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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나 Nov 16. 2020

#6 때로는 힘을 빼야 된다.

너무 잘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때도 있다.

어느덧 5월, 우리는 네 번째 영상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 사이 우리가 촬영을 대하는 방법은 조금 바뀌었다. 우리는 더 이상 먼저 스크립트를 짜지 않았다. 대신 우리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찍고, 그 순간 우리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 말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기 시작하니 촬영하는 순간들이 편하게 느껴졌다. 유튜브를 하기 전처럼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쉬고 싶을 때는 쉬어가면 되었다. 촬영이 예전보다 쉽고 재밌어졌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울 때도, 글을 쓸 때도, 회사 생활을 할 때도, 소개팅을 할 때도, 항상 무슨 일이든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힘을 빼라니, 도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힘을 빼보면 안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애쓰면 되려 잘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때로 너무 잘하고 싶은 나머지 긴장을 하고, 욕심이 나고, 이게 잘 안되면 다 망칠 것 같아 불안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이때가 바로 힘을 빼야 하는 때이다. '내 마음처럼 잘 안될 수도 있어, 하지만 괜찮다'라고 생각하면서 긴장을 풀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계속해 나아가야 하는 때. 초보 유튜버인 우리도 힘을 뺄 필요가 있었다.




유튜버가 되기로 한지 두 달째, 또 하나의 변화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것이다. 사실 서로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남편에 대한 나의 신뢰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어떤 장면이든, 어떤 순간이든 예쁘게 담아내 줄 것이라는 믿음. 내가 일부러 예쁘게 행동하지 않아도 예쁘게 담아줄테니, 나는 그저 평소처럼 행동하면 된다는 믿음이 생기니까 촬영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반면, 남편이 편집에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나는 다른 것들을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나눠서 했을 집안일들도 조금 더 하고, 다음 주말에는 뭘 하고 싶은지 계획을 짜는 것도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지금 하는 일에만 집중해도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구멍이 없도록, 내 나름의 신뢰를 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들 덕분에 우리의 네 번째 영상이 유독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게 느껴져서, 뿌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리 브이로그 시청자의 100%가 30대 남성이라는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다. 그래 우리 둘 다 30대니까, 30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째서 100%가 남성인거지?


시청자의 100%가 30대 남자일 경우 구글 알고리즘은 우리가 올리는 영상들이 30대 남성들이 좋아하는 영상이라고 생각하고, 30대 남성들에게 우리 영상을 추천할 확률이 올라간다. 물론 30대 남성분들이 우리의 형상을 재밌게 봐준다면, 그보다 감사한 일은 없다. 그런데 주변 반응을 봤을 때, 우리 영상은 아무래도 30대 남성들보다는 20~30대 여성들이 좋아할 영상에 가까웠고, 혹시 세 번째 영상 때처럼 우리 영상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만 영상이 노출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알고리즘의 마음에 들기 위한 영상을 찍을 필요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알고리즘의 마음에 드는 것은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많은 타입답게,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정답을 찾았다. 바로 남편이었다. 우리가 함께 유튜브를 운영하지만 유튜브 계정은 내 것을 사용하는데, 영상을 업로드를 할 때마다 결과가 너무 궁금했던 남편은 조회수를 확인하겠다고 본인의 계정으로 수시로 우리의 채널을 들어갔던 것이다. 알고리즘 입장에서는 우리가 같이 채널을 운영하는지 알 길이 없고, 이 영상은 30대 남성이 좋아한다고 도장을 쾅! 찍어버렸다.


그 날부터 남편은 본인 계정으로 우리 채널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결과가 궁금하겠지만, 퇴근하고 집에 와서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 이 기회에 조회수보다는 영상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의 채널이 실제 구독자들의 프로필을 반영하게 되기를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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