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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Oct 17. 2018

인생 최대의 착각,  취직하면 좋을 줄 알았다


어쩌다 취직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꿈이라는 게 크게 없었다. 방송국 PD나 영화 관련의 영상일이 하고 싶어 신문방송학과를 가긴 했다.  어느 유난히 추웠던, 어느 겨울 단편 영화 한 편을 찍어보고는 냉큼 접었다. 골방에서 추위에 떨며 컵라면 먹으며 새우잠을 자며  골골대다 깨달았다.


“이거 하면 제 명에 못 죽겠구나.”


애초에 그리 건강한 체질도 아니었다. 그래서 접었다. 어차피 내 좌우명은 "No Pain No Gain"(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이 아니라 "No Gain No Pain"(얻는 게 없어도 좋으니 안 아프면 좋겠다)였다.


글 쓰는 걸 좋아하니 글을 써서 먹고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항상 했지만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게 잡지사 공채였다. 국내 1,2위를 다투던 매거진 발행사였다. 메인은 여성 패션지였지만 마침 영화 전문지와 여행지도 함께 발행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네 키드'라고 영화 전문지<KINO>를 끼고 살았는데, 글도 쓰고 좋아하는 영화 관련 일도 하고. 뭔가 꽤 괜찮아 보였다. 설마 남자에게 여성 패션지를 만들라고 하지는 않겠지 싶어서 덜컥 원서를 냈다. 12월이 코앞이었고 해를 넘기기 전에 지원서를 하나라도 더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도 컸다.


운 좋게 필기를 붙고 면접 자리까지 올라갔다.


면접관  “그런데, 어떻게 우리 회사에 지원하게 되었나요?”

 “저는 영화에 관심이 많고, 여행을 좋아해서 영화 잡지나 여행 잡지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면접관  “어? 그 잡지 두 개는 올해에 분사(分社)했는데. 이 회사에 붙어도 그 잡지들에는 못 가요.”

  “@_@;;;;;;;”


아… 회사 홈페이지가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었던 거였다.



잉? 취직이 되었다고?

그런데 취직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합격. 그 순간 다짐했다. 이제 캔커피와 자판기 커피의 세계를 떠나 스X벅스 커피를 마시겠노라고.


©hi.aggi

처음 취직을 했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그랬다. ”읭? 네가?” 망할 놈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 놈들도, 하나 둘 변절자처럼 취직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갔다. 아니 어른까지는 모르겠고, '사회인'정도는 가까스로 첫발을 내디뎠다.


드디어 "고생 끝! 인생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살면서 그만한 착각이 없었다.  




출근해보겠습니다


어쨌거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안에서도 사회에서도 그저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다가 내가 일해서 돈을 벌어 생활하게 된 것이다. 경제적 독립 같은 거창한 의미를 떠나서 이제 과자 정도는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이나 불안정한 수입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틸 것인지 고민하던 삶에서, 혼자 먹고 입고 자는 것을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동안 오냐오냐 하며 자란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의미에서 자립(自立)을 하는 기분이었다.

백수로 지낸다는 건 그렇다. 돈 없고 직업 없고 할 일 없고 그럼에도 항상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고 준비한다고 해서 원하는 걸 이룰 거라는 보장도 없고…. 마치 대책 없고 기한 없는 짝사랑 같은 상황. 노력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노력밖에 없어서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그런 상황.


출근을 한다는 건 그 모든 절박함과의 단절이자 결별이었다. 그 사전적 의미조차 와 닿았다.

출근出勤 : 일터로 근무하러 나가거나 나옴.

사실 그것보다도 매일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게 제일 좋았다. 생각해보면 유치원 이후로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다. '학교'라는 틀이긴 해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또래 집단과 어울리던 생활만 하다가,  1년 가까이 혼자 반지하 방바닥을 뒹굴어보니 깨달았다.


매일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참 착각이었습니다 그려


그렇게 살게 될 줄 알았다. 취직하면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어릴 적 TV 드라마에 나오는 직장인들은 다 그랬으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핏이 똑 떨어지는 슈트를 입고 출근하는 P.  소매 딱 걷어붙인 채 일하는 그의 팔뚝에 도드라진 핏줄. 적당한 야성과 적당한 이지의 미묘한 조화.  야근할 때는 넥타이 살짝 느슨하게 풀고 셔츠 단추도 한두 개쯤 풀어헤치고…. 남자인 내가 봐도 섹시하고 멋있게.  스마트하게 일을 끝내고 퇴근한다. 그의 집은 24평 아파트이거나 최신형 오피스텔. 샤워를 마친 주인공이 젖은 머리를 말리며 냉장고를 연다. 냉장고 안에는 캔 맥주가 줄을 맞춰 진열돼 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드는 P. 그리고 소파 깊숙이 기대어 앉아 캔을 딴다. 톡~ 주인공이 맥주를 들이켤 때마다 목젖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창 밖으로는 도시의 야경이 깊어만 간다.  

캬하하~ 마셔보지도 않은 맥주가 그렇게 맛있어 보일 줄이야. 여하튼 도시의 직장인은 약간 피곤해 보이긴 해도 시크하고 멋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언제나 큰 법. 나중에 패션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가 정말 허상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현실은 생존의 문제였다. 모든 걸 다 떠나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밤샌 후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허다했고 어떤 날은 나의 퇴근길이 다른 이들의 출근길이기도 했다. 아예 배낭에 일주일 치 속옷을 챙겨 출근을 하기도 했다.

©hi.aggi


입사 6개월 만에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백수일 때의 일상과 직장인의 일상이 같을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백수일 때는 나름의 루틴이 있었다. 아침 7시면 일어나 동네 공원에서 운동하고, 아침을 차려 먹고 공부하고 저녁에는 또 간단히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저녁 먹고 책 읽고…. 돈은 없어도 시간은 남아돌았고 돈 없는 놈이 건강하기라도 해야 한다며 꽤나 건전한 루틴을 만들었던 거다.  그런데 그 패턴이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지는 데는 6개월간의 수습 기간이면 족했다.


그래도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못하겠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새벽에 퇴근해서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도 다음 날 촬영에 빠진 건 없는지 걱정되어서, 쓰다 만 원고의 문구가 새삼 떠올라서 컴퓨터를 다시 켜는 일이 잦았다. 침대 옆에 메모지와 펜을 두고 자기도 했다. 원고를 세 꼭지나 썼는데 다음 날 눈을 떠보니 그게 꿈속에서 쓴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날은 허무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그렇게 ‘회사’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돈은 없어도 시간은 차고 넘치던 ‘취준생’에서, 시간은 언제나 부족한데 그렇다고 그다지 돈도 넉넉한 거 같지는 않은 ‘직장인’이 되어버린 느낌. 직장인이 된다는 건 그런 느낌이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닐까, 라며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그 후 8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일러스트레이터 : 애끼(@aggi.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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