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정신을 차려보자. 스산한 바람 소리에 황급히 깨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위태롭게 깎인 낭떠러지 직전에 있다. 산 중턱의 매끈한 절벽으로 가는 길, 거대한 나무들이 빼곡히 박혀있는 숲의 끝자락,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어떻게 잠이 든 사이에 떨어지기 직전인 상태로 다시 잠들어 있는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감싼다. 다시 생각해 보자. 여긴 어디인가. 왜 나의 무릎과 허벅지엔 누가 그은듯한 깊은 상처가 있는가. 인기척이 들려 놀라 고개를 돌린다. 숲에 파묻힌 고라니 한 마리가 우두커니 나와 시선을 맞춘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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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철현은 깨어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일어났다. 잠이 들면 밤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어김없이 어딘가로 향했다. 그 무렵 다른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증상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밤에도 간단한 일상생활만 하고 자신의 침대에서 깨어나는 일반 비레머들과는 달리, 철현은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깨어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바다 한복판에서 둥둥 떠 있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이렇게 낭떠러지에서 아슬아슬하게 잠들어 있기도 했다. 어떻게 평소엔 가본 적도 없는 곳에 가서 깨어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또 어떤 곳에서 깨어날지 의심에 의심을 더해가는 매일 밤이 그에겐 살아남기 위한 투쟁과도 같았다. 섬뜩한 마음에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셀 수 없어지자 기어코 지옥이 되어버린 하루들을 꾸역꾸역 살아냈다.
세상에 비렘(Non-REM)이라고 불리는 병이 퍼지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 비렘은 몽유병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잠이 든 동안에 육체가 무의식적으로 장시간 활동한다는 것이었다. 비렘에 걸린 사람들은 어딘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엉성하게 밤거리를 배회했다. 텅 빈 몸을 끌고 자영업자들은 나가서 가게를 다시 열고, 회사원은 또다시 불이 꺼진 빌딩으로 향하는 그런 비정상적인 현상이 매일같이 되풀이되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비레머들은 해가 밝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그 상태에서 다시 깨어나면 밤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건지 기억하지 못한 채로 비로소 의식을 찾았다. 그렇게 쓸쓸하고 고요하던 밤거리는 북적였다.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처럼 목적 없이 배회했다. 소란스러운 밤에는 생명의 흔적이 소멸했고 신비한 우울감이 거리를 지배했다. 그렇게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고는 했다.
초기에 정부는 이 병이 스트레스로 인한 일종의 수면 장애일 뿐이라고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금방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 방법을 개발해 낼 것이라 단언했다. 국가는 이 괴상한 병의 이름을 비렘, 병에 걸린 사람들은 비레머라고 칭하기로 공표했다. 하지만 비렘은 이들의 바람처럼 단순한 질병에 그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극심한 전염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밤 시간 동안 비레머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어김없이 그다음 날부터 같은 비레머가 되었다. 어떤 경로로 전염되는지를 분석한 여러 가설이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정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제약회사들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약물 개발에 힘을 썼다. 관련 주가는 폭등하거나 폭락하기를 반복했다. 여러 달이 지나자 한 제약회사가 다급히 ‘어라우즈’라는 약을 발표했다. 이 약을 복용하면 그 하룻밤만큼은 아무런 증상 없이 푹 잠이 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어라우즈를 계속 복용하는 행위는 자살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어라우즈에는 마약 성분이 다량 검출되어 환각 및 환청, 분노조절장애 등의 부작용과 치명적인 호르몬 문제를 초래해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언론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어대자 약물은 바로 정부 규제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일 년 넘게 한 번도 제대로 잠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극심하게 피곤하다 못해 진이 빠져 있었다. 하루하루 쌓인 피로는 점점 감당이 되지 않는 수준이 되어서 모든 일에 의욕은 사라지고 쉽게 화를 냈다. 그래서 단 하루라도 제대로 잘 수 있기를 열망하며 그 어떤 부작용이라도 감내하겠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 알에 몇백만 원씩 주고 불법으로 어라우즈를 구하기도 했지만, 금방 규제되기 일쑤였다. 철현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간절한 부류였다. 그에게 그 약은 단순히 묵힌 피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잠든 사이에 죽을 수 있다는 불안의 해소제였다.
