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上

by 가은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MjA0MjlfMjkg%2FMDAxNjUxMjA0OTA1MzU5.JomakM9ziIOfYayvQYWB6NXL9vWzVzZsuxEU5gxMyhcg.MiC1v4A6rz-wUJVg9vnvqmZByq8sBqH9MMYCDARWUJIg.JPEG.jobobo12%2FIMG_7691.JPG&type=sc960_832

석현은 운이 없는 아이였다. 불운은 그가 어미의 품에서 숨통을 트고 나와 울부짖을 때부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갓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는 대신에 뾰족한 옥상 끄트머리에서 몸을 던져 마치 허공을 안아보고자 하는 몸짓으로 뛰어내렸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던 아름다운 순간에 가족이라 불리려던 피사체는 멸렬히 끝이 났다. 곧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조현병 환자의 환각으로 인한 투신자살이 신문 대문을 장식하자, 사람들은 앳된 엄마인 은수의 우여곡절을 사러 모여들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들러붙은 사탕 자국에 몰린 개미 떼들처럼 은수의 모든 은신처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남의 불행을 지켜보며 자신은 그래도 좀 나을 수밖에 없다는 위로를 얻는 것 같다고 은수는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충격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그녀는 출산 후 몸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로 아이를 데리고 작은 섬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는 그녀와 하나뿐인 아들을 갉아먹을 구더기들이 없을 거라는 기대를 걸고는 한평생 일궈낸 도시에서의 생을 포기했다.


두 모자는 배를 세 번은 갈아타야만 도착할 수 있는 외딴 섬으로 향했다. 그 한 뼘만한 작은 곳에서 은수는 그저 물정 모르는 어린 과부 행세를 했다. 작은 백반집을 열어 두명치 생계를 꾸리며 오랜 시간 동안 섬에 융화되려고 안간힘을 썼다. 주로 찾는 손님들은 낚시를 하고 돌아온 어부들이었다. 섬사람들은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은수를 딱하게 여겨 곧잘 도와주었다. 어린 석현이 잠 치레를 해서 시끄러우면 옆집 아낙네가 달려와 등을 토닥였고 은수가 가게에 나가면 이집 저집에서 번갈아가면서 대신 맡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섬사람 모두의 손을 거쳐 석현이 자라났다. 본인의 피 속에 붉은 불행이 흐르고 넘치는 것을 모른 채로.


참깨처럼 촘촘히 박힌 수염의 점들이 거뭇하게 자라나고 목소리가 거칠어지는 육체의 전환점까지도 석현은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전교생 인원이 스무 명 남짓한 어촌 구석이었지만 동네에서는 나름 영특한 아이로 여겨져 둘러싸고 어울리던 밝음이 존재했다. 이 모든 건 은수가 십오 년 가까이 비밀을 잘 껴안고 살아온 덕분이었다. 그렇게 모든 게 아주 천천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던 때에 사건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날이 석현이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던 생의 결을 완전히 뒤집었다.


아빠 없는 애. 반 아이 중에 정욱이라는 아이가 자신을 그렇게 칭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석현은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날렸고, 정욱은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박아 심하게 다쳤다. 그 나잇대 남자아이들의 흔한 주먹다짐이었지만, 다친 정도가 심해 학교 규정에 따라 퇴학 조치까지 내려질 수 있다고 했다. 이 작은 섬에서 학교라고는 단 하나뿐이라 퇴학을 당하면 학교에 다니지 말거나 섬을 나가라는 소리와 같았다. 부모들은 학교를 바쁘게 오갔고 은수는 한숨을 쉬며 여러 번 교장실에 찾아갔다. 교장은 은수의 백반집 단골이었고 정욱의 부모 또한 옆집에 사는 막역한 사이였다. 그 작은 섬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이어져 있었다.


교장실에서 은수와 교장의 대화를 엿들은 반 아이 중 하나가 석현을 향해 손가락질하던 그 순간은 석현에게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그 친구의 말로는 은수가 아들의 퇴학을 막기 위해 내내 묵혀둔 이야기를 토로했다고 했다. 결혼 전에는 정상인 줄로만 알았던 남편은 사실 조현병 환자였고, 결혼 후에 그 병세가 급격히 두드러져 자신이 임신하기 직전부터 정신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석현이 태어나던 날 남편의 환청과 환각 증세는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서울의 높은 빌딩 옥상 문을 열고는 그대로 투신했다는 말도 했다.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은수가 이 섬에 와서 모든 것을 잊고 살려고 마음을 먹어도 절대 넘어가 지지 않는 말이 하나 있었다. 삼키려고 애써도 거대한 바위처럼 그녀를 늘 짓눌러오던 목소리, 그것은 남편이 다니던 정신병원 의사의 것이었다. 아이를 가진 산모에게 이런 말을 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조현병은 유전병이라며, 보통 3대 이상으로 대물림될 수 있으니 그는 아드님이 조금이라도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곧바로 데려와서 검사를 받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은수는 남편이 자신의 출산 날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때만큼 경악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녀가 홀로 섬에 와서 억 겹의 외로움과 다투며 긴 시간 동안 안고 있던 쳇바퀴 같은 고민은 하나였다.


