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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lina Nov 17. 2019

디자이너도 MD가 될 수 있다

인터뷰 2. 디자이너가 상품영업팀 팀장이 되기 까지

MD는 유통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조사에서도 상품을 기획하여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고객에게 직접 판매할 수도 있고, 유통사 MD와의 협상을 통해 보다 높은 매출 성과를 낼 수도 있다. 두번째 인터뷰는 유통사 경험은 없으나, 디자이너로 시작해 현재 상품영업팀 팀장이 되신 분과 함께 했다.




디자이너로 시작하셨다고요?

네, 사실 저는 디자이너 출신이에요. 산업디자인을 전공해서 제품디자인을 3년 정도 했었죠. 제품디자인을 하다보니까 3D 작업 등 이런 게 너무 많았어요. 제조에 너무 가까운 디자인보다, 편집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편집 디자인이요? 제가 디알못이라..

편집 디자인이라고 있거든요. 웹에 있는 것도 편집이고, 책 디자인도 편집 디자인이고. 많이들 아시는 웹 디자인도 편집 디자인 분야로 볼 수 있어요. 어쨌든 그래서 2번째 직장을 식품회사 웹디로 갔어요. 온라인팀에 소속되서, 팀 내에서 필요한 이미지를 만들고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등의 일을 했어요.


디자인팀이 아니고 온라인팀에요?


아하, 그럼 같은 팀에 MD나 상품기획자들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 간접적으로 보고 배우셨었겠네요.

..사실 제가 MD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 사수가 갑자기 부재가 되어서 였어요. ㅋㅋㅋ


사수가 디자이너 아니에요? 아, 디자인이랑 영업이랑 다 하셨던 분인가요?

아뇨아뇨. 제 사수는 영업 팀장님이셨고 디자인과는 관계가 없으셨어요. 온라인팀에는 저 디자이너 한 명, 그리고 일반 제품 디자이너 또 한 명. 그런데 저는 온라인팀 소속이었다보니, 제 사수가 온라인영업 팀장님이었던거죠.


신기하네요. 디자이너의 사수가 영업팀장이라니. 디자인팀은 따로 없었나요?

네, 일단 소규모 제조사는 팀 단위로 디자이너를 꾸리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다 특정 직무팀 내 소속된 소수의 디자이너가 있을 뿐이죠.


그렇군요. 그래서 갑자기 상품 쪽 일을 맡으라고 한 거에요?

사수였던 팀장님이 갑자기 잠적(?)을 하셨어요. 당장 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해서 준비도 딱히 없이 갑자기 맡게 됐어요.



생각 해 보니 상품기획자 채용을 하면, 이력서 경력사항에 처음에는 디자이너였다가 MD로 전환하신 분들이 심심찮게 있었어서 의아했거든요.

처음부터 유통사 MD로 시작하지 않는 이상, 제조사 base에서는 디자이너로 시작해서 MD되는 케이스도 많아요(물론 좀 작은 회사여야 되겠지만). 제조사 기반이다 보니까, 디자이너 한테도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얼마나 많이 팔리는 지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약간 부여하는 것도 있어요. 


그것부터가 시작이었군요.

모르겠어요ㅎㅎ 어쨌든 그런 책임감을 부여하는 사내 문화가 강하게 있었어요. 내가 업로드한 제품이 얼마나 팔리고 있지? 고객들이 좋아하나? 등 관심을 가지고 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죠. 그러다 "너가 한번 해 봐" 하니까 자연스럽게 상품 기획쪽 업무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실례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디자이너인데, 하라면 하나요? 하다가도 많이 나가떨어질 것 같은데.

맞아요. 디자이너들이 프라이드가 너무 강하다보니 못 견디는 사람이 아마 대부분일 거에요. 제 생각에 70%는 나가 떨어질걸요.


근데 왜 팀장님은 안 나가떨어지셨나요?

저는 제가 알아요. 디자인 감각이 좀 떨어졌었다는 걸..ㅋㅋ 디자인을 해 보면, 정말 감각적인 애가 있어요. 딱 보면 알거든요. 근데 저는 감각적인 축에 속하지는 않았어요. 뭐랄까, 툴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어요.


음, 어쨌든 상품 운영을 해 보고 싶었다는 생각도 가지고는 계셨으니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겠죠?

그렇게 갑자기 떠맡고 나서 좀 정신이 없긴 했지만, 더 중요한건 매출이 올랐어요. 


