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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Nov 21. 2018

당신이 회사 가기 싫은 이유

출근하기 싫은 날 


그러니까 그날 아침도 출근하기가 싫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그날만 출근하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직장 생활을 10여 년 넘게 하고서야 그날 아침, 나는 자신에 대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의외로 꽤 일관성 있는 사람이라는 것. 

얼마나 일관성이 있냐 하면,
10여 년째 한결같이 출근하기가 싫었다.

그러다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그렇게 매일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게 왜 싫은지, 어떻게 해야 그 상황을 더 낫게 할 수 있을지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걸. 밥벌이와 연결되어 있고 내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을 점유하는 그 무엇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분석해볼 생각조차 안 했다는 걸. 그것은 그 자체로 나 자신에 대한 방임과 직무 유기였다. 


뒤이어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나는 ‘출근’ 자체가 싫은 걸까, 아니면 출근을 해서 가야 하는 ‘회사’가 싫은 걸까? 후자라고 한다면 ‘회사’의 어떤 부분이 싫은 걸까? 회사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사람’들이 싫은 걸까, 그것도 아니면 ‘업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일들이 싫은 걸까, 아니면 내가 일한 만큼의 ‘대가’ - 인정과 보상 같은 -를 받지 못하는 게 싫은 걸까, 혹은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미래가 없을 거 같아서 싫은 걸까?


©애끼


‘출근하기 싫다’라는 감정을 느낀다면 적어도 어떤 점이 싫은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싶었다. 그래야 그 회사를 벗어나는 게 나을지 조금은 더 다녀야 할지 옮긴다면 같은 업종 내의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게 나을지 아예 다른 업계로 전직할지 등등을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해서 회사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이 정말 그렇게까지 '불편'할 일일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했다.


불편한 진실 01 : 회사가 아니어도 밥벌이는 고달프다

우리는 “회사가 싫다”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의 회사라는 개념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회사라는 단어에는 회사라는 조직 자체, 혹은 조직 문화, 회사 업무, 회사에서의 인간관계, 회사에서 받고 있는 처우 등이 다 뭉뚱그려져 있다. 그리고 처우와 별개로 회사를 통해 하는 생계 수단으로서의 밥벌이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회사가 아닌 다른 대체재를 통해 하는 밥벌이는 과연 쉬울까? 아닐 것이다. 이상한 사람도 회사 안에서 만날 확률보다 밖에서 만날 확률이 더 높다. 이상하게 굴어도 매일 봐야 할 사람에게 이상하게 구는 데는 한계가 있고, 나름 조직에는 내규가 있기에 이상함에도 한계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내가 스타트업을 차려서 일을 시작한다면 해야 할 업무량이 훨씬 많고 책임감도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회사가 싫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직장 생활에서 오는 권태와 지겨움도 꽤 크다. 어찌 보면 결혼과 좀 비슷하다. 처음엔 사랑했지만 살다 보면 서로가 데면데면해진다. 서서히 별거 아닌 흠도 커 보이고 뒤집어놓은 양말 하나에까지 복장이 터진다.직장 생활도 그렇다. 처음엔 합격만 시켜주면 이 한 몸 다 바쳐서 일할 것 같았는데 막상 좀 다녀보니 재미가 없다. 다른 회사에 비해 연봉도 적은 것 같고…. 신입 시절 열정에 차 있고 자아실현을 꿈꾸다가도 막상 취업해서 회사를 다녀보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또한 생활이 되고 일상이 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것이 '생활'이기에 권태로운 것과 그 직장이 '나쁜 것'은 명백히 다르다.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면 정작 더 나쁜 곳을 택해서 이직하거나 전직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불편한 진실 02 :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내’가 바로 그 이상한 사람이다

회사란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때론 이상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작 회사라는 곳의 구성원은 다름 아닌 바로 ‘나’다. 나같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다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애끼


회사란 어차피 관점과 관점이 만나는 곳이다. 각각의 부서는 애초에 제각기 다른 역할과 전문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그래서 하나의 업무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 들 수밖에 없다. 회사란 그 다른 관점을 지닌 이들이 함께 모여 서로 다른 KPI를 목표로 때로는 함께 나아가고 때로는 부닥치고 그 와중에 의견을 절충하고 합의하는 장이다. 부서의 예산을 더 확보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경영진은 때론 영업부에 힘을 실어주었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마케팅 부서에 힘을 실어주고 또 때로는 생산이나 기획 부서가 흐름을 장악하게끔 두기도 한다. 회사라는 조직 자체도 그 안에서 항상 이리저리 흔들리고 방향이 바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


그러니 그 거대한 조직의 구성원들이 어찌 내 마음같이 일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CEO조차도 회사 운영이 마음대로 안 될 텐데 말이다. 해서 갈등과 싸움의 유무로 그 회사의 좋고 나쁨을 판별할 수는 없다. ‘좋은 회사’란 갈등이 없는 회사가 아니라 하나의 공통된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공유하는 회사다.


