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下

by 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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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이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이 지겨운 섬을 떠나 혼자 육지로 건너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엄마는 혼자인 자신을 두고 떠나겠다는 아들의 통보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만 뭘 하고 먹고 살 거냐는 물음이 전부였다. 석현은 공장에서 일을 배우든 뭘 하든 간에 젊음을 팔아 어떻게 이 몸뚱이 하나 건사하지 못하겠냐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로 엄마와 석현은 점점 멀어져 쉽게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석현은 자신을 만연한 정신병자로 만든 엄마가 미워 평생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나는 밥냄새도 후줄근한 옷차림도 다 지긋지긋했다.


떠나기로 공표한 지 얼마 뒤였다.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읍내에 가던 길에 갑작스러운 장대비가 쏟아져 타고 있던 자전거는 앞으로 곧잘 나아가질 않았다. 불빛 하나 흔치 않은 캄캄한 거리에 석현은 홀로 자전거와 씨름하고 있었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이미 방파제 옆 바다 수심은 아슬아슬하게 차있었다. 그때 인적 없는 길가에 우산도 없이 발끝으로 첨벙대는 여자가 하나가 보였다. 섬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녀는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었다. 별안간 여자의 걸음이 그의 자전거 앞에서 멈춰 섰다.


“우산.”


여자는 그의 손에 들린 우산을 가리켰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이 섬동네 구석에서 보기 힘든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짧은 치마에 훤히 드러난 하얀 다리, 푹 파인 젖은 티셔츠와 발그레한 두 볼. 석현은 홀린 듯이 우산을 건넸다. 그녀는 큰 눈동자로 그 손을 멀뚱히 보고만 있더니 말했다.


“너, 여기 사니?”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비릿한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석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비 피할 곳 없어? 갑자기 비가 너무 많이 와.”

잠시 생각하던 석현은 그녀에게 자전거 뒷자리를 타라는 눈짓을 했다. 섬사람들이 자신한테 말 한번 붙이지 않던 탓에 그는 어떻게 사람과 말을 섞어야 하는지 잊은 듯했다. 여자는 뒷자리에 앉더니 자그마한 손가방에서 얇은 담배를 꺼내 피기 시작했다. 몇 번 입가에 대다가 빗물이 자꾸 담뱃불을 꺼버리는지 신경질 나는 듯 던져버렸다. 석현은 자전거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았다. 비가 오는 바람에 나아가질 않았지만 그럴수록 허벅지가 갈라지도록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읍내로 가서 원래 목적지였던 슈퍼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나름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라 건너편엔 술을 파는 주점도 있었다.


“저기 가요.”

석현은 건너편 다방을 가리켰다.

“말고, 저기 가면 안 돼? 나 추워.”


여자는 그 옆에 있는 민박집을 본 듯했다. 석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그의 팔에 자신의 하얗고 보드라운 팔을 끼워 넣더니 그쪽으로 천천히 이끌기 시작했다. 석현의 가슴이 전례 없이 쿵쾅대며 뛰기 시작했다. 여자는 모든 게 능숙해 보였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웃으며 방 열쇠를 받아들고 문을 열어 제집인 것처럼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여기 사람 아니죠?”

석현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너가 보기에도 이런 촌구석이랑은 안 어울리지, 나?”

“네.”

“너 몇 살이니? 고등학생?”

“아니요. 스무 살 넘었는데요.”

“갓 스물이구나. 난 몇 살로 보여?”


어린 티가 난다는 소리로 들려 짐짓 목소리를 키우는 석현이 귀엽다는 듯이 여자는 웃어댔다. 살면서 본 여자라고는 손에 꼽는 석현은 그녀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여자는 벽에 기대앉아 다시 얄쌍한 담배에 불을 붙여 끝까지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연희라고 말했다. 실제 이름은 따로 있으나 가게에서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무슨 가게냐 물으니 이 건물 옆에 있는 다방 누나와 비슷한 일을 한다고 했다. 다만 서울에 있어 조금 돈을 많이 벌 뿐이라고, 그것만이 다를 거라고 했다. 가게의 이름은 서울에서도 가장 휘황찬란하다는 강남구에 있는 파라다이스인데 이름과 다르게 환상적이진 못하다고 했다. 오히려 반대로 뭐같다고 말하며 그녀는 자지러졌다. 그 웃음소리는 얼핏 잘못 들으면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서울에서 이 작은 섬에는 왜 왔어요?”