오, 재미를 느꼈겠어요. 디자인을 예쁘게 하니 매출도 오른걸까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속도'에요. 내가 원하는 상품 배너나 기획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손으로 빨리 하니까 업무전반적인 속도가 빨라지죠. 바이어 입장에서도 요청하는 것을 훨씬 빨리 하니까, 조금 더 붙어서 이야기 많이 해 주고요.


유통 MD 입장에서 굉장히 편한거네요.

그렇죠. 보통은 MD가 뭐 해달라고 하면, 영업담당자가 그걸 디자이너에 전달한 다음 기다렸다가 보내고, 뭔가 또 고치라 하면 다시 보내고 또 기다리고. 이러다 보면 1주일 금방 가거든요. 결론적으로 MD에게는 엄청 빠릿빠릿한 영업 담당자가 되는 거죠.


유통 MD를 했었다보니 정말 공감되네요. 결국 정리하면, 제조사에서 디자이너가 상품기획을 하면 초반에는 상품지식이 부족해도 나중엔 엄청 가속도가 붙겠어요. 오히려 더 인정 받고.

훨씬 빨라요. 성장 속도만 본다고 하면. 그리고 불필요한 팀 간 마찰이 덜 하거나 아예 없죠. 디자이너 거치면서 해야되는 눈치와 시간 등.. 그냥 내가 다 만들면 되니까.ㅎㅎ


제조사에서 시작 해 MD를 하고 싶다면, 취업 준비 시에 디자인 툴을 좀 배워놔도 좋겠어요.

도움 많이 돼죠. 포토샵이랑 일러스트 기본기만 익히고 가도, 이득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거에요.


일은 두 배로 할 수도 있겠는데요.

네, 일은 2인분. 혼자 할 수 있는게 많고, 하다 보면 결국 혼자 다 하니까. 근데 그래서 저만의 강점이 생긴 것 같고, 저에 대한 신뢰가 쌓여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민감한 질문. 일하면서 유통사 MD로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5년 차에는 유통사 MD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전화 10번을 거절해도 또 전화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회의감이 느껴진 적이 당연히 있었죠. 그래서 사실 지원을 해 본 적도 있기는 해요. 그런데 지인을 통해 자세한 MD의 삶(?)을 듣고 생각 해 보니 갈 곳이 못 된다고 느껴졌어요.


제조사가 차라리 낫다? 

뭐, 그런거죠. 일단 관리해야되는 거래처 숫자 차이가 비교가 안 되니까요. 정신도 진짜 없고. 그 많은 업체를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을까? 하고 겁이 났었어요. 요즘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MD가 진짜 이직률이 높잖아요. 그게 모든걸 설명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도 하고 상품기획도 하셨는데 대우는 확실히 좋아지셨었나요?

대놓고는 못 받았어요. 따로 명절 때나 그럴 때 챙겨주신 건 있었죠. 기본적으로 영업직이니 성과급도 있긴 하고요.


기본적인 성과급 제도는 영업 쪽이라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나보네요.

네, 그리고 pay는 정말 케바케라서요. 기본적으로 분기별 평가를 하고 성장률에 따라 지급해요. 그런데 영업직 특성상 경력이 아주 중요하다보니, 경력직의 경우 연봉 협상 시 성과급여 금액을 아예 선 제안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아요. 신규 입사자들도 그렇고.


유통사 MD들은 권한이 엄청 있으면서도, (돈을 많이 가진) 마케팅팀이나 타 팀에 많은 협조를 구하기도 해야 하거든요. 제조사 쪽도 그런가요?

제조사는 영업팀의 권한이 커요. 마케팅보다 우위죠. MD가 다 그렇지만, 돈을 벌어오는 팀이니까요. 사내 영향력(?)으로는 유통사 MD보다 더 크지 않을까 싶어요. 근데 이건 제가 팀장급이나 됐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제조사 역시 오프라인 채널과 온라인 채널로 나뉠텐데 둘 중 어느쪽으로 가길 추천하시나요?

시장 상황을 보면 온라인 비전이 더 낫다고 봐요. 물론 당장은 오프라인이 더 크지만, 떨어지는 중이니까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담당자 중 업무 강도는 어느 쪽이 더 센가요?

저는 오프라인, 온라인 모두 해 봤어요. 일단 업무 자체가 너무 달라요. 하지만 업무량은 온라인이 절대적으로 많다고 확신해요. 


그런데도 온라인을 해라?

