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업에서 차출된대리 중한 명인 내가 본부장에게 그렇게 얘기한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LA 출장을본인이 가고 싶다고 한Y는 아마 나를 보고 배운 게아니었을까.
태국 방콕 전경 (출처-인터파크 투어)
내지르지 않으면 안 되겠다.
국내사업부에는이미 과장들,차장들이 넘쳐났다.승진적체였다.보직을 맡지 못한 과, 차장들은언제 잘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에스컬레이터에 타듯,그렇게 가만히 손잡고 서있다가는몇 년 후의 나역시 그렇게 될게 뻔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뛰어나가야 했다.
태국 치킨 맛있네.
J본부장이 말하자, 박학다식하기로 소문난 L팀장이 거든다.
이 나라닭이 좋습니다.예전에무기를 사고 닭으로 대금을 지불했죠.태국이 닭고기 수출로 세계 탑 5입니다.
그렇게시작되었다.
J본부장, 나, L팀장은 그날KFC에서 의기투합해서 새로운 사업, 사내 글로벌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국내파라는 이유로 임원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던 J본부장은 다음 해 고대하던상무가 되었고, L팀장이 뒤를 이어 국내 사업본부장이 되었다.
나.
나는 글로벌 업무를 하며 일 년의 반을 모스크바, 이스탄불, 방콕 등 해외를돌아다니게 되었다.즐거운 시절이었다.
톡톡
주말에 어김없이 울리는 회사 단톡방
이제 또 다른 업무의 시작이다.
신임 대표가들어가 있는 단톡방이었다.
비상.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그 개미지옥.
'XX 원가가 왜 이렇게 올랐는지 원인 분석해서 월요일 출근하면 보고해주세요.'
넵넵.. 넵넵.. 넵넵..
전무 상무들이 연이어 릴레이로 답변을 단다.
휴-내 업무가 아니었다.
불구경 모드로 전환했다.
톡톡
'해외 법인 XX가격은 추이가 어떤지 확인 바랍니다.'
젠장.
내 업무였다.
얼음물 싸대기를 정면으로 세게 맞은 듯했다. 업무 모드로 전환하여 숨을 가다듬고 답변을 단다.
맞춤법 띄어쓰기 틀리는 걸 싫어하는 신임 대표였다. 카톡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맞춤법 검사기에 한번 돌려 답변을 올린다.
글로벌본부입니다. 주요 해외 법인 3개년 XX 가격 추이 및 현지 주요 소싱처별 국내 도입 가능성 확인하여 보고 드리겠습니다.
신임 대표에게는1-2분 내 카톡에답변해야 하고,간단한 질문에도 조금 과한 듯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무와상무방, 파트방, 주재원 카톡방에 차례로 톡을 남긴다.
그렇게 긴급상황은 해제되었다.
일요일 출근 확정이었다.
그날 컨콜(컨퍼런스콜)도 줄줄이 잡았다.
참석자는 나, 그리고 주재원 막내들이었다.
어차피 출근할 예정이었다고 답을 단것들을 보면 안쓰러웠다.
주말 카톡 금지법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자가 있다면 기꺼이 후원금도 낼 것이다.
해외 주재원 좋나요?
멘토링 같은 곳에 가면 종종듣는질문이었다.
다 직장인인데요뭐.
현지인들 다 퇴근하면, 법인장과 주재원들끼리 남아서 일하는 게 보통이죠,본사와 미팅이 있을 때는시차 없이 대기하고요.
VIP나 본사 대표가 오면 입국부터 출국 때까지 상시 대기해야 하고요.
자리잡지 않은 법인은 스타트업처럼 업무 구분 없이 1-2인이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해외법인장, 주재원들끼리 갈등이 생기면답이 없죠.탈출할 수 없는 지옥도가매일 펼쳐진답니다.
분위기가 엄근진이라면 희망적인 이야기도 같이 해야 인사팀이 좋아한다.
좋은 거 있어요.
영어, 현지어,그리고 한국말 패치까지 장착한아이들을 크는 걸 볼 수 있어요. 회사 지원으로 국제학교 보내니까비용도 크게 세이브죠. 그래도 나중에 아빠가나한테 해준 게 뭔데 그러면 할 말이있구나 한데요.명절에 시댁 스트레스받지 않는 와이프가 있죠.또래들보다고운 와이프를 보면서 행복하다죠.
톡톡
와이프였다.