“남자들은 나한테 질문 같은 거 잘 안 하던데. 넌 궁금한 게 많구나? 하긴 그럴 나이지.”

순간 웃고 있는 연희의 얼굴에 이름 모를 회의감이 지나갔다.

“나는 이런 데서 죽고 싶더라. 이름 한번 못 들어본 섬 구석에서.”


석현이 이유를 묻자 연희는 그저 미소짓고 천천히 엎드려 그에게 다가갔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곧 입을 깊게 맞추고는 석현의 뜨거운 손을 자신의 젖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날을 기억하면 축축하고 알싸한 담배 향만이 떠올랐다. 불행이 짝을 알아보는 것만 같이 그 둘은 서로를 찾아내고는 탐했다. 그녀의 영혼마저 구제해주겠다는 몸짓으로 석현은 연희를 밤새 어루만졌다. 그 순간만큼은 영원하리라 믿으면서.


간만의 단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땐 연희는 옆에 웅크려 앉은 채로 그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연희의 속눈썹이 참 길고 곱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입을 열었다.


“너 이제 가야 해?”

“가지 말까요?”

석현이 연희를 다시 품속에 넣으려고 하자, 그녀는 살짝 뿌리쳤다.

“나 여기서 죽기로 했는데 혼자는 못하겠어. 너가 도와줄래?”

“안 죽으면 안 돼요? 나도 사는데 왜 죽어요.”

“너가 어때서?”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 석현은 곰곰이 생각했다. 짧은 고민 끝에 석현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죽은 아버지의 병부터 섬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자신 안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괴물도. 연희는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듣는 내내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가여워라. 너는 안 죽고 싶었어?”

“늘 죽고 싶었어요.”

“엄마 때문에 못 죽겠지?”

“아닐 걸요. 말 한마디 안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은데? 정신병이 뭐 별거야? 병 없이도 도리를 모르는 놈들 판치는 세상에.”


연희는 다시 그에게 안겼다. 전보다 세게 그의 허리춤을 붙잡았다. 그들은 그 민박집에 며칠 더 머물렀다. 커튼을 쳐서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은 채로 두었다. 그동안 시간이 멈춰버려 둘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희열이 섞인 뜨거운 숨소리만이 작은 방을 채웠다. 석현은 이 여자만 있으면 세상이 조금은 살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에 연희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너도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섬에서 죽고 싶은 생각이 자신으로 인해 사라진 것만 같아 기뻤다. 석현은 원래 섬 근처인 통영으로 가서 일할 곳을 구하려고 했으나, 연희를 따라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 며칠만 기다리라고, 가서 무슨 일이라도 배워서 너 하나는 책임지겠다는 흔해빠진 약속을 했다. 연희는 그저 희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집에 가니 은수는 여전한 모습으로 마당에서 큰 대야에 나물을 무치고 있었다. 그의 자전거 소리에 한번 흘끔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뒀다.


“왜 안 들어왔는지 안 궁금해?”

오랜만에 듣는 아들의 목소리에 잠시 그녀의 움직임은 멈췄다.

“육지 타령을 하길래 벌써 가버린 줄 알았지.”

“나 서울 갈 거야.”

은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이 섬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


그는 방에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신 오진 않겠다는 각오로 모든 물건을 빠짐없이 넣어댔다. 은수는 그 다급한 뒷모습을 멀찍이 바라보고 있었다.


“명절에는 와라.”

이번에는 석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속해서 무언가 던져지고 부서지는 소리만 들렸다.

“석현아.”

“….”

“너도 결국 네 아빠 같을까봐 평생 걱정하고 살았어. 병이 있을까 봐서가 아니야. 네 아빠처럼 갑자기 내 곁을 떠날까 봐 보자기 속에 감춰둔 것처럼 이 섬에 가두고 살았어.”