불편한 진실 03 : 사실 회사 밖은 더 ‘이상하다’

그렇게 못 그만두어 안달인 회사도 누가 억지로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간 적은 없다. 내가 지원서 내고 자소설까지 써가면서 ‘저를 뽑아만 주신다면~!’하며 있는 패기 없는 패기 다 끌어모아서 들어갔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회사들은 각각 제 나름의 불합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야근이 많거나 복지부동하거나 열정을 착취하거나.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세상 자체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면이 있으니 그 세상의 일부분인 회사 또한 어느 정도 이상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보통은 회사의 불합리보다 회사 밖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함이 더 큰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도 또한  나름의 결함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회사의 불합리함을 탓하기 전에 그 불합리함이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인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주말에 카톡이 오는 건 참지 못한다. 어떤 이는 야근하는 건 괜찮지만 상사가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건 견디기 힘들어한다. 

아무튼 그 불합리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다른 직장을 찾는 게 낫다. 괜히 다니면서 투덜거리는 건 그 불합리함을 용인하며 적어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보려고 하는 이들, 그리고 그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는 짐만 될 뿐이다. 반면 그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고 직장 생활을 하기로 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는 최대한 그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그냥 앉아서 그런 불합리함에 대해 평론만 하고 있다면, 어차피 그 불합리함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나 혼자보다는 낫다

저 부서는 왜 일을 이렇게 못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가 그걸 직접 처리하려면 더 잘할 수도 없다. ‘아니 왜 사진을 이렇게밖에 못 찍었지?’ 그래도 내가 직접 찍는 것보다는 낫다. ‘영업 진짜 갑갑하게 하네’라고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 전화해서 약속 잡는 일부터가 부담스럽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다들 그 업무에서만큼은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보다 낫다는 건 내가 모르는 영역이나 갖추지 못한 기술과 역량을 지닌 이들에 대해서만 통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잘 아는 분야를 대할 때는 야박해진다. 특히 부하 직원이 처리한 업무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시간만 있었으면 이것보다는 잘하는데….’ 하지만 어차피 나는 시간이 없었고 그렇다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역량의 문제를 떠나 여력의 문제로 인해 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부하 직원, 혹은 파트너사, 대행사 등등은 어쨌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의 시간을 들여서 해낸 것이다. 그러니 그건 또 그것대로 존중할 만한 일임이 틀림없다


훌륭한 회사는 때론 100명이 모여서 1000명의 생산성을 내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회사는 100명이 모여서 70명, 50명의 생산성밖에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들고 프로세스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 혼자였으면 할 수 없었을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는 짜여 있다. 나 혼자서는 10인분은 둘째치고 2인분도 못 할 게 뻔하다. 어쨌거나 회사는 거인이니까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뎌도 내가 열심히 달린 것보다 10배는 낫다. 생각해보면 사람을 여러 명이나 모을 수 있고 그나마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회사 같은 곳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것들을 접하고 볼 기회를 주니, 그 또한 회사가 주는 장점이다.


우리 회사만 이상한 거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이상하다. 여러 회사를 다녀봤지만,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이 회사, 뭔가 이상한데….’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상하다’라고.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괜찮은 회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회사란 알고 보면 애초에 이상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다들 각자 다른 속내와 의도를 지닌 이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니 이상하지 않을 리 없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라 개중에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이상한 회사도 있다. 하지만 남들 보기에는 꽤 좋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만나보면 대부분 불평과 불만을 품고 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지만 다니는 입장에서 회사라는 곳은 항상 뭔가 더 개선하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불합리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이상적인 회사를 설정해두고 “우리 회사는 이상해”라고 한다면 회사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우리 또한 개개인으로서 이상적인 인간이나 이상적인 직장인과는 거리가 먼 경우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회사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수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회사라는 조직은 그렇다. 엘리트들이 모여 바보 짓을 하기도 하고 B급이 모여 S급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집단 지성이 어쩌고 하지만 원래 사람은 제대로 된 가이드와 프로세스가 주어지지 않으면 여럿 모여 어리석어지기가 더 쉽다. 팀워크는 둘째치고 하향 평준화로 치닫는다. 서로의 장점을 따라 하는 건 노력이 필요하지만 서로의 단점이 시너지(?)를 내는 데에는 별 힘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개별적으로는 똑똑하나 집합적으로 멍청한 조직’이 생겨난다.


그러니 '우리 회사만 이상한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은 버리자. 회사는 그냥 다 이상하다. 


P.S  다음 6회차 동안은, 왜 회사가 이상해지는지를 관찰한 '회사 관찰기'를 연재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



일러스트레이터 : 애끼(@aggi.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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