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니 그걸, 힘들게.
"협력사와 조율하여 상품을 기획하고, 고객을 찾아 판매하는 일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면접에서 MD를 왜 하고 싶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변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허허 참".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과 온라인 유통사에서 MD로 3년, 상품기획자로 스타트업에 안착한지 3년째. 감사하고 부끄럽게도 누군가를 선발할 수 있는 면접관이 되었다. 떨면서 면접을 보기만 하다, 팀장이 되서 면접자를 '평가'하는 입장이 되니 사뭇 의아하고 생경할 때가 있다. 어쩌다 이런 위치가 됐나 싶기도 하고, 과거 내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하면서(아! 그래서 내가 떨어졌던 거였구나)뒤늦은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의아한 것 중 제일은 많은 지원자들이 MD가 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이야말로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을 중시하는 추세가 아니던가?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MD는 기본적으로 업무량과 질적인 면에서 스트레스가 굉장히 높은 직무에 속한다. 그 어떤 직무보다 사람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하고, 그만큼 커뮤니케이션과 순발력이 중요하다.
한편, 모든 성과는 숫자로 적나라하게 평가받는다. '수학의 정석'같은 직무 교과서는 없어도, MD의 숫자만큼 각자의 직무 노하우가 있다. 즉, MD의 일은 정성적 과정을 거쳐, 정량적인 결과를 내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골치아픈 일인지 경험 해 본 사람은 안다. 모든게 완벽했다고 생각해도 결과는 처참할 때가 있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
물론 장점도 있다. 신입으로 입사하더라도 권한이 타 직무 대비 꽤 높다. MD 자체가 타 부서 및 외부 거래처와 협업이 워낙 많은 일이기 때문에, 욕심만 있다면 짧은 기간 내 정말 많이 배울 수 있다. MD하다 사업하는 사람도 많다. 업계에 바삭 해 지면 시장 돌아가는 것도 알게 되고, 무엇보다 인적 네트워크가 강력 해 지기 때문이다. 이대로 회사원만 하다 관두면 뭐에 써먹나 싶은 직무는 아니다.
MD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구체적으로 MD가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 지에 대해 알려주는 창구는 많이 없는 듯 하다. 게다가 최근 MD란 개념은 유통, 제조, 온라인, 오프라인 전반에 걸쳐 포괄적으로 쓰이고 있는데도 딱히 이렇다 할 정리가 된 사례도 없다.
나 역시 금융권을 꿈꾸다 그 흔한 유통관리사 자격증 하나 없이 어떨결에 유통사에 취업했다. 이 책은 체계적인 이론을 정리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으며, 타 직무관련 책 처럼 10년 이상 베테랑의 긴 경험이 녹아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6년차 상품기획자 입장에서 생생한 MD의 경험을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직무를 간접 경험하듯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나는 현재 MD가 아니라, MD를 설득하고 세일즈하는 PM(Product Manager)이다. 면접관이 되니 면접을 보던 시절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고 비로소 면접관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언급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비슷한 또래 중에 갑(MD)과 을(협력사)을 모두 경험 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상자 밖에 나와야 비로소 상자를 제대로 그릴 수 있듯, MD를 관찰하는 입장이 되니 객관적인 시점을 가질 수 있었다. 역지사지는 언제나 진리다.
MD를 꿈꾸는 취준생들도 많지만, 제조사나 중간 유통쪽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사람 중에 MD로 이직을 꿈꾸는사람도 꽤나 많다. 한이 맺혀서(?) 그런 경우가 꽤 있는데, 힘들게 이직하고 오히려 후회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부득이하게 갑이라고 칭하긴 했지만, 요즘 MD라고 해도 실제로 돌아가는 현실은 '갑'이 아니라 '을'인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건지 알게 될 것이다.
앞으로 발행할 글들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MD를 제대로 알고 상품기획에 뛰어들기를 바란다. MD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유통 기업 역시 더 괜찮은 업무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길 희망한다. 무엇보다, MD가 진심으로 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