“어라우즈 값이 점점 비싸지네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철현은 외진 골목길에서 꽤 두툼한 현금 봉투를 한 사내에게 건넸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청년이었다. 몇 달 동안 뒤에서 이렇게 비밀스럽게나마 어라우즈를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 아마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약이리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어요. 정부 규제가 워낙 심해져서 이제는 더 팔 수도 없네요.”
아버지를 도와 회센터에서 생선 머리를 잘라댄 대가로 번 돈을 모두 쏟아부어도 이제 살 수 없다니. 대출이라도 받아 더 돈을 지불하겠다고 애원했지만, 청년은 이제는 물량이 없다는 말을 하고는 잠적했다. 나름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철현의 생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다. 이제는 약을 찾지 못하자 친절하던 그의 미소는 사라지고 그 속의 부정 어린 공포만이 점점 그를 지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레머가 저지른 범죄 수가 늘어갔다. 낮에 범죄자인 사람들은 밤에도 여전히 극악했고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점점 제어가 불가능해지자 사람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 질려갔다. 문을 강제로 잠그고 몸을 꽁꽁 묶어놓고 잠들어도 낮과 같은 지능을 가진 비레머들은 어떻게든 밤거리로 나왔다. 마치 한낮과 같이 떠들썩한 암흑의 밤이었다.
완전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정부의 비상 대책은 비레머들을 관리할 인력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꽤 단순했다. 다수의 관리자를 채용한다. 관리자들은 낮에 자고 밤에는 깨어있도록 생활 루틴을 뒤바꾼다. 밤 동안에는 제정신으로 거리를 순찰하고 비레머를 관리한다. 그런 식으로 관리자들을 많이 만들어 밤과 낮을 모두 관리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의식이 없는 비레머를 상대하는 일은 위험도가 높아 꺼림칙해하는 분위기가 만연하자, 정부는 관리자들에게 엄청난 조건을 내세우며 모집을 강행했다. 억대연봉, 공무원 지위, 어라우즈 무한공급 같은 것이었다. 심각해져만 가는 비렘 사태를 파격적인 대규모 채용으로 관리해 보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무거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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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만 마리의 생선들의 숨통이 끊어지는 강릉의 한 회센터에서 철현은 비스듬히 앉아 한 공고를 골똘히 보고 있었다. 비레머 관리자 긴급채용이라는 제목이었다. 이 대거 채용에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지원해 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삼십 대 후반에 접어든 철현은 아버지를 도와 이곳에서 생선이나 갑각류를 손질하는 일을 도맡아 한 지 오래였다. 언제까지 아버지 그늘 아래서 이렇게 붙어먹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었지만, 오직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몇 번이고 공고를 뒤적이며 고심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관리자가 되면 어라우즈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 다시 고민 없이 잠들어 볼 수 있다면, 돈과 명예보다도 단 하룻밤의 단잠, 그게 이제 그의 유일한 소원이 되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지원 버튼을 눌렀다.
“비레머 관리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고등학교 동창 놈을 불러 회센터 앞 포장마차에서 한잔하던 와중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서 큰 회사에 취직한 민섭은 철현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비웃었다.
“왜? 나는 안 되냐?”
괜히 기분이 나빠진 철현은 소주잔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둘은 어렸을 때부터 옆집에서 살던 죽마고우였지만 민섭이 서울로 올라가면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보는 사이로 전락했다. 철현은 평소 그의 거들먹거리는 핀잔들이 거슬리곤 했다. 남자는 성공해야 해, 너도 이제 아버지 품 떠나서 독립해야지, 일하다 왔냐? 오늘도 비린내 쩐다, 만나는 여자는 있냐? 라는 말들이 마치 그의 처지를 비아냥거리는 듯 들렸다. 그런 말을 듣고도 오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웃어넘겼지만, 철현의 마음에는 이제는 그런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계에 다다른 그의 마음도 모르는 듯 민섭은 한마디 더 거들었다.
