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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Jul 01. 2024

애도의 여정 01. 너와의 첫 만남으로부터

너는 선물이자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었어.

 표제와 글감의 관계가 저릿하다. 애도와 우리 아이. 이 두 단어가 이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상실의 아픔 때문인지 몰라도, 마치 잠시 꿈을 꿨다 꾼 것 마냥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당시의 모든 순간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온몸으로 아이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가득한 우리 집에서, 거리에서, 차에서, 병원에서, 지하철에서, 또 다른 수많은 공간들에서 아직도 울컥 눈물이 날 때가 종종 있다. 태담을 나누었던 안방 침대, 산책 삼아 함께 걸었던 공원, 진료받던 병원에 가는 길, 덜컹거리는 차에 소중히 안았던 부푼 배, 분홍색 임산부석, 너를 위해 준비했던 수많은 물건들과 검색 기록들, 임출육으로 둘러싸인 온갖 알고리즘, 무엇보다 달라진 나의 몸, 달라져버린 나의 시야. 7개월의 시간 동안 내 모든 일상이 아이로 둘러 쌓여 있었다는 걸 매일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 순간마다 울컥하며 머릿속에서 수많은 문장들과 장면들이 뒤섞여서 나를 정신없게 만든다.


 이 글은, 이렇게 답답한 머리와 가슴속에서 잔뜩 응어리진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내기 위해 토해내는 글이다. 깨져버린 내 시간들을 절절히 주워 담아서 풀어내면 조금 마음이 나아질까 싶어 글로 남긴다.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로 얻은 행복부터 갑작스러운 이별로 겪은 찢어지는 아픔까지 난생처음 겪어봤던 감정들의 연속이었다. 혼란스럽게 섞여있는 기억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렬로 정리해 본다. 애도의 여정으로 내 아이와 나를 둘러싼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며, 아팠던 기억들마저 사랑하기 위해. 좀 더 단단해질 나를 위해, 그리고 떠나간 너를 위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많은 말들을, 내 기억들을 글로나마 적어서 아기와 곪은 나에게 보낸다.

 


 22년 12월의 끝자락, 우리에게 생명이 찾아왔다. 둘이 생각했던 시기보다 너무 빠르게 찾아왔던 아이였다. 며칠 째 이어진 가슴통증에 이어서 숙취에 배멀미를 덧댄 듯한 미식거림에 야근 후 퇴근길에 비마트로 테스트기를 구매했다. 두 줄을 맞닥뜨리고 펑펑 울었던 그날 밤이 아직도 선명하다. 결혼식을 올린 지 고작 세 달이 지나가던 겨울, 준비되지 않았던 임신은 아직 단단하지 못했던 내게 당혹감과 무서움을 먼저 안겨주었다. 내가 옆에서 너무 울어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남편은 최선을 다해 나를 진정시켜 주었고, 다음 날 난 병원에 가서 아기 심장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생기면 우리 둘만의 시간이 끝나버릴 것 같은 아쉬움과 무서움은 뒤로 물러나고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시작됐다. 두근두근, 아직 점 같은 아가 난황이 내는 심장소리랑 함께 나도 두근두근. 우리가 처음 함께 한 심장소리 이중창이야. 심장소리와 초음파를 보며 “임신 6주 차네요” 하시는 의사 선생님,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면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그래도 우리는 아이를 원하던 부부였기에, 결혼식 후 2년 뒤에 가지자던 계획보다는 훨씬 빨랐지만 새로운 행복을 마주할 준비에 설레했다. 이렇게 엄마 아빠를 정말 놀라게 했던 우리 아이의 태명은 ‘깜짝이’였다. 부를 때마다 된소리로 똘똘 뭉친 탓에 입 속에서 귀여운 울림을 가져다주는 게 좋았던 이름이다. 깜짝아, 깜짝아, 깜짝아. 더 많이 소리 내 불러줄걸.