은수의 목멘 목소리로 읊던 독백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석현은 듣고 싶지 않았다. 이 지겨운 섬을 떠나 자신을 구원해줄 그 연한 품으로 파고들고 싶을 뿐이었다. 그날 밤 그는 짐을 모두 챙기고 은수가 잠든 밤에 인사도 없이 집을 나왔다. 다시는 이 섬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엄마를 외면하며 작은 항구에서 밤을 지새웠다.


동이 트자 석현은 큰 짐가방을 들고 배에 탔다. 그날따라 섬에 내리쬐는 햇볕이 눈부셨다.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연희가 적어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더니 달칵, 소리가 들렸다. 서울에 가고 있다고 말하자 건너편 음성은 잠시 답이 없었다가 이내 결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지금은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자기가 서울에서 볼 일이 있으니 조금만 그곳에서 기다리면 곧 연락하겠다는 굳은 당부를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를 볼 생각에만 기대가 부풀어있던 석현은 망연자실했다.


별안간 연희가 일한다던 파라다이스라는 가게 이름이 떠올랐다. 서울에서도 강남이라는 곳에 있다고 했는데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연희는 조금 기다리라 했지만 당장에라도 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이 피가 끓었다. 결국, 석현은 다른 크기의 배를 세 번 갈아타서 인천항으로 향했다. 좀 더 큰 배를 탈 때마다 세상은 변해있었다. 낮은 집들은 끝을 모르게 높아졌으며 촘촘했고 점점 발 디딜 곳 하나 없어졌다. 마치 나 하나 없어져도 모를 것만 같았다. 길을 지나가면 모두 아는 사람투성이던 섬과 달리 도시에서는 그 누구도 서로 알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반나절을 꼬박 헤매고 물으며 결국 파라다이스가 있다는 역삼동 근처에 도착했다.


분명 암흑이어야 하는 밤인데 밤거리는 광활하고 찬란했다. 불빛이 끝없이 번쩍였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뛰는 것처럼 빨랐다. 결국, 파라다이스에 도착한 석현은 그곳을 들어가는 화려한 용모의 여자들과 남자들에 기가 죽어 망설이다 결국 문을 열었다. 반지하에 있는 그곳은 섬의 다방과는 그 규모를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문을 열자 긴 생머리에 어깻죽지가 훤히 드러난 옷을 입은 여자가 석현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의 손에 들린 짐 가방과 한참 앳된 얼굴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볼일이 있어서 왔어요?”

“연희라는 사람을 찾는데요.”

“연희요?”


여자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지더니 목소리의 높이가 바뀌었다. 별안간 명함을 쥐여주더니 여자는 씩씩대며 분노를 늘어놓았다. 가게에 빚이 얼만데 그 요망한 계집애가 하루아침에 튀었다고. 여기서 연희만 지명하던 단골들이 해준 전셋집 보증금도 갖고 도망가 버렸다고. 가게 오빠들을 시켜 서울 바닥을 샅샅이 뒤져도 그년 머리카락 하나 찾을 수가 없다고. 해외로 튀었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혹시라도 찾으면 자신에게도 알려달라고. 예상하지 못한 허망한 대답에 석현은 다급히 물었다.


“그게 언젠데요?”

“한 달 전쯤 됐나? 말도 안 하고 휴가를 다녀왔다며 며칠 혈색이 좋더니 자기 일이 생겼다고 돈을 좀 더 빌려달라더라? 걔가 원래 부모님이 아프셔서 내가 사정이 딱해 자주 월급 당겨줬었거든. 근데 그 다음 날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야. 믿을 년 하나 없지. 이 바닥이 그래. 근데 넌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애가 어쩌다 그 나쁜 년이랑 얽혔니?”


