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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Oct 10. 2018

'회사원'이라는 이름의 꿈

1988년의 장래희망


왜들 그렇게 물어봤나 모르겠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마치 내가 원하면 그 ‘뭐’가 무엇이든 다 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른들은 참 많이도 물어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으레 한 번씩은 했던 장래 희망 발표 시간. 그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반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으로 우쭐해지던 그 찬란한 이름, ‘장래 희망’. 1980년대 후반, 경제 호황기답게 그 시절의 아이들은 꿈이 참 원대(?) 했다. 그네들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대개 정해져 있기 마련이었다. 대충 아래의 직군들을 훑고 나면 몇명이 남지 않았었다. 


1. 대통령  : 무슨 ‘장長’ 자가 붙은 자리를 좋아하는 녀석들은 ‘대통령’이 꿈이었고 한 반에만 서너 명쯤은 있어 반마다 예비 경선을 치러야 할 상황이었다.‘정치’가 뭔지도 모르면서 자기가 거짓말과 음모 술수에 타고났다고 생각해서인지 ‘정치가’나 ‘국회의원’이라고 써내는 애들은 왜 또 그리 많은지. 


2. '사'자 시리즈 : 부모님 말씀 꼬박꼬박 잘 듣는 범생이들의 선택은 으레 판사, 검사, 의사의 ‘사’ 자 시리즈. 뭘 전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교수’를 하겠다는 애들까지 모으고 나면 이미 한 반의 절반은 끝나 있음.


3. 과학자 : 용돈 모아 산 프라모델 조립 실력이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라 생각했던 아이들. ‘과학자’는 죄다 태권 V나 마징가 Z를 만드는 줄 알고 로봇 한국의 미래를 밝히던 아이들. 


4. 언론인 : 사투리가 조금 덜한 것뿐인데 자신은 ‘아나운서’, ‘스포츠 해설가’ 가 체질이라는 애 한 두 명 꼭 있다. 물론 기자도 한 명 정도는 있다. 


5. 운동선수 : 달리기 좀 한다 싶으면 일단 ‘운동선수’. 종목이 뭐가 중요한가요.


6. 작가 : 교내 백일장에서 장려상으로 국어사전 하나 받은 애들의 선택. (이보게, 자네 문과를 가면 안 되네!)


7. 공공의 친구들 :  경찰, 소방관, 선생님, 간호사 

 

등등 그 찬란하고도 혁혁한 ‘장래 희망’은 말하는 아이가 누구냐에 따라 ‘우아~’라는 탄성이나 ‘우에~’라는 야유가 튀어나왔다. ‘그래, 저놈이면 꼭 될 거야’라는 수긍과 ‘니가?!’라는 의구심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오후의 햇살이 고즈넉이 내려앉은 교실, 그 안에서 이런저런 ‘장래 희망’이 불러온 신명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한바탕 어우러지고 있을 즈음 한 아이의 차례가 되었다.


©hi.aggi

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부터 쭈뼛쭈뼛한 모습이었다. 하긴 평소에도 딱히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운동을 잘하지도 노래나 춤을 잘하지도…. 뭔가 딱히 티 나는 게 없어서 오히려 그 평범함이 특징이던 아이. 자리에서 일어서긴 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해 있었다. 


“저는 커서 회사… 원이 되…고 싶어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교실은 찰나의 침묵에 사로잡혔다. 


“그래~ 누구누구 열심히 공부해서 꼭 그렇게 되자~”

“우리 ○○는 산수를 잘하니 까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거야~”


라고 아이들을 격려해주던 선생님도 조금은 당황하신 듯했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다음에 이어진 다른 아이들의 장래 희망 발표는 그리 신나게 들리지는 않았다는 거다. 30여 년 전 그 시절, ‘회사원’이라는 꿈은 열한 살짜리 아이가 꾸기엔 너무도 평범해 오히려 듣는 이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그런 꿈이었다. 


그 시절의 꼬마들에게 회사원이란 딱히 장래 희망 같은 것으로 내세울 직업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원래 꿈꾸던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자연스레 하게 될 그런 일처럼 느껴졌다. '회사원'이란 1 지망 떨어지고 나서 선택해도 될 (혹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2 지망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잠시나마 우리에게 배신자였다. 아니, ‘5월은 푸르고 우리들은 자라나는데’ 벌써 ‘회사원’을 꿈으로 내세우다니. 


