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 중에 하나가 ‘큰 바위 얼굴’이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이 소설처럼 내가 커서 우리 사회에도 한 사람의 탁월한 리더가 나타나기만 하면 소중한 우리나라도 금방 미국이나 서구 선진국들처럼 특별한 누군가가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냉혹한 현실 사회는 좀처럼 바꾸기가 힘들며 오히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제대로 깨어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며 건설적이면서도 활발한 피드백과 모니터링이 된 사회가 되고 개개인의 마인드가 선진국 시민의식 수준에 다다를 무렵이 되어야 비로소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조금씩 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과정들은 과거에 비해서 (특히 초, 중등 교육은) 아이들 숫자도 상당히 줄고 여러 가지 평가 방법이나 수업 운영 방식에서도 많이 변화되었다. 문제는 결국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는 고등학교 교육이 주입식 스타일을 여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낙후된 교육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정부의 또 한 번의 어설프고 허술한 교육 정책 발표 때문에 온 나라가 다시 들썩이고 교육 현장에서나 각종 학부모 모임에서도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나도 나름 소신을 가지고 두 아이를 사교육 거의 없이 오로지 공교육 범주 내에서 내 나름대로 열심히 강의도 듣고 책 읽고 공부해 나가면서 20년째 성실히 키워 나왔지만 때로는 내 아이들의 앞날이 본능적으로 걱정되는 어쩔 수 없는 학부모인지라 가끔 이런 상황이 또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교육의 마지막 끈은 우리 부모들이 잡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교육학을 어느 정도 공부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알다시피 현재 우리 대다수가 아이들을 맡기고 있는 공교육의 공립학교 시스템은 소위 제2차 산업혁명 때 컨베이어 벨트 위에 하루에도 수없이 만들어져 나와야 하는 기성품을 제작하는 것과 같은 교육방식으로 백 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 방식을 온전히 답습을 하고 있다. 이제는 단어를 꺼내기조차 슬슬 식상해지는 일상 속으로 이미 들어오기 시작한 4차 혁명의 확산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그중 가장 앞서 나가야 할 분야가 미래사회의 주역을 키우는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되레 가장 뒤처진 부분이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힘듦과 경쟁의 상징인 교육이라는 점을 아무도 반박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예로부터 현자는 무슨 일을 도모하더라도 큰 기대 없이 시작해서 큰 실망도 없다고 했다. 첫째의 경우 남들처럼 맹목적인 대학 입시 준비, 단순 진학이 아닌 좀 더 현실적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있어서 몇 해 전부터 특성화고도 염두에 두고 상당한 기간을 공모전 등 스스로 열심히 준비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작년에 고심 끝에 공립 고등학교에 아이는 진학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필요 이상의 지나친 내신 공부와 수능 공부를 하는 것을 첫째에게 여전히 강권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우리 가족을 보고 주위에서는 지독한 학벌 위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용기와 소신 있는 선택이라고 놀라워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재미있고 다소 신기해하는 등 엇갈린 반응들이 나온다. 두 아이들은 학생으로서 학교생활에 기본적으로 충실하되 좋은 공연, 감성 넘치는 다양한 영화와 각자의 취향이 맞는 책들도 짬짬이 보고 각종 유튜브와 요즘 가장 핫한 넷플릭스에 푹 빠져 때론 밤을 새기도 하고 가족끼리 여행도 수시로 즐기며 또래 누구보다도 충만하게 행복한 중, 고등 시절을 보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유독 큰 관문으로 여겨지는 대학 입시라는 명제가 현 10대에게 어느 정도는 중요할 수 있지만 내 아이들의 하루하루 인생 그 자체가 사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수많은 부모 교육을 통해 다양한 상담을 하면서 우리 부부는 깊이 느꼈다. 또한 이런 일상 속에서 좀 더 즐거워야 할 학습과 공부 또한 반복적인 노동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모든 지식이 사실 무한대로 열려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은 또 일면으로 보면 무한 경쟁이라는 다소 더 치열한 환경을 열어놓기도 했다. 내가 굳이 물리적으로 명문대 캠퍼스에 머물러 있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지 좋은 강의와 자료를 접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환상적인 환경이 갖춰진 시대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자칫 2100년까지도 살아나갈 가능성이 있는 시대의 아이들에게 우리가 진정으로 요구해야 할 것은 단순히 명문대 스펙이 아니라 평생 학습으로 스스로를 이끌고 가는 강한 내부의 호기심과 소중한 자신을 스스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자기 주도성에 기인한 지적인 갈망이 아닐까?
인터넷을 무기로 개인의 권력이 어느 시대보다도 강하게 도래하고 있고 뛰어난 지성이 어느 특정 계층만의 특권이 더 이상 될 수 없는 요즘 시대는 어떤 제도로도 개인을 더 이상 겁박하거나 불합리한 상태로 그대로 머무르게만 할 수는 없다. 더 이상 과거처럼 순진하게, 탁월한 어떤 교육부 장관이 나와서 이 교육을 조금 더 바꿔 주리라는 기대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사실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각자도생이면서도 함께 사는 사회이기에 또 같이 상생하는 방향도 늘 도모해야 하며 이미 많은 분들이 내 아이만이 아닌 우리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하는 큰 원을 그리며 옳은 연대를 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개 정치인이나 혹은 장관이 이 나라의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보다 소신 있고 깨어 있는 우리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진정성 있는 학부모들과 지난 촛불 혁명 때도 이미 보여주었듯이 의식 높은 시민들이 이 교육을 점진적으로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바꿔나갈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최근에는 세바시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던 존슨 홉킨스대 소아정신과 전문의 지나영 교수님도 ‘본질 육아’라는 책을 통해서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물결이 큰 트렌드가 되고 문화가 되어 우리 교육이 티핑포인트가 넘어가길 부디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