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의사결정을 앞두었던 어느 밤의 일기
예전에 봤던 책들을 다시 꺼내 보고 다시 읽어보고.. 내 인생 책인 레이 달리오의 <원칙>은 진짜 명저다. 최근 스타트업씬에서 핫했던 <실패를 통과하는 일> 책을 읽다가 중간에 나오길래 꺼내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부분들만 다시 읽고 필사를 했다.
올해 기쁘게도 회사 목표도, 개인 목표도 다 이뤘다. 목표를 이룬 후 약간의 허탈함이야 그렇다 치고, 그것만으로는 행복하지는 않는 것 같다. 결국 누가 함께 했느냐, 어떻게 했느냐, 또 누구와 할 것인가도 나에게는 중요한 가치이다.
조직에 어떤 일이 생기든 분명 예전만큼 불안도가 높지는 않다. 다만 결정의 무게가 커질수록 선택하기 전의 괴로움도 더 큰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면(물론 겉에서 보면 굉장히 확신에 차보였겠지만), 지금은 '해, 무조건 한다, 노빠꾸다. 근데 내가 잘못 선택하는 거면 어떡하지?'에 가깝달까. 한 번의 선택을 잘해야 한다는, 더 신중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가깝다.
그게 뭐가 그리 어렵냐고..?
의사결정권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보통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중에 고른다고 생각하겠지만(나도 과거에 그랬고)
'의사결정'의 어려움은 최악의 경우에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움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강도 높은 욕을 쓰고 싶지만 여기는 진짜 일기장이 아니니 수정했다.)
직감적으로 이건 탁월하다 싶은 수준의 아주 좋은 선택 vs 이와 유사한 좋은 선택과 같은 행복한 고민이라면 둘 다 취했을 때 결과가 좋았다. 약간의 무리를 하더라도 투자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결과가 좋았다.
누구나 이해할 만한 수준의 좋은 선택 vs 적당히 좋은 선택인 경우 눈 딱 감고 하나를 버려야 결과가 좋다. 그냥 좋은 것들의 집합은 대개는 뾰족하지 않은 결과가 되므로.
의사결정의 정수는 다음에 나온다. 안 좋은 선택과 안 좋은 선택 중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도저히 뒤로 한 발짝도 갈 수 없는데 뭔가를 꼭 결정해야 할 때가 진짜 큰 용기가 필요하다.
최근 3년 간 개인 투자를 하면서 알게 된 점인데, 돈이라는 자원만 넣는 투자에서는 리스크 대비 기대수익만 보면 된다.
그러나 조직을 통해 실행하는 사업은,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실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변수가 많다. 거기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얼마의 가설과 직관을 믿고 밀어붙이는 용기는 곧 책임지겠다는 선언이므로, 면피할 수 없고 면피해서는 안 되는 리더라면 이 거지 같은 의사결정을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수반하며, 종국에 잘 되면 팀원들 덕분이고, 안 되면 내 책임이라는 사실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내가 위에 욕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설명이 되었을까?
여기에 이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잠 못 이루는 밤에 어디라도 풀고 싶은 답답함에 끄적여본다.
202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