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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dianjina Jun 30. 2018

앤틸로프 그리고 그랜드 캐니언

#7. 미국 서부 로드 트립

브런치 추천글에 오르다

미국 서부 로드 트립 #6 산타 바바라 편을 업로드하고 이틀 쯤 지났을까. 새벽에 아이폰 알림이 깜빡이던 걸 무시하고(나는 미국에서 살고 있기에 한국보다 16시간이 늦다) 아침에 내 글이 브런치 메인에 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음 포털과 카카오 채널에도 업로드되어 고요하던 내 브런치가 하루, 이틀동안 매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는 걸 통계로 확인했다. 2년 전인가 직장인일때 브런치를 만들고 얼마 안되서 올린 직장인 년차 라는 글이 한 번 메인에 올라간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트래픽이 10배 이상 오르는 걸 보니 브런치가 전보다 더 유명해지긴 한가보다.

 


남편은 이따금 내 브런치를 염탐(?)하며 마누라 글 정말 잘쓴다고 이야기해주고,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들도 여행기를 보며 술술 재밌게 읽었다고 카톡을 보내줬다. 마음이 들뜨고 콧구멍이 벌렁거렸지만 칭찬 알러지가 있는 나는 이내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른 훌륭한 브런치들을 돌아다니다보면 내 글재주가 '보통' 수준이라는 걸 금새 알게 되니까. 세상에는 뭔가를 잘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그럼에도 이번 여행기를 썼던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국에 정착하고 길게 떠난 첫 여행을 기록하고 싶었고, 둘째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먼 훗날 내 자식이 들춰볼 수 있는 엄마의 일기장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쓴 글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다니. 내 글이 타인의 인생에 깊은 관여는 못할 지언정 ‘편안하게’ 내 글을 읽으셨다는 몇몇 분들의 댓글에 참 행복했다. 정말로 나에겐 최고의 찬사였다.


Seven Magic Mountains, NV, USA


라스베가스와 ‘김양’의 등장

우리는 산타 바바라를 떠나 향락의 도시, 라스 베가스로 향했다. 그러나 우리가 베가스에 도착하기 며칠 전 (전세계 뉴스에 보도된) 만달레이베이 호텔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봤을 법한 휘황찬란한 베가스가 아닌 도시 전체가 다소 경직되어보였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수많은 클럽에서 파티는 열리고 쇼도 계속되었지만. 사실 우리가 베가스에 하루동안 머문 이유는 이곳을 거점 삼아 안텔로프, 그랜드 캐년을 다녀오기 위해서였다. 제각기 성격은 달라도 신기하게 성향은 비슷했던 남편과 나, 그리고 후배는 LA나 베가스처럼 화려한 볼거리가 주된 도시엔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LA에도 들렀으나 기억에 남는 건 오직 그곳에서 먹은 소주와 순대볶음이었다.)


Las Vegas, NV, USA

그리고 베가스에서 또 한 명의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갑자기 휴가를 받게 되어 미국 서부로 여행을 오게 된 대학 후배, 김양이었다. 서열정리를 하자면 나는 07학번, 중간에 합류한 김양은 08학번, 처음부터 여행을 함께한 문양은 09학번이다. 우리는 같은 과 학생회에서 만났고 막역하진 않지만 서로가 어색하지 않은 조합이었다. 그래도 김양은 내가 좋아하는 후배 중 한명이었는데 그녀와의 재회를 앞두고 몇년 전 어느 여름엔가 그녀가 나를 찾아온 날이 기억났다. 그때 난 모 기업 신입사원이 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고, 그녀는 휴학 상태로 전쟁과 같은 취업 준비 중에 있었다. 내가 그 더운 여름 밤을 기억하는 것은 몇년 만에 만나 꽤 오랜 시간 그녀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날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단 둘이 만난 우리는 제법 긴 시간동안 이야기했다. 아마 그녀는 불안한 미래를 앞둔 여러 혼란과 고민을 풀어놓고, 사회 초년생으로 허우적대던 나는 1년 선배랍시고 아닌 척 어불성설의 조언들을 늘어 놓았겠지. 그때 우리는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 그러나 당시엔 뭐가 그리도 절실하고 복잡했는지 모를 그런 생각과 이야기를 공유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나이 앞자리가 바뀌어, 그것도 미국 땅에서 김양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자연이 빚은 모래성, 앤탤로프 캐니언

우리의 일정은 베가스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앤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을 돌고 다시 베가스로 돌아오는 왕복 20시간의 대장정이었다. 대학 후배들과 예정에도 없던 동행을 하게 되니 사뭇 기분이 묘했다. 정작 한국에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경조사나 되어야 얼굴 보고 인사나 할 수 있었거늘 일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여행지에서 며칠을 지내게 된 것이다. 남편은 친구들에게 내 대학시절에 대해 묻고 답하며 묵혀둔 추억들을 소환하고 웃고 떠드는 동안 어느새 안텔로프 캐니언에 도착했다. 안텔로프 캐니언은 윈도우 배경 화면으로도 유명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인터넷 등에서 이곳의 사진을 봤을 것이다. 유명 관광지 답게 아침부터 줄이 길게 서 있었는데 대기 시간이 총 2시간 이상이었다. 전문 자격증이 있는 인솔자와 그룹별로 나뉘어 투어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 수 밖에 없다. 그냥 온 순서대로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입장한다면 더 많은 관광객을 받을 수 있고 더 큰 수익이 생기겠지만 철저한 보존과 안전의 이유로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듯 싶었다.


Antelope Canyon, AZ, USA


오래 기다린 끝에 보게 된 앤텔로프 캐니언에 대한 소감을 묻는다면 자연이 땅에 빚어 놓은 신비하고도 영엄한 모래성이랄까. (내 기준에서는) 두 번 까진 필요 없을 것 같고 한 번 쯤 꼭 볼만한 신비한 협곡이었다. 이곳에서 오래 일한 인솔자들은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어떻게 하면 가장 멋진 협곡의 사진을 담아 갈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는 그 어떤 카메라보다 아이폰이 앤텔로프를 찍기에 최적이라고 했는데 덕분에 내 아이폰에는 앤탤로프의 사진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정말 그의 말이 맞는 것이 캐논보다 아이폰 사진들이 훨씬 퀄리티가 좋았다. 앤탤로프를 투어 하는 동안 관광객의 무모한 행동들은 제지당하기도 한다. 아직도 협곡 사이사이 모래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한 순간에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랜드 캐니언

앤텔로프로부터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너머였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그랜드 캐니언에 발을 딛는 순간 그 광대함에 압도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랜드 캐니언의 평평한 지형은 콜로라도 강의 침식 활동의 결과물로 무려 6백만년의 지각 활동이 만들어낸 역사다. 곳곳에 뷰 포인트가 있고 관광객들은 차를 타고 다니며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저녁 무렵에 도착한 덕분에 우리는 그랜드 캐니언의 선셋을 볼 수 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협곡 너머 곧 어둠이 찾아올 것을 예고하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이란 아름다우면서도 작고 미비한 존재인 우리가 절대 가늠할 수 없는 역사와 미래를 품고 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담아가고자 카메라를 들었지만 몇번 찍고 나서야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함을 절대 담을 수 없다는사실을 깨달았다.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그랜드 캐니언 위에 설 수 있을까. 꼭 한 번 그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Grand Canyon, AZ,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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