을 하니 처음부터 회사와 나 사이에 알 수 없는 위계가 생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수동적인 입장, 상대적 약자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구직을 하면서 겪는 지속적인 열패감은 종종 자신을 채용한 회사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왠지 회사 앞에서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입사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신입 사원으로 입사하는 순간, 자연스레 회사 내 위계에서 제일 마지막에 자리 잡는다. 조직이라는 관점에서 내 위의 과장, 부장, 팀장 등은 분명 위계 서열에서 나보다 앞선다. 그렇게 회사를 대변하는 이들이 죄다 나보다 상위에 있다 보니 알게 모르게 회사는 나보다 상위 개념이 된다. 시간이 지나 경력이 쌓여도 이런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새끼 오리가 알에서 나와 처음 본 대상을 엄마라고 생각하고 따르듯 처음 박힌 인식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애끼

하지만 갑을 관계에서 비록 을의 위치에 처한다 하더라고 회사와 나는 어디까지나 계약 관계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고용주는 그 반대급부로 월급을 주는 관계일 뿐이다 중세 시대 주종 관계처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아니다. 상호 호혜적이어야 하며 때에 따라서는 파기도 가능하다.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우리는 그런 사실을 종종 잊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참아가면서까지 직장 생활을 할 필요도, 우울증에 시달리면서까지 회사에 출근할 필요도 없다. 부당한 일을 당했으면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그런 가스 라이팅(Gaslighting)에 맞설 수도 있어야 한다.


밥벌이에 대한 소중함이 발목을 잡을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회사와 나를 분리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생존에 한계를 느껴질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니 그 정도 스트레스가 아니어도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항상 Escape 버튼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탈출이 불가능하다’와 ‘탈출이 가능함에도 나의 선택으로 인내한다’라는 인식의 차이는 크다. 똑같은 현실이라도 후자의 경우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성장은 알아서

반면에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회사는 우리를 성장시켜줄 의무 같은 건 없다. 근로계약서 어디에도 회사가 당신을 성장시켜주겠다는 항목은 없다. 회사는 근로시간을 추가적으로 착취하지 않고 월급만 떼먹지 않으면 사실 본분을 다했다고 봐야 한다.(그나마도 제대로 노력하는 회사가 드문 게 현실이다). 성장 같은 건 죽으나 사나 내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다. 물론 일하는 동안 저절로 성장에 도움이 되는 업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업무가 있는 건 사실이다. 또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내부 자료만 잘 보아도 업계 트렌드나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어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허나, 어떤 경우든 성장의 여지를 찾는 건 개인이 할 일이지 회사의 책무는 아니다. 업무 전환이나 부서 전환 같은 걸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 요구를 회사가 반드시 들어줘야 할 의무는 없다. 물론 많은 회사는 구성원 개개인의 성장을 이끌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이 결국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개개인의 행복이 회사의 성과를 향상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건 해주면 고마운 것이지 당연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아니 '회사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 같은 건 애초에 안 가지는 게 좋다. 회사는 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회사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건 '나'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그게 그들이 우리에게 '월급'을 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와의 관계를 저렇게 놓고 보면 그제야 회사 속에 몸을 담고 있더라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제목에 거창하게 '이직의 기술'이라고 써두었지만, 연봉 협상의 노하우나 '연차 소진'의 기술 같은 건 없다. (아... 물론 연차는 수당이 아니라 다 쓰고 월급으로 받는 게 보통은 더 낫긴 합니다.) 그보다도 이직을 위한 기본 체력을 키우는 방법들을 3가지만 꼽아보았다.


01. 보편적으로 활용 가능한 것을 고민할 것

회사에서 유용한 것과 커리어에 유용한 것은 다르다는 점이다. 일을 하다 보면 특정 업종도 아니라 특정 회사에서만 유용한 스킬, 아니 그보다 좁혀 들어가면 ‘그 회사의 그 팀에서만’, 혹은 ‘그 회사의 그 팀장하고만’ 일하는 데 유용한 스킬이 있다. 자신의 업무 중 대부분이 그렇다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한다. 이런 업무는 대개 특정인을 보필하는 형태의 업무 혹은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조직에서 형식을 갖추기 위한 업무인 경우가 많다.


