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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Oct 24. 2018

직장 8년 차, 내가 나를 '빼먹고' 살고 있었다


'사회화'된다는 것

당장 그만둘 것처럼 굴었지만, 그렇게 8년을 다녔다. 인사팀에서조차 “8년 내내 그만둔다면서 아직 다니네”라며 농담을 할 정도였다. 일은 힘들어도 내가 기획하고 취재한 칼럼이 매달 책으로 나오는 건 다른 직업에서는 찾기 힘든 묘미였다. 낮은 연차에 그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서 업무를 할 수 있는 직업은 별로 없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내 글이 재미있다고 하거나 우연히 찾아간 곳에 내 기사가 스크랩되어 벽에 붙어 있는 걸 보면 꽤 뿌듯하기도 했다.


내키지 않는 일이라도, 적성에 안 맞다 싶은 일이라도 하다 보니 인이 박히고 연륜이 쌓였다. 낯가리는 성격이어서 모르는 이와 통화 한번 하려면 혼자 빈 회의실에서 몇 번이나 멘트를 연습하고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런 성격인데도 매달 인터뷰를 위해 스타를 섭외하고 커리어 칼럼을 쓰기 위해 직장인과 필진을 섭외하고, 나중에는 섹스 칼럼을 쓴다며 뻔뻔하게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다 동원해서 19금 질문지를 돌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보니 나도 모르게 ‘과잉 사회화’된 느낌이었다. 20대의 선이 날카롭고 까칠한 인간은 어느새 넉살 좋고 오지랖 넓은 30대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야근은 많았고 몸은 힘들었다. 그런데 또 어쩌다 수월하게 마감이 끝나면 아쉽기도 했다. 힘들게 마감을 마칠수록 그 후에 찾아오는 알 수 없는 희열감(?)은 오히려 더 컸다. 일명 '마감 뽕' 증상. 이런 것들에서 일하는 의미를 찾았다.

하지만 사실 매일매일 그만두고 싶었다. '곰돌이 푸'도 만약 직장생활을 해봤더라면 이렇게 얘기했을 터다.

매일 퇴사하진 않지만,
퇴사하고 싶은 일은 매일 있어.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나름 어렵게 들어온 직장이었고 막상 그만둔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소설이라도 써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또 어디 쉬운 일인가.


그나마 그런 건 낭만적인 핑계였다. 직장인이 되면서 어느새 씀씀이는 커져 있었다. 그새 결혼도 했고 생활비에 공과금에 보험료, 부모님 용돈 등등을 빼고 나면 매달 빠듯했다. 어느새 월급은 내 목줄을 쥐고 있었고 나는 그 돈에 ‘중독’되어 있었다. 이직할 자리를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다. 마감을 마치고 그나마 쉬는 며칠은 그동안 못 잔 잠을 보충하며 몸을 추스리기에 급급했다. 해본 일이 기자 일뿐이니 이직을 해도 비슷한 직군으로만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어쩌다 면접 기회가 잡혀도 희한하게 셀러브리티 인터뷰나 촬영 일정과 겹쳤다.


어느새 하루하루가 비슷해져 있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매번 새로운 곳을 찾아가고 매번 새로운 기사를 쓰지만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스케줄과 프로세스는 꽤나 비슷했다. 내 안에 새로운 것들이 쌓여간다기보다는 그전에 알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 빼먹으며 사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공들여 기사를 써봤자 ‘유통기한 한 달짜리 글’이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처음에는 영혼(?)을 담아 쓰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도 자료를 담아 글을 쓰고 있었다.써놓은 글들이 동어 반복처럼 느껴졌다. 예전보다 쉽게 써지는데 예전보다 깊이 고민하지는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칸을 메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변화가 필요했다.


뭐라도 좀 새로운 거

2000년대 후반에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출시되면서 미디어 쪽에서도 디지털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기자 6년 차에 디지털 부서로 이동을 신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프라인 매체에서 디지털 부서로 옮기는 건, 남들 보기에는 ‘좌천’이나 매한가지였다. “왜?”냐고 물어보는 이들에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디지털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 같아서요”도 아니었다. 그냥 늘 해오던 일이 지겨워서 뭐라도 딴 게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새로 옮긴 부서에서는 오프라인 잡지를 아이패드 버전으로 출시하고, 그와 별도로 모바일에 맞춘 콘텐츠 사이트를 론칭했다. 당시로는 드물게 자체 사이트에 카드 뉴스 포맷을 차용해서 콘텐츠를 만들고 모바일을 고려한 동영상도 제작하는 등 나름 새로운 시도들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회사와 관련한 증권사 리포트를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동사는 아이패드 매거진을 론칭하며 디지털 변화에 공격적으로 대응하며…” 등등으로 하며 주가 상승을 예측하는 기사였다. ‘그거 내가 만드는데, 그거 지금 매출 완전 안 나는데… ’.

웃다가 생각했다. 우리는 과연 ‘공격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아니 우리는 정말 '새로운' 걸 하고 있는 걸까? 오프라인에 캐시카우 cash cow가 있는 회사들은 당시만 해도 디지털 사업을 키우는 데 관심(혹은 절박함)이 없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 등이 떠밀리기 전까지는 지금 손에 쥔 걸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디지털이 뜨고 있다니까, 뭐라도 시도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키워갈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다(몇 년 전에 부장님들이 다들 “어, 거 요새 페북 같은 거 한다며? 우리도 그런 거 해봐야 하는 거 아냐?” 이러던 분위기랑 별반 다르지 않다).

©애끼

이름은 디지털인데 기존 미디어에서 하던 방식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종이에 실리던 콘텐츠를 조금 변형해서 디지털에 올리고 있을 뿐, 그 밑에 깔려 있는 사고방식과 업무 프로세스는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원래 할 줄 알고 있는 걸 조금 변형해서 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던 것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제야 그냥 ‘열심히’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긴 엄청 바쁜데 그냥 하던 것만, 잘하던 것만 계속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새롭지도 않은데 새로운 걸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단지 바쁘다는 것이 ‘타성에 젖어 있지 않음’을 보증하지는 않을 터였다. 같은 의미에서, 부지런하다는 것이 나 자신이 ‘나태하지 않음’을 보증하지는 않았다. 돌아서 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일들을 분주히 하고 있을 뿐일 때가 사실 더 많았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먼저 익혔거나 혹은 그걸로 밥벌이를 해왔기에 조금 더 잘 알고 잘하는 일들을 하며 그 조그마한 비교 우위에 기대어 살기도 한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것에 빠져 바쁘다는 말을 되뇌고 있을 때 정작 그것은 또 다른 안주이며 게으름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돌아서 생각하니 그런 것들에 가까웠다.


쳇바퀴의 다람쥐도 언제나 바쁘고 부지런해 보이는 건 매한가지였다.

©애끼

그리고, 그 순간의 나도 그랬다.



일러스트레이터 : 애끼(@aggi.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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