석현은 허탈하게 가게를 나왔다. 연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근처 공중전화로 가서 그녀가 알려주었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끝없는 수신음 끝에 받을 수 없다는 기계음만이 들렸다. 말버릇처럼 죽고 싶다던 연희의 음성이 떠올랐다. 설마 잠적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숨통을 끊어버린 걸까. 그렇다면 재산을 전부 가지고 도망갈 이유가 없겠지. 살아는 있을 거야, 생각하던 석현은 마음속 작은 불씨마저 꺼지는 것을 느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높은 건물들이 보였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 떠올리지 못했는데 저 중 하나에서 아빠가 떨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나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느낌이란 어떤 것일지 새삼 궁금해졌다. 마지막은 행복했을까? 석현은 그중 가장 높은 건물에 들어갔다. 앞에 잘 빼입은 남자가 의례적으로 어떻게 온 것이냐고 물었다. 석현은 옥상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눈물로 번져있는 그의 얼굴을 본 남자는 석현을 사무실로 데려갔다. 따뜻한 차 한잔을 쥐여주고는 좀 쉬다가 진정이 되면 가라고 했다. 남자는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말했다.


“살긴 살아야죠, 힘든 세상이지만.”

그가 떠난 뒤에서 석현은 한참을 터진 감정을 거두지 못했다. 단 한 문장만이 떠올랐다. 언제까지 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버텨야 하나.



늘 그랬듯이 고통스러운 시간도 결국 흘렀다. 더는 서울에서 갈 곳을 잃은 그는 통영으로 갔다. 차마 다시 그 섬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빚을 내고 집을 구한 뒤 공장들을 전전했다. 기계를 만지다 넷째 손가락을 날렸다가 다시 붙인 적도 있었고 몇 달 치 월급을 받지 못하고 쫓겨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텼다.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통영에서는 적어도 그가 살아온 시간을 모르는 사람들과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숨 쉴 수 있게 했다. 바쁜 와중에도 석현은 연희의 꿈을 자주 꾸었다. 어느 날 살을 섞기도 했고 어느 날은 그녀가 죽는 것을 돕기도 했다. 그런 날마다 작은 희망을 품고 연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결국 번호가 바뀌었다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연희가 살아있다는 뜻인 것 같아서 기뻤지만, 곧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절망이 되었다. 석현은 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그 며칠을 마음속에만 깊숙이 품은 채 또 다른 하루를 보냈다.


계절이 한 바퀴 지나 다시 한여름의 긴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연희를 처음 만났던 그 여름날처럼 긴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꽂던 밤이었다. 일이 끝나고 공장 사람들과 한 잔 걸치고는 홀로 얻은 낡은 빌라에 들어가는 길에, 그는 동네 슈퍼에 들러 소주 두 병을 더 샀다. 검은 봉지를 흔들며 현관문에 열쇠를 꽂으려 하는데 문 앞에 못 보던 큰 상자가 있었다. 흔한 택배 상자 같은 것이 테이프로 포장도 되어있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상자 뚜껑을 열어본 석현은 놀라 주저앉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아이가 인형처럼 얌전히 잠들어있었다. 박스 위에는 이제 네 몫이야, 라는 축축한 쪽지도 붙어있었다. 연희가 왔다 갔구나, 그는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잠시 또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이곳에서의 일 년은 불행의 기운을 애써 감추고는 조용하고 평범한 그런 사람인 척 지냈었다. 석현은 생각했다. 다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역시나 오만이었다고. 피에 흐르는 붉은 불행을 외면하고 구더기들을 피해 도망쳐도 태어날 때부터 불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던 것이었다고.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평범한 가정을 이뤄서 아이를 키우는 삶, 버티지 않아도 기어이 살아지는 삶, 남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은 그에겐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물려받은 거라고는 자살한 아버지의 정신병, 그뿐이었으니.


석현은 상자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 아이는 나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을까? 나도 아버지처럼 이 아이의 내면에 불행이라는 씨앗을 심어놨으면 어떡하지? 술집 여자인 엄마는 자신을 버렸고, 아버지는 정신병자일지도 모르는 삶의 불행의 고리를 끊어낼 수만 있다면. 그의 의식의 흐름은 고통스럽게 이어졌다. 석현은 상자를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이 높이에서 떨어트린다면 고통 없이 한 번에 죽겠지, 그의 눈가엔 핏기 어린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허공에 두고 힘을 빼려고 하자, 상자 안에서 어떤 몸부림이 느껴졌다. 안에 있는 생명체는 삶에 대한 본능으로 그 어떤 위험이라도 감지한 듯이 거침없이 울어댔다. 석현은 내밀던 손을 거두고는 다시 상자를 안아 들고 울었다.

