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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Nov 28. 2018

회사라서 하는 일,
호모 콤파니쿠스의 탄생

회사 관찰기 1편 

‘호모 콤파니쿠스(Homo Companicus)’의 탄생

‘왜 회사를 그만두냐?’는 질문에 '적성이 안 맞아서요'라는 얘기는 하나마나 한 얘기다. ‘적성이 안 맞아서요’라니...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미처 들지도 않은 정신을 주워 담아 좀비처럼 만원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부대끼는 게 누군들 적성이 맞을 리 없다. 하루 종일 파워포인트 켜놓고 여기 있는 사각형 저쪽으로 옮기고 별 차이도 없는 단어들을 누군가의 기호에 맞게 바꾸는 게 적성에 맞을 리 없다. 어제 한 얘기, 오늘 또 하면서 별로 대책이 되지도 않을 거 같은 대책들을 대단한 일인 양 도돌이표 찍는 회의만 하다 상사에게 욕 먹는 그런 직장 생활이라는 게 적성에 맞을 리가 없다. 


인간은 어쩌면 애초에 직장 생활 같은 게 안 맞도록 태어났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건 20만 년 전쯤이고, 농경 사회가 된 게 아무리 빨리 쳐도 1만 년 전쯤이라고 한다. 농경 사회에서야 출근 시간이라는 게 정해져 있었을 리 없다. 해 뜨면 일 나가고, 해지면 잠이 들었겠지. 좀 더 살펴보니 애초에 지금의 ‘기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처음 생긴 게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동인도회사를 만들었던 17세기 초 무렵이라고 한다. 약 400년 정도 밖엔 안 된 녀석이다. ‘출근’이라거나 ‘시간 개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작 300년이다.  역시나 영국이 산업화 시기에 공장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개념이다. 당시 공장 노동자들에게 제일 먼저 요구한 게 ‘출근 시간 엄수’였다고 한다. 그들이 제때 출근하지 않으면 비싼 기계들이 그냥 놀아야 하니까. ‘상사(Boss)’라는 단어도 1830년대까지는 그리 많이 쓰이는 단어가 아니었다고 한다.

©애끼

 ‘회사’라는 건 인류의 장구한 역사에서 봤을 때 아주 최근에 나타난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는 무척 당연한 척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이 ‘회사’라는 존재가 낯설고 어색한 것이다. 그 안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호모 콤파니쿠스 Homo Companicus’라는 존재로 진화하기에는 우리 스스로도 아직 힘든 게다. 


생겨난 지 300~400년도 안된 ‘회사’에 ‘출근’하는 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상사’라는 포식자에게 인간의 DNA가 그렇게 빨리 적응할 리가 없다. 출근은, 그리고 직장 생활은 어차피 인간의 본성에 안 맞다. 해서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사회적 요구에 맞추기 위해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7시부터 5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두고도, 한 번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매일 아침 알람 소리를 듣고 깨어나서 출근을 하는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꽤 대단한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자신의 본성과 싸워 이겨내고 있으니 말이다.



‘회사’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 

‘회사’라는 곳을 다니다 보면 많은 군상들을 만나게 된다. 같은 회사의 직장동료가 아니어도 관계사나 협력 업체 등등 사람을 만날 기회는 많다. 그들은 때론 나의 동료이고, 나의 선배이며 상사이다. 나와 함께 성장하고 나와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 하지만 때론 적으로 우리를 시기하기도 하고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그들이 하나의 ‘개인’으로서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회사라는 공간이, 직급이라는 위치가, 부서라는 배경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일을 하면서 타인의 탓을 하기는 참 쉽다. 그러면 아주 쉽게 내 잘못이 아닌 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 과장은 그냥 정말 너무 게으른 사람이어서 그 일을 안 한 걸까? 박 대리는 정말 나쁜 사람이어서 내 뒤통수를 친 걸까? 이 과장은 태생적으로 얍삽한 인간이라서 저 일을 교묘하게 김대리에게 떠넘기는 걸까? 최부장은 원래 꼰대라서 그렇게 남의 말을 안 듣는 걸까?