©애끼

만약 자신의 업무 중 대부분이 그렇다면, 그런 개별적인 업무 안에서 보편적으로 활용 가능한 것을 추려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하다못해 잡다한 보고서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면 ‘PPT 마스터하기’라는 목표를 세울 수 있고, 똑같은 업무를 해도 ‘제안서 10개를 쳐내야 한다’가 아니라 ‘제안서 탬플릿 만들기-프로젝트’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소모성 작업도 재활용 가능한 업무로 변용할 수 있다. 아무도 챙기지 않는 데이터를 모아서 DB 작업을 해보는 것도 의외로 재미있다. 업무에서 생겨나는 데이터를 허투루 버리는 회사가 많은데, 그런 것을 잘 정리하면 그 자체로 자산이 되고 그 업역에서의 인사이트로 쌓인다. 물론 매일매일 업무를 해내는 것만으로도 힘든 경우가 많다. 항상 이 같은 고민을 해야 하는 건 정작 회사를 떠나거나 옮기는 순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02. 자신의 업무와 역량을 혼동하지  

“저는 지금까지 이 일밖에 안 해봤는데 이직이나 전직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대부분의 경우 대답은 “가능하다”다. 람들은 종종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기준으로 자신의 능력을 판단한다. 자신의 역량을 하나의 ‘업무 덩어리’로 규정지으니 지금 하고 있는 일 혹은 그와 비슷한 일 외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하기 위해 당신이 갖추고 있는 능력은 다양하다. 그 다양한 역량들을 하나하나의 레고 블록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 레고 블록이 모여 지금은 에디터, 마케터, 영업, 전략 기획 등등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업무로 체화되어 나타날 뿐이다.


잡지 기자를 예로 들자면, 잡지 기자가 지닌 능력은 그저 ‘잡지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그 안에는 트렌드를 찾아내는 능력, 콘텐츠를 기획하는 능력, 글을 쓰는 능력,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능력, 사람을 섭외하고 촬영하기 위해 팀을 꾸리는 능력 등이 포함된다.


트렌드 파악 능력 → 시장분석
취재 능력 → 자료 조사 및 취합 능력
글 쓰는 능력 → 보고서 작성 능력


이런 식으로 각각의 역량은 새롭게 해석이 가능하고 이를 재조합하면 또 다른 레고 작품이 될 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업무가 아니라 역량으로 쪼개 보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이나 전직을 고민할 때, 맡게 되는 업무를 통해 새롭게 갖출 수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직과 전직은 역량의 새로운 레고 블록을 하나 둘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기존 레고 블록에 새로운 블록을 하나둘 덧댄다면 만들 수 있는 작품의 경우의 수는 급증한다. 4개의 블록을 가졌을 때와 5개의 블록을 가졌을 때 만들 수 있는 있는 작품의 수는 확연히 다르다. 커리어 관점에서 보자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직이나 전직을 할 때  ‘다음 선택지를 더 넓게 해 주는가?’는 꽤 중요한 기준이다.


03. 때로는 커리어도 세탁이 필요하다

어떤 업계에 있었다고 하면 그 업계의 이미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일을 해보고 싶은 업계의 규모가 작거나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 등으로의 이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커리어의 시작을 잡지업계에서 시작했었는데, 만약 다른 잡지사 등으로 이직을 했더라면 그 업계 내에서 계속 맴돌았을 터다. 스타트업이지만 e-커머스를 하는 업체로 이직을 했고, 자연스럽게 커머스 및 디지털 업계에서 연이어 콜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떤 업계든 자신들이 전문적이지 않은 업역에 대한 새로운 확장의 니즈가 있다. 재미있게도 같은 업계에서는 다들 같은 일을 하니 비슷비슷해 보이는 그 능력이 다른 업계에서는 그 자체로 신선한 능력이 되기도 한다. 같은 업계에서는 누구는 9점, 누구는 7점이라고 평가한다면, 새로운 업계에서는 ‘할 줄 안다’와 ‘할 줄 모른다’, 즉 ‘0과 1’이 평가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당신을 찾는다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능력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그런 능력을 갖춘 데다 자신들의 업계에 대해 다른 지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해도를 갖춘 이라면 땡큐인 거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그때부터 메워도 늦지 않다. 지레 못할 거라는 생각만은 버리자.



일러스트레이터 : 애끼(@aggi.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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