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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Nov 14. 2018

당신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신호

회사와의 관계를 끊어야 할 때

종종 후배들이나 지인들이 물어볼 때가 있다.


 회사는 언제 그만둬야 하나요?

그럴 때면 농담처럼 말한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그 모든 날이 퇴사하기에 좋았다.

라고. 그런 고민이 든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징후이다. 


묘하게 '퇴사'라는 것도 해 본 사람들이 계속한다. 어떤 이들은 10년을 고민하면서도 한 곳에 가만 있기도 한다. "그래도 이직한 지 1년밖에 안 되었는데..." , "직급은 올리고 가야...", "경력을 인정받으려면 그래도 몇 년은...", "이 정도 안정적인 직장 찾기가 쉽지 않잖아요." 등등, 퇴사를 주저하게 되는 이유들은 제각각이고 회사를 다녀야 할 이유들은 항상 차고 넘친다. 그리고 그 이유들은 꽤나 정당하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 주저함의 이유들은 '이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기본 전제에서 시작되는 고민들이기도 하다. 해서 퇴사를 한다는 건, 언제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들, 혹은 조금 더 다니면 생겨날지 모르는 편익들이 아까울지 몰라도, 머뭇거리다가 잃게 될 기회비용을 떠올리면 회사를 옮긴다는 게 그다지 큰 리스크만은 아니었다. 종종 '퇴사의 타이밍'에 연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퇴사란 '타이밍'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닐 수 있다. (단, 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이 확정적인 경우라거나 직급 변경이 6개월 이내에 있을 거라거나 하면 좀 더 다니는 게 맞다.)


이상하게도 개인적으로는 퇴사를 하고 나면 항상 그 직전에 다닌 회사가 묘하게도 큰 변화를 겪은 경우가 많았다. 큰 조직 개편이 있거나 회사가 매각이 되거나 혹은 문을 닫거나. 해서 아래의 내용은 일종의 하인드 사이트(hindsight:사후에 얻게 되는 깨달음)처럼 복기해보는 내용이다.

©애끼


Case 01. 회사가 새로운 위기나 기회에 대처하지 못할 때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확보하고 있는 회사라도 명백히 보이는 위기나 기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는 이직을 고민해보는 게 좋다. 이런 경우 회사가 갖추고 있는 '안정적임'은 허상이다. 그것은 한순간에 '안주'로 돌변하며 그 캐시카우 자체가 무너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게 된다. 특히 아예 업계 자체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느껴지면 비록 지금 당장 움직이지는 않더라도 항상 전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처음으로 몸담았던 매거진 업계는 퇴사할 당시만 해도 호황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업계 전체가 디지털의 영향으로 연이어 매체가 폐간되는 등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Case 02. 조직의 모멘텀이 꺾일 때

스타트업, 벤처 같은 규모가 작은 회사라면 직원들의 열정이라는 모멘텀이 꺾이는 순간 그만두는 게 좋다. 보통 회사의 방향성이 흔들리고, 그나마 수평적이던 커뮤니케이션이 대표나 몇몇 임원의 톱다운 top-down 방식으로 바뀌는 순간과 묘하게 겹치는 경우가 많다. 큰 배는 조금 휘청거려도 어느 정도 나아가지만 작은 배는 바로 침몰하고 만다. 작은 회사일수록 회사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뀐다. 그리고 곧이어 재정 문제로 직결된다. 특히 자본금 등이 서서히 마르면 회사 고위층의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자신들의 의견만 내세우게 되니 회사 분위기와 자금 상황이 일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Case 03. 직원을 '오남용'하는 회사

무엇보다 회사 규모와 무관하게 야근이 차고 넘쳐서 하루에 6시간 이상 잠을 자기도 힘든 회사, 주말 근무를 당연히 생각하는 회사, 체력적으로 힘들게 하는 블랙 기업이라면 냉큼 그만두는 게 낫다. 그런 회사가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오너나 대표의 마인드 자체가 ‘부하 직원을 갈아 넣어 돈을 벌겠다’로 세팅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노동력은 결국 멘탈과 체력인데, 블랙 기업은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좀먹는다. 노동자가 평생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용해야 할 자산을 정당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갉아먹는 거다. 그런 회사는 계속 다녀봤자 앞으로 벌어서 병원비로 까먹게 된다. 차라리 잠시 백수 생활을 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이직이나 전직을 알아보는 게 장기적으로 나은 선택일 수 있다.


Case 04.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때

일이 그리 힘들지 않고 야근도 별로 없고, 그런데 이 회사에 계속 있다간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회사도 있다. 이미 업무 루틴이 몸에 배어 있고 자신이 잘하는 것에 기대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곳.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회사를 다닐 때일수록 가장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적당히 나쁘지 않으니 크게 벗어날 고민도 하지 않고, 그런데 그 와중에 불만은 조금씩 쌓여가는 구조다.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준비하든, 옮기고 싶은 직군에 대해 공부하든 무언가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회사의 특징은 그런 준비를 하기에는 또 딱히 나쁘지 않은 구조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지 않고 있다면 이건 결국 개인의 탓이다. 

 

©애끼

회사와의 관계 설정을 위한 사분 면

앞서 말한 내용은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정도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개인마다,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게 마련이고 똑같은 회사라도 개개인의 커리어 패스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계기가 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매너리즘의 반복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낮은 연봉이 고민인 분이라면 워라밸이 썩은 블랙기업이라 해도 연봉을 1000만 원쯤 올려준다고 하면 가서 일 년 정도 고생하는 게 전략적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요는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커리어에서 채워야 할 포인트는 다르기에 하나의 기준(연봉, 워라밸, 기업 문화 등등)만을 세워두고서 어떤 회사는 무조건 나쁘고 어떤 회사는 무조건 좋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다만 스스로가 회사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질 필요는 있다. 그런 관점이 있어야 커리어 패스의 변곡점을 선택하는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이나 커리어에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두 가지 정도 떠올려보면 일종의 사분 면이 생긴다. 예를 들어, 직장 생활에서 가장 흔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장 가능성과 ‘워크-라이프 밸런스’라는 가치를 각각 하나의 축으로 놓을 수 있다. 나의 커리어를 놓고 보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나온다.



일은 많은데 성장하기조차 힘든 3사분 면에 있다면 냉큼 퇴사해야 할 것이다. 2사분 면이나 4사분 면에 위치한 회사라면 일단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 두 가지 가치 중에서 지금 무엇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가치의 축은 달라질 수 있다. 높은 연봉, 낮은 업무 스트레스, 고용 안정성, 육아 편의성, 사내 복지 등 무엇이어도 좋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회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만들어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자신만의 방향성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터 : 애끼(@aggi.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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