오빠 나 집에서 바퀴벌레 봤어.
공포와 긴급함을 와이프의 톡에서 알 수 있었다.
자식이 없는 나는 와이프를 곱게 케어하기 위해 어떻게든 바퀴를 박멸해야 했다.
이 겨울을 바퀴와 함께 살 수는 없으니까.
콤배트 사 가지고 갈게.
이름부터 살벌하지?
요즘 넣으면 터지는 바퀴폭탄 같은 것도 있으니까 금방 잡을 거야.
그러면서 재활용실에서 그날 박스를 가져왔던 게 후회되었다.
탈탈 털고 가져왔어야 했는데..
래플에서 있던 나는 대표와 와이프의 카톡으로시간이 꽤 많이 순삭 되었음을 알았다.다행이었다.
래플의 경로는 롯데백화점본점에서 롯데시네마로,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나이키 매장으로 가는 것이었다.직원들의 안내가 있었지만, 5-8명씩의 그룹으로 이동하기에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라는 난관이 있었다.
줄이 무너지는 상황이 선착순 래플에서는 제일 위험한 상황이었다.
종종 외신 뉴스에서 나오는 미국발나이키 운동화폭행사건, 슈프림 살인사건을 따져보면이전에 줄 무너진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난관이 내게 또있었다.
한국인이라면 제가 이 사람 앞인데요. 뒤였는데요 하면서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보아하니 내 앞에는 중국아주머니가, 뒤에는 베트남 남녀가 있었다.
심히 번거로운 상황이었다.
대만에서 교환학생을, 베트남 직원 교육을 위해 한 달간 호찌민에서 지냈던나를 알아서 세워둔 것이었을까.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차례를 기다리며검색을 했다.
바퀴. 옛말로는 박회.
백악기에 출현하여 빙하기를 버틴 강인한 생명체,음식 없이 한 달을 살 수 있고, 머리가 없어도 일주일을 산다.살충제가 단맛으로 유혹하자최근 단맛을 싫어하게 진화하고 있다.
강한 생존력에 환경 적응력까지, 어찌 보면 지구 최강의 생명체가 아닐까
사람들이 이동했고,우리는어느덧 엘리베이터 타고샤롯데 광장 안에 내렸다.
예상했듯이줄이 뒤섞여버렸고 앞과 뒤에서 고성, 혼란의 카오스가벌어졌다.
직원들이 정리하려 분주히 뛰어다녔다.
롯데는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출처-롯데 홈페이지)
중국어가 들렸다.
내 앞에 서있던 중국아주머니가직원분을 잡고중국어로 항의, 아니 하소연을하고 있었다.
내 줄이 없어졌다.어디서야할지 모르겠다.
도와달라.
줄이 없으시면 내려가셔야 해요.
직원분이 아주머니를 문밖으로 밀어내려고 할 찰나.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저기요 그분올라오기 전 제 앞에 계신 분이에요. 여기 제 앞에 보내주시면 돼요.
직원분이 알았다는 듯 안내했다.
40대 후반, 50대 초반 정도, 몸체가 작았지만, 단단하고 눈에 총기가 보이는 얼굴이 동그란 아주머니였다.
타국에서 은인을 만난 듯, 아주머니가 내게 미소를 띄었다.
감사-합니다.
没关系,辛苦了。
괜찮아요. 고생하셨어요.
내가 중국어로 대답하니 아주머니가 놀라며 더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학생 때 대만에 잠깐 있었어요. 중국어는 지금 많이 잊었습니다.
아주머니가 흐믓한듯 미소를 지었다.
1시가 넘어가고 명동의 햇살은 봄처럼 따뜻했다.
점심도 잊고 샤롯데의 정원에서 꾸벅꾸벅 앉아서 졸고 있는 사이, 어느덧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유리 창밖으로 이미 나이키 후리스를 구매한 사람들이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내려가고 있었다.
Tôi là người Hàn Quốc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라는베트남 말이 기억났다.
기다기는 너무 지루하기도 했다.
호찌민 출장을 한 달을 갔는데, 기억나는 건 그한 문장.
INFP.
맞다. 분명 나란 인간은 국내에서는 내향형이 맞지만, 인천공항만 넘으면 ENFP가 되는사람이었다.
굿굿!
남녀 중 남자가 웃으며 영어로 말했다.
알고 보니 둘은 남매였다.오빠는후이와 동생 안. 후이는 N대학교1학년이고, 안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