 아이를 가진 뒤 우리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출렁였다. 우리 둘은 임신 주차가 갱신되는 매주 금요일과 하루하루 커가는 아기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초음파 보는 날만 기다렸다. 우리 둘의 자식이라니, 우리가 부모라니. 이게 모성애일까? 하고 스멀스멀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처음 느껴 본 사랑의 형태가 신기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괜히 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이 사랑을 전염시키며 점점 더 커지는 사랑의 늪 속에 빠진 기분이었다. 당신이 우리 아가의 아빠고 엄마야. 말도 안 되지만 우리가 부모래. 둘이 함께 보러 간 첫 진료에서 처음 받아보는 산모수첩을 만지작거리던 남편의 모습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표정이자 눈빛이었고,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뭘 먹고 바를 때마다, 어디를 갈 때마다 아가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내가 신기했다. 원래도 난 아기들을 좋아했지만, 길가에서 보는 아기들이 더 사랑스러워지고 더 소중해 보이는 우리 부부가 신기했다. 깜짝아, 너는 정말 선물이 맞다. 너는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선물해 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첫 아가란다.


 며칠을 골라 우리의 추억을 담을 초음파 앨범을 샀고 진료마다 받은 초음파 사진을 소중히 넣으며 날짜와 감상, 주차 기록을 적어 나갔다. 9주 차 젤리곰은 정말 잊을 수 없지. 작은 점이었던 세포가 언제 그렇게 커서 머리랑 몸통 그리고 팔다리 뿅뿅 튀어나오게 되었을까. 얼마나 크기 위해 용썼을까.


 임신 초기부터 15주차? 정도까지는 입덧 때문에 꽤나 고생했다. 출퇴근 지옥철도 너무 힘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토하기 일쑤였다. 냄새에도 어찌 그렇게 민감했던지. 냉장고 정수기 물도 비린내가 나서 못 마시겠어서 우유나 포도 주스를 많이 마셨었다. 입덧만 왔으면 모를까, 속이 조금이라도 비면 또 울렁+미식거리는 먹덧까지 와서 간식도 엄청나게 먹었다. 원래 단 거를 크게 찾아 먹지 않았는데, 초코송이가 그렇게 당기더라. 깜짝아, 넌 나라는 사람이 초밥과 회를 잊게 만든 엄청난 아이였어. 일주일에 7번 먹고 싶던 회에 대한 생각이 싹 사라지게 만들다니, 넌 정말 대단한 아이였단다. 너네 아빠가 어찌나 놀라워했던지 너도 들었니?


 각자의 부모님께 알리던 날들도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2024년을 맞아 킥킥대며 준비한 깜짝 선물들을 부모님들에게 건넬 때의 그 아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곧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는 사실부터 당신 자식들이 부모가 된다는 사실에 걱정부터 놀라움까지 오만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표정에 괜스레 난 눈물이 나기도 했다. 28주 동안 나도 아이를 가져보니 조금은 알 것 같은 부모님의 마음과 인생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한층 커졌다. 우리에게 깜짝이가 소중하고 소중했던 만큼, 우리도 그렇게 컸겠지.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몸소 느끼며 우리 부부는 한층 더 어른에 가까워지는 길을 함께 걸었다.


 맞아, 그리고 넌 우리 부부 친구들 사이에서 거의 첫 번째 조카였어. 이른 결혼에 이어서 빠른 임신까지. 엄마 아빠 닮아서 성격 급한 건 타고났었나 봐. 첫 조카인만큼 관심도 사랑도 많이 받았지. 임신은 우리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변주하게 하는 큰 이벤트인 만큼,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과 축하 속에서 한 주 한 주 자랐단다. 그 기대와 관심, 사랑이 정말 고맙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나날들이었다. 친구들 사이 첫 임신, 첫 주니어라는 그 타이틀이 너무 벅차고 썩 마음에 들었다. 나는 비록 입덧과 붓기, 관절통, 어지러움으로 고생도 겪었지만 그 고생을 상쇄할 만큼 네가 준 행복이 컸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아마 너를 갖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정들이었을 거야.


 이 모든 기억들이 네가 준 선물이다. 아가야, 이렇게 너의 존재는 정말 우리 가족에게 선물이었어.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는 평생 죽을 때까지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되었단다. 여전히 널 사랑하고 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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