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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Oct 31. 2018

'퇴사 이벤트'를 해보았습니다

퇴사, 그 달콤씁쓸함에 대하여

8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둔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인이 합류한 스타트업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것. 디지털과 관련한 회사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이직을 결정했다.

2013년은 스타트업 붐이 한창이었고, 커머스 업계에서는 소셜 커머스 3사가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던 시점이었다. 참여하기로 한 회사는 해시태그(#)를 기반으로 유저 참여에 의한 큐레이션 커머스를 지향하는 곳이었다. 듣기만 해도 낯설었다. 지금이야 해시태그가 일반화되었고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도 식상해진 감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했다. (서비스를 소개하러 가면 해시태그에 대해 설명하는 데만도 30분이 걸렸다. 그래서 망했나 싶기도 하다.;) 커머스가 물건을 유통하는 일이라면 미디어는 콘텐츠를 유통하는 일이었다. ‘디지털에서 무언가를 유통’하는 일을 해본다면 나중에 다시 콘텐츠를 디지털상에서 유통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막상 그만두려니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8년을 다닌 첫 직장이었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게 그런 거였다. 퇴사 한 달쯤 전에 미리 얘기를 하고 마무리했다. 경쟁 업체로 옮기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업계로 이직을 하는 거다 보니 보내주는 분들도 다행히 격려해주는 분위기였다.


퇴사라는 게 좀 그렇다. 아예 안 잡아주면 ‘내가 이 정도로 쓸모없는 인간이었나?’ 싶어서 섭섭하고 너무 끈질기게 잡으면 마음 불편해지고. 어딘가 이별을 앞둔 연인 사이의 밀당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연애로 치면 내가 분명 헤어지자고 했는데 상대가 너무 쿨하게 ‘오케이!’ 이러면 마음 상하고 너무 눌어붙으면 ‘얘는 대체 왜 이러나’ 싶어 지는…. 그런 의미에서 꽤 좋게 마무리된 거다.


퇴사가 확정되고 나니 새삼 그 회사에서 스쳐 지나간 이들이 떠올랐다. 막바지가 다 되어서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며 그동안 쌓은 정까지 갉아먹는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남들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말들을 상사에게 당당하게 털어놓고 영웅처럼 사라지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퇴사하고 난 지 한참 되어서야 “어? 그 친구 그만뒀어요?”라며 반문하게 만들기도 했다. 퇴사라는 과정을 겪으며 여차하면 껄끄러워 지거나 어그러질 수밖에 없는 관계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커리어를 떠나 그 관계 속에서 함께한 시간이 자기 삶의 일부분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무리는 중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퇴사 이벤트’를 해보았습니다

라고 쓰곤 있지만, 거창한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8년 동안 다니면서 제일 아쉬웠던 순간이 함께 일하던 이들이 소리 소문 없이 퇴사하는 것이었다. 지난주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인데 몇 주가 지나서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얘기를 전해 듣거나 퇴사 당일에야 그 소식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왠지 그렇게 떠나기는 싫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우선 인사팀에 문의해서 전 직원의 명단을 받았다. 명단에 없는 파견직이나 상근 프리랜서, 어시스턴트 친구들의 이름은 부서별로 찾아다니며 리스트를 모았다. 그렇게 모았는데도 어딘가 허전했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어디 우리 회사 사람뿐이랴 싶었다.


다시 또 돌아다녔다. 사내에 입주한 외부 관계사들을 비롯해 청소 아주머니와 경비업체 직원, 구두닦이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이름을 다 담아 명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퇴사 하루 전날 퇴근길, 회사 1층에 있는 사내 카페에 명단을 붙이고 엘리베이터에 퇴사 포스터를 만들어 붙였다. “한 분 한 분 인사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대신, 카페에 커피 한 잔씩 맡겨두었으니 추운 날 한 잔 씩 드세요~!”라고.


포스터는 아트팀에서 디자인해주었고 ‘왜 이름을 물어보며 다니느냐’고 궁금해하시던 인쇄업체에서는 프린트를 공짜로 해 주었다. 또, 카페 사장님은 자기가 손해 볼지도 모르는 가격으로 커피값을 싸게 깎아주었다. 떠나는 마당에 또 한 번 그렇게 도움을 받았다.


인생이라는 인과율의 세계

포스터를 붙이고, 다음 날 마지막 출근을 했는데 출근하자마자 괜히 민망할 지경이었다. 얼굴로만 알던 이들이 먼저 인사를 해오고, 청소 아주머니께서는 “아이고, 총각. 오늘까지만 나오는 겨? 커피 잘 마실게요.”라며 안부를 물어온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어찌 전화번호를 알아냈는지 ‘커피 잘 마시겠다’, ‘고맙다’는 문자가 쉴 새 없이 울렸다(물론 그 와중에 떠나는 마당이라고 ‘이미지 세탁’하는 거냐는 예리한 질문에 뜨끔하기도 했다).

©애끼

별생각 없이 한 일인데 그 반향은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맺는 인간관계는 종종 짧고 단편적이라 쉽게 간과하게 되지만, 그 관계도 긴 시간 속에서는 하나의 인과율로 이어져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중에 무슨 이득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나둘 뿌려둔 마음들이 전해지고 전해져 언젠가 다시 만날 때 서로에게 따뜻하게 인사할 수 있는 여지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떠나는 순간에라도 함께한 시간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건 그 순간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 마음을 전하는 게 꼭 퇴사 전에 전 직원에게 커피 한 잔씩 돌려야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그게 커피든, 초콜릿 한 조각이든, 정성 들여 쓴 이메일이나 카드든 뭐 그리 중요할까. 다만 그대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고마웠다고 전하고자 하는 마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할 테니 말이다.


고마움을 전한다는 것의 의미

회사가 정말 지긋지긋해서 혹은 상사가 지독히 미워서 등등 좋지 않은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누구나 그런 마음을 조금씩은 안고 회사를 떠날지도 모르겠다. 첫 직장에서 보낸 나의 ‘8년’이란 시간 속에도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주일 동안 소파에서 쪽잠 자가며 ‘이러다 죽겠다’ 싶게 야근했던 순간 들, 일 때문에 서로 목소리 높였던 기억들, 상사에게 꼬장꼬장 대든다고 욕을 먹던 그런 힘든 시간들도 오롯이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그러니 왜 싫은 사람 하나쯤 없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싸워가며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왔기에 나 또한 덩달아 밥 벌어먹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면 그 또한 고마운 일이었다. 떠나는 마당에 회사 일로 굳이 누군가를 미워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끼

어쩌면 그로 인해 스스로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하다못해 최악의 경우 그 사람 때문에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덕분에 또 다른 삶을 접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무엇보다도 그 미움이 자신이 그곳에서 보내온 시간들을 부정하게 만든다면, 해서 스스로를 형편없는 인간으로 느껴지게 한다면 퇴사를 하고서도 여전히 그곳에 매여 있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러니 함께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그 작은 이벤트는 정작 나 자신을 홀가분하게 해 주었다. 그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쌓인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고 다시 새 출발하고자 하는 자신을 한층 더 가볍게 만들어주는 계기, 그래서 더 즐겁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나도 모르게 만든 모양새였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일은 몰라도, 퇴사 하나는 참 잘했네’라는 뿌듯함(?)이 들 정도로.


그렇게, 퇴사 인생이 시작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 애끼(@aggi.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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