“너 스스로나 관리하세요. 이 한심한 새끼야.”
“뭐?”
철현은 한 마디만 더 지껄여보라는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비레머가 비레머를 관리하는 게 존나 말이나 되는 소리냐? 어떻게 된 게 이 나라는 병 자체를 해결할 생각 없이 이딴 정책이나 내고 앉아있냐? 너도 거기에 공조를 하시겠다?”
민섭이 벌건 얼굴로 격해지자 포장마차의 모든 시선이 꽂혔다. 평소와 다르게 철현의 목소리도 커졌다.
“해결이 빨리 안 되니까 일단 관리하고 있자는 거잖아. 꼬우면 너도 하던지 왜 그래? 회 썰던 놈이 공무원 된다고 하니까 부러워?”
“내가 왜 그걸 하냐? 너 같은 부모 등골 브레이커들이나 하는 거지. 밤거리 떠돌면서 멀쩡한 사람들 범죄자 취급하는 그 의미 없는 일, 몇억씩 쥐여줘도 안 한다고.”
철현은 민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뺨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서울 가서 이름 좀 들어본 회사 들어갔다고 개천에서 용 난 줄 아나 본데, 넌 그냥 날 때부터 촌놈 새끼야. 알아? 어디서 잘난 척이야.”
옆 테이블 사람들이 곧바로 신고를 한 바람에 그들은 곧 파출소로 끌려갔다. 비슷한 이유로 다툰 사람들이 가득했다. 비상식적인 전염병이 꺼질 기미 없이 판치자 사람들은 더없이 예민하고 까칠해졌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국가의 목소리가 길어지자 일부는 극심한 반정부적 태세를 보였고, 관리자 채용 문제는 끓어오르는 마음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위태로운 세상에 대한 거부감은 점점 날이 섰다.
“박철현씨, 정민섭씨. 이리로 앉으세요.”
순경은 그들을 앉히고 타자를 두들겼다. 두 남자는 피떡이 되어 퉁퉁 부은 얼굴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박철현씨는 비레머 관리직 지원하셨네요? 맞나요?”
“아, 네.”
“폭행 이력으로 서에 온 지원자 모두 지원 자격 박탈한다네요. 알고 있어요?”
“뭐라고요?”
민섭은 꼴좋다는 듯이 깔깔대며 웃었다. 확 한대 더 패버리고 싶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참았다. 그 이후로 몇 가지 조사를 더 받고 집에 돌아온 철현은 망연자실했다. 관리직이 되어 어라우즈로 영원히 단잠을 자는 인생을 꿈꾸며 들떴었는데 전부 물거품이 되다니. 남들은 평범하게 잘만 사는 인생, 왜 나는 이렇게 바람 잘 날이 없는지 생각하니 억울한 눈물이 고였다.
그날도 잠드는 게 두려워 침대 근처조차 가지 못하고 벽에 기댄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지낸 지 일주일쯤 지난 걸까. 잠을 자지 못하니 피폐해지고 한없이 멍했다. 제정신이 아닌 터라 출근해서도 회를 손질하다 회칼에 손을 베일 뻔한 게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 손님상에 네 손가락 같이 넣어 나가겠다는 아버지의 꾸중도 점점 희미하게 들렸다.
‘비레머 관리자 정책이 금일 이 시각부터 시행됩니다. 정부의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일을 마치고 방에서 철현은 뉴스를 보며 안주도 없이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저게 바로 내 자리였는데, 중얼거리던 철현은 새빨개진 눈으로 관리직으로 선출되어 기뻐하는 이들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인생역전이라도 한듯한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힘찬 걸음으로 용감하게 나아가 국민을 지킬 것이며, 벅찬 사명감으로 평화로운 밤거리를 조성하는 것에 이바지하겠다는 서명서를 읽으며 당찬 포부를 다졌다.
“미친놈들. 어라우즈랑 돈 때문에 하는 거면서 사명감은 무슨.”
철현은 계속해서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어느새 스르르 눈이 감기는듯했다. 자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제 뺨을 치고 소리를 질러봐도 참지 못하고 결국 잠이 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