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더 많이 배우고 트렌드도 빨리 익힐 수 있고요.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오프라인 MD보다 온라인 MD가 훨씬 착해요. 욕하는 건 아닌데, 오프라인 초창기에는 구시대적인 갑질 마인드를 가진 MD들이 많았어요. 그땐 어릴 때라 뭐가 뭔지 잘 몰랐죠.


오프라인 MD들이 좀 그런 경우가 있죠. 살짝 에피소드 하나 말씀 해 주실 수 있어요?

신규 매장 오픈 시에 뭘 해야 되는지 알려준 적 없는데, 안 했다고 뭐라 한 적 있어요. 그것도 제 상사한테 제 욕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현타가 왔었죠.


스트레스 많으셨겠어요. 따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있으세요?

솔직히 요즘 찾는 중이에요.ㅎㅎ 예전에는 DVD방에 먹을 거 잔뜩 가져가서 혼자 영화보며 푸는 게 낙이었어요. 


DVD방에 혼자요?

네, 혼자 있는게 푸는 거였죠. 아무도 나한테 말 안걸고, 그냥 혼자 있고 싶으니까.


제조사 출신 MD들은 나중에 어떤 방향으로 커리어를 잡나요?  

유통 MD 처럼 사업하는 분들 많아요. 특히 밴더. 저만 해도, 일하다 알게 된 다른 제조사 분들께 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많이 받아요. 그런데 그만큼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분들도 많고요. 자기 사업 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제조사에서 유통 MD로 이직을 꿈꾸는 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시장을 경험을 하고 싶다면 유통 MD를, 제품을 알고 싶으면 제조사에 그냥 있기를. 


제조사의 MD/영업담당자가 되기에 어려운 사람?

기본적으로 서비스 마인드가 없는 사람. 때로는 그냥 무감각하게 생각할 줄도 알아야 돼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 라는 생각을 하면서 행동 하나 하나에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하면 스트레스 받아서 못 살아요. 그냥 서비스다 생각하고 맘 편히 생각하는 게 나아요.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고.


그럼 제조 MD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영업직은 말을 잘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거짓말을 못할 거 같으면 솔직하게 하고, 솔직하지 못할 거 같으면 거짓말을 잘 해야 돼요. 이도 저도 아니다가는 기싸움에서 져요. 주로 유통 MD와는 가격 협의거든요. 저는 주로 솔직하게 했어요. 어정쩡하게 그냥 안 된다고 말하기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결과적으로 더 나을 때도 많아요. 그리고 말빨? 많이 알면 자연히 말빨은 세지게 되어있어요. 말에 대해 자신없어 하는 분을 보면, 저는 '본인의 상품에 대해 공부를 더 하라'고 이야기 해요.  팔고자 하는 상품에 대해 많이 알아야 돼요. 당연히 MD보다 더 요.


유통 MD와 크게 트러블 내지 않고 업무를 할 수 있는 팁 좀 더 알려주세요.

전화를 먼저 많이 안 하는 편이에요. 먼저 문자나 톡으로 용건을 남겨두면 전화가 오고, 아니면 여유를 두고 제가 전화를 해요. 그리고 전화를 한다 해도, 오전엔 안 해요. 정말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2시까지는 전화 안한다. 오전 시간에 MD들이 정신이 없거든요. 점심시간 지난 뒤에 하는 게 나아요. 그리고 처음 MD와 관계를 틀 때는 퇴근시간이 언제냐고 먼저 물어 봐요. 퇴근 1~2시간 전에 상품 제안을 하는 편이에요. 요일별로 보자면 월요일은 최악이에요. 저도 바쁜데 MD는 얼마나 바쁘겠어요. 정리하면 금요일 오후 쯤 차주 상품 제안을 드리는 편이죠.ㅎㅎ


마지막으로 현직 MD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주세요. 희망사항이라던가?

글쎄요. 상품에 대한 최소한의 특성(?) 등은 고려를 했으면 좋겠어요. 택배비는 오르는데 무조건 무료배송만 된다고 하고, 가격은 거의 유지를 시켜놓으면 제조사만 마이너스에요. 그런 상황에서 유통 채널 정책이 이렇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 계속하면 오래 버틸 업체가 얼마나 될까요? 요즘 소셜 중심으로 어린 MD분들이 많아요. 그나마 경험이 있으신 MD들은 좀 배려를 해 주시는데, 그쪽은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상생이 힘든 구조에요. 상생을 위해 노력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디자이너에서 MD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 물론 일은 2인분이라는 사실이 서글프지만. 또한 사내 권한은 유통 MD보다 강하고 승진 역시 더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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