그는 그렇게 본의 아니게 ‘동심 파괴자’가 되었다. 그저 회사원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2004년의 취업준비생은 궁금했다 아이는 회사원이 되었을까?  


초등학교 시절의 장래 희망 발표 시간 후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때 그 교실의 아이들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깨닫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어린 현자를 알아보지 못한 무지몽매한 것들이었다는 걸. 


자소서를 쓴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은 이제 그 순간순간이 평생 있는지도 몰랐던, 하지만 이제 내가 지원할 것이기에 내 인생의 최종 목표라고 우겨야 할 회사를 위해 재조립, 재가공, 미화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아래에서….” 어떤 날은 대한민국 방송 산업을 위해, 어떤 날은 자동차 산업을 위해, 어떤 날은 조선업 또 어떤 날은 석유화학 산업을 위해 지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되어야 했다.


혼자 뒤처진다는 느낌이 뭔지 바람 한 점마다 느껴지는, 그런 스물아홉 살 겨울이었다. 졸업 전에는 그나마 서류라도 붙었는데, 괜히 헛바람이 나서 졸업 후에 워킹홀리데이를 1년 다녀왔더니 이제는 서류 통과조차도 가물가물했다. 어느 새 공채 시즌은 서서히 끝나가고 올해 이력서 넣은 곳도 딱히 맘에 들어서 넣은 건 아닌데 한 번 떨어졌으니 내년에는 지원할 만한 곳이 더 마땅치 않겠다 싶었다. 방금 끓인 라면 국물조차 차게 느껴지는 계절이었다.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볼까’라고 생각을 해도 정작 사주겠다는 악마가 나타나지도 않는 형국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파우스트는 꽤 운이 좋았고, 메피스토펠레스는 어쩌면 호갱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자본주의에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야 하는 순간이 서글픈 게 아니라는 걸. 기껏 악마에게 영혼을 팔겠다고 마음먹었는데도 그걸 사겠다는 악마가 없을 때의 열패감이 더 크다는 걸. 

©hi.aggi

반지하 자취방에 가만히 드러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쪽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신발이 참 다양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낙엽이 행 인들의 발길에 차여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공원에 가서 운동이라도 할까 생각하다 동네 꼬마들이 놀아달라고 할 게 뻔해 번잡스러워 그냥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인간이 언제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 있는지, 마치 실험이라도 하듯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오전에 눈을 떠 해가 질 때까지 누워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가 생각이 났다. 그때 그 아이. 회사원이 되고 싶다던, 그 아이. 그는 ‘회사원’이 되었을까?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그리고 그 순간, 내일모레 서른인데도 백수인 나보다도 그가 더 걱정되었다. 그가 꼭 꿈을 이루었기를, 그렇게 우리 반에서 한 명이라도 꿈을 이룬 누군가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대통령이나 판검사, 의사, 기자나 작가나 뭐 그런 건 못 되더라도 누군가 한 명쯤은 꼭 자신의 꿈을 이루 었기를 말이다. 


그의 장래 희망이라는 게 사실 너무나 평범했기에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열한 살의 우리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해보고 싶다는 소망 하나를 위해 모두가 절박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상한 나라의 직장인


다음 해 봄,  저 백수는 직장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연재할 이야기는 어떤 관찰기입니다. 회사라는 곳에 발을 담근 후부터, 내내 그랬습니다. 토끼 구멍 안으로 굴러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느낌. 무언가 이상한데, 아무도 이상하다 말하지 않아서 그냥 굴러가는 또 하나의 세계에 떨어진 거 같았습니다. 하트의 여왕에게 목이 날아갈까 걱정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돌아 보니 다들 그랬습니다. 그저 트럼프 병정이라고 생각한 수많은 이들이 다들 그렇게 또 하나의 ‘앨리스’였습니다.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있지만, 참 지긋한 '밥벌이'라는 존재와의 관계는 쉽게 끝낼 수 없기에 사표를 가슴 한켠에 묻고 출근하는 이와, 사표를 기껏 내고서도 새로운 이력서는 준비하는 그 모든 이들. 그 모든 트럼프 병정들과 앨리스들에게,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토끼 구멍을 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서,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봅니다. 


오늘 하루도 ‘직장인’으로 살 수 밖에 없지만,
‘직장인’으로만 살고 싶지는 않은 그 모든 이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아. 





일러스트레이터 : 애끼(@aggi.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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