나의 아들이 남편과 같은 병을 앓게 될 운명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교장은 한번만 선처해달라며 초라하게 빌어보는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석현이 좀 보라고, 너무 착하고 성실한 아이지 않냐고,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이번 일은 어떻게든 해결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이야기를 전부 들은 그의 시선은 고장 난 시계 종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은수는 생각했다. 내 남편도 한때는 평범했었다고.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게 한순간이더라고. 그게 참 빈틈없이 자신을 옥죈다고.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교장실 문틈 사이에서 하필 반 아이가 몰래 숨어들어 조그마한 교실에 그 사실을 전파했던 것이었다. 한 아이의 어둡다 못해 구정물이 흐르는 구석이 고작 하나의 놀림거리에 불과하던 시절, 자신도 모르던 치부가 타인의 입을 타고 흘러 반에 울려 퍼졌을 때를 떠올리면 석현은 두 눈을 질끈 감고는 했다. 그리고 다시는 뜨고 싶지 않아졌다.


두 다리만 거쳐도 친지 관계까지 속 깊이 알 수밖에 없는 이 작은 섬에서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것은 단 며칠이면 충분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손을 들고는 선생님에게 조현병이 뭐냐고 질문을 하기도 했고, 섬 어른들은 두 모자를 두고 쑥덕거리기 일쑤였다. 역시 갑자기 섬으로 흘러들어온 것부터 사연이 있어 보이더라니. 단순한 교통사고로 죽었다더니 아니었잖아. 어휴, 난 그것도 모르고 내 자식처럼 거둬줬네. 조현병, 그거 사람 죽이고 그러는 병 아냐? 그거 유전병이라며. 석현 엄마가 그랬잖아. 애가 확 변해서 우리 애들 해코지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티비에서 봤는데 유명한 살인마들 죄다 그 병 앓다가 그 난리 피운 거라더라고. 무서워서 우리 애 어떻게 학교에 보내? 이런 류의 말들은 가시가 돋쳐 굴러지고 거대해져 곧 모든 이의 귀로 전해졌고 깊숙한 혐오로 탄생했다.


친하던 친구들이나 어른들도 그를 하루아침에 외면했다. 한동안 석현은 은수에게 이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은수는 냉랭한 얼굴로 이유도 묻지 않은 채 계속 다니라고 했다. 하루 이틀 더 버티다가 안되겠어서 육지로 이사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은수는 돈도, 뭣도 없는 우리가 갈 데가 어딨느냐고 꾸짖었다. 석현은 의문스러웠다. 엄마는 이 섬에 어떤 이야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지 모르는 걸까? 차라리 학교 따위 가지 않아도 되는데 퇴학을 막겠다고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신을 지옥으로 내모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엄마가 원망스러웠고 자신에게 하루아침에 등을 돌린 세상에 드는 배신감에 어찌할 줄 몰랐다.


그 날도 끔찍한 하루를 끝마치고 석현은 집으로 향했다. 집 마당에서는 엄마가 펄럭이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무를 썰고 있었다. 깍두기를 담글 모양이었다. 석현은 엄마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로 책가방을 방에 내던지고는 문을 잠갔다. 그리고 참았던 울분을 터트리고 한없이 울었다. 바깥에서는 그의 오열하는 소리 따윈 무시한 채 여전히 규칙적인 무가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도 은수에게 대들어본 적이 없던 석현은 방문을 열어젖히고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고성을 질렀다.


“나 정신병자야?”

은수는 여전히 도마 위에서의 손놀림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너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거고, 아님 아닌 거야.”

“왜 하나도 말을 안 해줬어? 왜 나까지 아빠 같은 사람으로 만드냐고!”


석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소리가 멈추고 긴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두 어깨가 작게 들썩이는 듯했다. 늘 강인한 은수의 모습만 보던 석현은 놀라 내뱉던 부정을 정지했다.


“너는 안 그래. 내 아들이니까 내가 알아. 너는 달라.”

“엄마도 날 정신병자로 생각하니까 교장실에서 그렇게 말한 거잖아. 차라리 퇴학을 당하고 말지, 도대체 왜 그래, 왜!”

“아니야. 넌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네가 누굴 때렸다고 하니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넌 아니야. 내 아들이니까 알아.”

떨리는 목소리로 같은 문장을 읊조리던 은수는 말을 이었다.

“이제 더 도망칠 곳도 없어. 여기에선 다 감추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딜 가든 똑같아. 석현아, 엄마 지쳤어.”


은수는 고무장갑을 벗고 눈가를 매만지며 자리를 떴다. 그 짧은 대화는 석현이 그 섬에서 몇 년 더 자라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그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여린 소년의 목소리와 운명을 부정하려던 손짓. 붉은 하늘 아래 울분을 토하는 아들과 묵묵히 그 한을 삼켜내는 어머니. 가혹한 나날들이 지나 어둠은 소년의 가슴에 씨앗으로 심어져 자라났다. 사람들은 석현을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 괴물이 아직 잠들어있을 뿐 깨어나지 않은 것뿐이라고, 늘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석현의 곁에 머물지 못하게 했고 아이들은 괴물과 친구가 되기 싫어했다. 모두가 석현을 피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석현도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자라났다. 석현은 그날 이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 은수에게 아무런 떼도 쓰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