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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Dec 15. 2022

40대 무자본 창업기 9편

부업이 월급을 넘어설 때.

출근해서 회장 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일할 의욕을 잃어갔다.


의욕 없는 직장인, 그건 나였다. 아침에 일어나 사무실로 가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쳇바퀴 같은 삶,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어느새 나는 15년 차 직장인의 었다.

진짜 파는 다람쥐 쳇바퀴 (출처-인터파크)

회장 아들이 회사에 온 것도 한몫을 했다.

20대 후반, 벌써 직급은 나와 같았고,

내년에는 임원 승진할 거란 소문이 많았다.

지금은 L본부장 밑 국내본부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지만 그것도 머지않은 것이다.


작년 그룹 역사 최고액으로 미국 S사를 인수 합병해서 올해 PMI(기업 합병 후, 통합작업)가 마무리가 되는 내년 초 글로벌본부를 총괄한다는 그림이 이미 다 그려졌다는 소문었다.


지금은 먼발치에서 보지만 내년에는 회장 아드님 수발을 들어야 했다.

나의 파트원 B와 T말로는 장 아드님은 미국 유학파 컨설턴트 출신을 선호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나는 불리했다.

(팀장 달기는 글렀구나..)

출처-픽사베이

그런 내가 신발을 팔아 5천 원을  뒤 에 불꽃이 띄었다. 

그동안 숨어있던 그 욕이라는 것, 열정이란 게  쏟구치는 것이었다.


부동산은 종잣돈이 없어 못해, 코인은 너무 위험서 못해, 주식은 손해만 서 못해, 남들은 잘도 잘된다는데 나는 못했는데 발로 냈다.


나도 남의 신발 가지고 이익을 남겨먹는 되팔이, 리셀러들 욕을 했지만 , 그렇다고 내가 못할게 뭐 있냐 싶었다.

좋아하고 잘 알고 돈까지 벌 수 있다는데.


그때부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리셀에 뛰어들었다. 김밥 한 줄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이어트한다고 핑계를 대고는 회사  신발매장 들러 돈 될 신발이 없는지 스캔했다.


핸드폰에 3-4가지 리셀 앱을 띄어두고 장을 둘러보며 모델명을 검색하여 판매가를 본 뒤 사고파는 방식이었데, 이는 한때 미국에서 화제가 된  Arbitrade Trading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TJ Maxx나 Ross 같은 상설 할인 매장을 돌면서 50% 할인된 브랜드 상품을 사서 온라인에 10-20% 마진을 붙여 파는 방식이었다.

나이키 에어포스1 위트 모카(출처-하입비스트)

신발은 거래가 많은 인기 모델, 사이즈만 알고 있으면, 현장에서 정가에 구매하고, 리셀 앱에 매가를 올려놓고 기다리면 당일 또는 다음날 마진을 남기면서 거래가 성사되었다.  


거래 경험이 쌓이자 나는 좀 더 효율적이고 적극적로 움직였다.

매장 직원에게 다른 매장 재고 문의 후, 전화해서 구매할 테니 보관해달라 하고 퇴근 후에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거래하면서 서울 시내재고가 많은 매장을 파악해 나중에는 그 매장에 바로 전화해서 원하는 모델과 사이즈를 구매다.




부업과 월급을 포함하니 월 천만 원을 찍었다.


H백화점 XX점이 리뉴얼을 하면서 신발 매장들이 크게 오픈했는데 신규 오픈 매장이라 경우, 구매제한이 여유로웠고, 상품권 페이백 행사도 해서 대량으로 구매해서 그날 다 팔고 나니 1백만 원 정도를 벌었.

(출처-픽사베이)

거래가 많아지면서 신발 재고를 가지게 되었다. 검수 중 오염이 발견되어 되돌아온 신발들, 갑자기 가격이 하락한 신발, 아니면 조금 있으면 더 오를 것 같아 보관하는 신발들이었다.


작은 집에 신발이 쌓이자 안 되겠다 싶어 와이프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내고 네이버 스마트스토를 열었다. 처음에는 재고 신발을 파는 게 목적이었는데 문이 늘기 시작했다.

내가 파는 모델이 틈새이기도 했고, 당시에는 경쟁이 심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네이버에서 신규 스토어에는 검색광고 지원비도 30만 원씩 줄 때라 광고했더니 매출이 배가 뛰었다.

재고뿐 아니라 주문이 들어오면 퇴근 후, 물건을 사러 다녔다.


하루에 주문이 30개 들어온 날은 이렇게 부자가 되는 건가 싶다가도 물건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심했다.

호이가 알려준 번개장터 셀러를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부업이 잘돼서 좋았다.

월급까지 포함하니 월 천만 원이 되었다.

유튜버가 따로 없네 싶었다.

행복했냐고

사실은 지옥 같았다.

(출처-픽사베이)

회사일과 병행하느라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집은 신발들, 포장박스로 늘 어수선했고 와이프와는 저녁 시간 조금이라도 같이하지 못해서 싸움이 빈번했다. 자려고 누우면 상품 문의, 배송지연, 반품과 교환 대응을 하느라 제대로 자지 못했다.


결국 다 포기하고, 이제 사람을 고용하자!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자!

장사에서 기업으로 더 크게 성장하자!

판을 키우자!

수많은 경영서에서 읽었던 내용을 이제 실천해야겠다 싶었던 순간이었다.




경쟁업체의 회유, 가품 신고와 판매금지 처분을 받다.


그즈음 뭔가 이상한 전화가 많이 왔다.

070 대표 번호로 객이 건건가 싶어서 받으면 낯선 목소리로 사장님 가격 좀 낮추시면 안 되겠냐, 같이 얼마 정도선에서 맞추자는 전화였다.

경쟁사업자가 건 전화였다.


그러 어느 날이었다.

네이버에서 내 상품에 가품 신고가 왔다는 메일이 왔다. 그리고, 그날로 판매가 중지되었다.

매일 50개 넘게 팔리던 신발이 판매 중지되었다.

다음날 매출이 0원이었다.

(출처-픽사베이)

날벼락이었다.

구매 영수증을 모두 제출하면서 소명을 했지만 바로 처리되지 않고, 일주일 뒤 복구되었지만, 이미 검색 노출 순위가 떨어져 판매가 반의 반토막으로 줄었다. 

부랴부랴 광고를 붙였지만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사람을 썼으면 큰 일 날뻔했다.

그렇게 자족하던 순간, 매출을 유지하던 다른 상품이 판매금지를 당했다.

국내 독점 권리를 보유한 소유자가 내 상품에 판매금지 청한 것이었다.

그분에게 사정하는 메일을 썼지만 답변은 안된다였다.


폐업을 앞두고 와이프는 좋아했다.

원래부터 신발 고무 냄새가 싫어했다고 했다.

파트원들도 내가 다시 혈색이 좋아졌다며 한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물었다.

나는 이제 다이어트가 끝났다며 회식을 잡고 얼버무렸다.

마라탕 (출처-MBN)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속담을 왕아주머니는 내 중국 원어로 어주었다.

눈을 감으면서 중국 성조의 운율을 느꼈다.

마라탕의 향이 코를 자극했다.

토요일, 선착순 하나를 끝내고 명동 2층 있는 마라탕 집에서 셋이 다시 만났다.


제 사무실로 와요.

호이가 영어로 말했다.

너 사무실도 있었냐?

네. 여기 주소예요. 형은 이제 좀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할 필요가 있어요.


신정네거리 XX번지 지하 1층.

참 애매한 위치, 신도림역에서도 다시 한번 갈아타야 는 노선이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더 배워야 할지, 내가 모르는 세상이 더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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