그들도 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텐테, 회사에서는 왜 저러는 걸까. 김 과장도 처갓집 가면 듬직한 맏사위 노릇을 하고, 박 대리도 딸이랑 통화할 때 보면 세상에 저렇게 좋은 사람이 없던데. 이 과장도 고향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의리 하나는 킹왕짱이고, 최부장은 와이프 말이라고 하면 끔벅 죽는 시늉도 하던데…아, 그러면 역시나 회사가 문제인 걸까. 회사가 사람을 저렇게 몰아가고 있는 걸까? 


예를 들면 운전을 하고 있는데 사고가 났다고 생각해보자. 운전을 하고 있는데 옆 차가 부딪힌다. 일단 대뜸 내려서, 운전을 왜 그 따위로 하냐고 화를 내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고 상습지역이다. 오늘만 해도 세 번째란다. 신호등이 10m만 더 앞에 있어도 안 날 사고인데, 구청에서 엄한 곳에다 신호등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단 눈에 들어온 건 옆에서 치고 들어온 차니까 화를 낸다. 구청에서 일을 그 모양으로 했어도, 사고를 안 내는 사람도 있긴 하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개인의 탓을 해본다. 


그런데 회사 일을 하다 보면, 신호등 하나 잘못 세워진 정도가 아니라 그냥 차선도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작 욕을 먹어야 할 사람은 제대로 일이 돌아가도록 세팅을 해둬야 할 사람들인데…. 어느 순간 아무 권한도 없는 사람들끼리 책임만 짊어지고 싸우고 있다. 아, 물론 모두 다 책임이 없지는 않다. 그 난장판 속에서도 사고 안 내고 착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으니까 말이다. 


‘호모 콤파니쿠스’의 속성 안에는 인간이 '회사'라는 거인과 함께 생활하며 그 위계 구조 하에서 '업무'라는 형태의 한정된 인간관계를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맺게 될 때 생겨나는 특징이 있다. 회사라는 공간에 있다 보니, 그 관계성 안에서 회사가 아니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과 심리들이 극대화된다.  

한 명의 인간을 그린다면 몬드리안의 그림이 아닌 점묘화에 가까울 것이다. 한 명의 인간에게는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 개인으로서의 아무개,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배우자, 누구누구의 친구, 누구누구의 고교 동창, 카페 옆자리의 매너 좋은 시민 등등.... 그 정체성들이 각각의 색깔과 크기로 자리 잡아서 한 인간을 구성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회사’라는 조직에 함몰되다 보면 '회사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크게 자리 잡힌다. 마치 그 점묘화 한가운데에 커다란 블랙홀이 있어서 그 모든 것들을 흡수해 버리는 것이다. 

‘호모 콤파니쿠스적 사고’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들이 협업을 하기 위한 일종의 상호 주관적인 사고 체계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적절한 거리감을 갖추지 못한다면 다음 화에 소개할 '오피스 몬스터'로 흑화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원전 1만 년, 인류  최초로 상단을 꾸렸던 고대 아시리아에서 전해져 오는 <직장의 서 :1장>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한다. (물론 저런 게 있을 리 없다;;) 오늘 하루도 회사에서 고달플 이들에게 바친다. 


[ 호모 콤파니쿠스를 위한 직급 설명 사전 ]
사원 : 회사를 ‘사원寺院’처럼 생각하며 참고 인내하며 수도승처럼 다니는 사람.
대리 : 앞으로 나올 사람들의 일을 대부분 ‘대리’해서 하는 사람. 
과장 : 자기 업무 성과는 뭐든 ‘과장’하는 사람.
차장 : ‘차’일피일 미루면서 책임만 회피하며 회사에서 ‘장’수하길 바라는 사람.
부장 : 직원 ‘부’른 다음, 일만 던져주면 ‘장’땡인 줄 아는 사람. 
이사 : 시간과 돈은 '이(2)'만큼 줘놓고 성과는 '사(4)'만큼 바라는 사람.
상무 : 생각 상想, 없을 무無. 한마디로 생각이 없는 사람.
전무 : 자기는 전부 다 안 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아는 게 ‘전무全無’한 사람.
대표 : 회사의 수준 또는 한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람. 가끔은 ‘대표’적으로 아는 게 없기도 한 사람. 
회장 : 이 분은 건드리면 안 됨. 그러니 여기까지만.





일러스트레이터 : 애끼(@aggi.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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