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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Sep 06. 2018

마음 그릇














"찻잔이에요." 

주인 부부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요? 종지로 써도 예쁘겠는데요." 


주말에는 골동품들이 가득한 벼룩시장에 다녀왔다. 꼭 필요한 구식 물건을 구해보려 나간 것이지만 정작 나를 쪼그려 앉힌 건 이 작은 찻잔, 아니 종지. 


집으로 가져와 나무로 만든 접시 위에 나란히 올려두고, 용도가 불분명한 다섯 개의 작은 그릇에 물을 담으니 

각각의 색이 더 맑고 선명해졌다. 이제 부부의 말처럼 차를 담으면 찻잔이 되고, 내 말처럼 장을 담으면 종지가 될 것이다. 모래를 푸고 향을 꽂으면 향꽂이가 되고, 흙을 푸고 꽃을 심으면 화분이 되겠지. 그러다 급기야는 재를 떨구면 재떨이가 되고, 똥을 담으면 똥통이 되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어 피식 쓴웃음이 났다. 



마음그릇이라고 하나


흔히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 혹은 그것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그릇이 크다'거나 '큰 그릇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물론 어떤 일에 대한 해결방법이나 과정이 호의적이고 건설적인 요소와 효과를 가진 것으로 전제한 것일 테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대개 그 이유가 많이 퍼담을 수 있기 위해서, 라고 말하는데 만약 그게 재라면? 그게 똥이라면?


크거나 작거나 우리의 삶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마음그릇의 크기는 1할의 역할일 뿐, 나머지 9할은 거기에 무엇을 어떻게 담고, 어느떄 무엇을 비워버리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과정과 결과는 전적으로 그릇 주인의 선택이며 책임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무엇을 담아서 누구와 먹으면 이 그릇이 빛날까? 하다가 문득 생각났는데, 나의 엄마는 밥상을 차릴 때면 종종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음식은 큰 그릇에 적게 담는 것이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지



무릇 사람의 마음그릇 사용방법으로도 꽤 좋은 방법이겠군, 생각했다. 




선우,『아주 잠깐 울고 나서』

instagram.com/_seo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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