아가야, 지금 죽지 않으면 너도 나와 같은 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


석현이 아기를 안아 들고 간 곳은 또다시 그 작은 섬, 그 몸서리치게 싫은 집이었다. 일 년 사이에 허리가 더 굽은 엄마가 마당 그 자리에서 옷가지들을 방망이로 두드리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그와 눈을 마주친 은수의 시선은 아들이 안아 든 아기에게 닿고는 두 동공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좀 키워주세요.”

“…밥은 먹고 가지그래.”

은수는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이를 달라는 손짓을 하고는 품에 안았다. 곧 어미의 얼굴이 되어 아이의 두 뺨을 어루만지는 은수를 보고 석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꼭 너 어렸을 때 닮았다. 정말 똑같아.”

“저 갈게요.”

“벌써 어딜 가. 좀 더 있다 가지.”


은수는 가려는 석현의 발걸음을 붙잡아두고 서둘러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낡은 철소리가 나는 탁상 위에 놓인 여전히 두껍게 썰은 깍두기와 파김치에 눅눅한 밥과 나물들. 올 줄 알았으면 고기반찬이라도 좀 해놨을텐데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연희의 것과 순간 겹쳐 보였다. 고개를 상에 파묻고 석현은 말없이 밥만 먹었고 은수는 빤히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좀 먹으라고 해도 이미 먹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석현은 까끌거려 잘 먹히지 않는 밥알들을 씹지도 않고 삼켜댔다. 아기는 은수의 품이 편안한지 어느새 곤히 잠들었다.


은수가 이부자리를 펴주었다. 방에서는 익숙한 퀘퀘한 냄새가 났다. 엄마의 냄새 같기도 했다. 통영에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지만 석현은 나중에, 라고만 대답했다. 곧 불을 끄고 작은 방에 셋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어딘가 편하지 않은 마음에 뜬 눈으로 천장만 보고 있는데 은수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엄마도 같이 갈까?”

“어디를.”

“너 사는 곳. 우리 셋이 같이 살자.”

“….”

“내가 이 아이는 정말 잘 키울 거야. 정말이야.”


석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수의 손은 아이의 가슴을 토닥이고 있었다. 잠이 들면서도 정말이야, 혼잣말을 했다. 그녀가 잠이 들기를 기다리던 석현은 서둘러 집을 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거세고 무거웠다. 마치 생의 무게 같았다. 마침내 그는 뛰고 있었다. 거칠게 뜀박질을 했다. 뒤통수에서 은수의 아우성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들리면 다시 돌아가게 될까 봐 무서워져 있는 힘껏 달렸다.


이제 다신 이 섬에 다신 오지 않을 것이다. 더는 버티지 않을 것이다. 불행의 고리는 내 손으로 끊어내지도 잇지도 못할 테니 놓아버릴 것이다. 엄마는 곧 자신의 얼굴을 다시 신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뛰어내린 건물에서 그 아들도 정신병에 걸려 투신했다는 소식은 곧 전해지겠지. 이곳은 말이 빠르니까 단 며칠이면 충분할 거야. 뾰족한 옥상 끄트머리에서 몸을 던져 마치 허공을 안아보고자 하는 몸짓으로 뛰어내렸다고 하겠지. 아이가 태어난 아름다운 순간에 가족이라 불리려던 피사체는 불행에 파묻혀 끝이 났다고 하겠지. 그러면 연희도, 은수도, 섬사람들 모두가 나를 보겠지. 그리고 사람들은 곧 우여곡절을 사러 모여들겠지.


그는 다시 인천으로 가는 배편을 끊었다. 무려 다시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여정이었다. 그 시간이 저번보다 훨씬 길게 느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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