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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Dec 02. 2022

40대 무자본 창업기 2편

세렝게티 초원은 아프리카에만 있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 잘리고 택배 일을 하는 나.

베이어 벨트 앞에서 뜬 나에게 반장은 쌍욕을 했다.

이 ××야, 제대로 안 해.


악몽이었다.

자기 전 읽는 <까대기>라는 만화탔이었을까.

대기업 임원을 마치고 택배일을 하는 유튜브 영상 때문일까.

너무 생생 꿈이었다.


택배 상하차라도 하려면 전완근이지.

회사 헬스장, 덤벨 앞에서 나는 B팀장에게 농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꿈이 생생했다.

서늘했다.

이종철 작가님의 만화 <까대기> 표지, 출처-예스24

샤인빌 606호, 웍스

박스에 적혀있는 구매자 정보였다.

박스에는 이라 불리는 신발 모델번호도 적혀있.

덩크, 조던, 어디다스 이지 시리즈.

정판 신발들었다.

이거 다 어떻게 산 걸까?


박스를 두고는 고민에 빠져있을 때,

손톱만 한 베이비 바퀴벌레가 박스에서 튀어나왔다.

아잇-아씨.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옮겨진 모양이다.  

이미 세탁기 밑으로 도망친 녀석, 불쾌하다.


컴퓨터를 켜고 구글에 "웍스"를 쳤다.

2년 전 스가 올린  직원 채용 공고가 나와있다.

근데 눈에 띄는 건 회사 소개였다. 줄 서기 대행업.

무언 신기한 세계에 들어가는 문고리 같은 단어였다.

그래 매일 운동도 할 겸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4층도 들러봐야겠다.


미국 출장 파트장님이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아침부터 달려와서 말하는 우리 부서 B.

얼마 전 온 LA지사에는 파견 요청이 이었다.

나 대신 Y가 가기로 결정된 모양이었다.

파견 준비와 발표하면서, 내심 내가 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미국 주재원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Y나와 함께 오래 일했던 직원이었다.

내가 지했던 J상무, 전 H대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대표는 바뀌었고, J상무는 싱가포르 담당으로 간 상태다.


Y가 새로운 상무님에게 어필했데요. 자기가 적임자라고.

그래 때로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회사 안의 사다리를 건넌 뛸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리더들은 그런 파격, 적극성 좋게본다.

젠장.


특별히 무언가를 잘못하지 않아도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해야 본전인가.

터키에 장기 파견을 나갔다가, 주재원으로 눌러앉으라는 주변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재무통 출신의 새로운 대표가 들어오면서 이제 회사의 공기도 달라졌다.


데니스, 이번 주말에 뭐하세요?

파트원인 B와 T가 물었다.

B는 한국계 미국인, T는  한국계 중국인이었다.

 나이키 래플있어서 명동 가야 돼.

오 노우 스니커 헤드(Sneakerhead)

B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스니커 헤드, 신발에 미친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난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데니스, 조만간 큰 거 올 것 같아요.

새 대표가 전 대표 사람들 잔뜩 벼르고 있데요.

책상에 감사팀 파일 잔뜩 올려져 있다던데.

비서 출신이라 임원 비서들과 친한 T가 오늘도 사내 소문을 들고 왔다.

그러 라그래.

가수 양희은 님이 쓴 말을 인용하며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이키 마니아 카페에 공지를 기억하며 나는 그 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있는 래플, 선착순 응모에 갈 참이었다.

조던 11 콩코드 브레드는 내가 별렀던 모델이었다.

나이키 콩코드 브레드 (출처-하입비스트)

그때 롯데 본점 나이키 매장이 열리면서, 명동은 한정판 신발에 있어서 성지 같은 분위기였다. 온더스팟, ABC 그랜드스테이지, 아트모스, 뉴발란스, 컨버스, 거기에 풋라커까지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10시 30분.

금요일 밤, 넷플릭스에서 못 보던 영화와 드라마를 정주행 하다 보니, 알람을 껐다꼈다를 반복하다 결국 30분이나 더 자고 말았다.

인스타에는 이미 ABC마트 앞에 줄이 길게 서있는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전 11시.

줄은 U자 줄에서 W줄로 변했있었고, 나는 W 줄 그 가장 끝점에 있었다.

망했.

매장 옆에 늘어선 캠핑의자들을 보며 새벽부터 줄을 서야 내가 원하는 사이즈를 살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인 2족 구매.

이미 산 사람들이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했다.

의기양양하게 신발을 구매하고 나온 사람들. 아-부럽다.

큰 사이즈 다 나갔고 작은 사이즈밖에 없습니다.

직원이 끝자락에 서있는 우리들에게 외쳤다.


와이프 꺼라도 사자.

그녀,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지만 그렇게 되었다.

230 있나요?

지금 1족 있어서 장담 못해요.

그때부터 나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 나올 때마다 230 작은 사이즈는 아니겠지 했다.


11시 30분.

끝났습니다.

직원의 한마디가 서늘했다.

내 앞의 1명을 남겨두고 끝이난 것이다.

사냥에 실패한 남자, 나였다.

풀이 죽어 귀가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보니, 옆 골목에 주차된 차에 여러 명이 몰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신발 쇼핑백이 차 안에 가득 쌓여 있었던 거다.


지금 깜짝 래플 시작! 명동에 계신 분들 뛰어요!

투벅투벅, 명동역으로 걸어가던 내 인스타에 뜬 사진들

어-나이키 빅 스우시 플리스다.

이거 오늘이 날이구나.

나이키 오픈런 (동아일보 인용, 유튜브 캡쳐)

뛰기 시작했다.

세렝게티 초원에서는 느리면 먹히는 거다.

이번에는 갖기 위해 뛰는 거다. 나는 얼룩말, 아니 하마처럼 뛰었다.

저질 체력!

그렇게 헐떡이며 도착한 롯데 본점.

이번에는 롯데백화점을 넘어 롯데시네마까지 둘러싼 거대한 줄을 마주하게 되었다.

장관이었다.


어리둥절한 앞의 1-2명을 재치고 줄을 섰다.

그래도 한숨을 돌리고 있으니, 내 앞에서 중국어가, 내 뒤에는 베트남어가 들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뭔가 이건 판이 더 커졌는데.

그때 알았다.

나는 한국을 넘어 이제 다국적 선착순 게임에  참여게 되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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