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점심식사를 하는가는 내 생존이 달린 문제
“회사에서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가 돼요.
다들 누구랑 점심을 먹을지
눈을 번득이거든요.
첩보작전이 따로 없을 지경이죠.”
오래전, 지인 중 로레알(L’Oréal) 재무팀 팀장이 있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스카우트되어 온 인재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회사에서의 기싸움은 칼만 들지 않았을 뿐 그야말로 전쟁터라고 했다. 일에 관해서도 전투였지만,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면, 동료들은 지난 주말을 어떻게 즐겼는지 늘어놓기 바빴다.
A : “난 토요일 저녁에 아내와 함께 OOO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어.”
B : “오호! 거긴 적어도 반년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잖아.”
A : “물론이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명성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B : “기념일이었던 거야? 예약은 언제 했어?”
A : “아니, 기념일도 아니었고 예약도 하지 않았어.”
B : “어떻게 예약 없이 가는 게 가능했지?”
A : “우리 형이 그 레스토랑의 최대 지분 소유자야. 그래서 내가 덕을 좀 보고 있지.”
B : “나는 주말 저녁에 1990년 빈티지의 로마네 콩티를 마셨어.”
A : “그해 로마네 콩티는 웃돈 주고도 구할 수가 없는데, 너 대단하구나.”
B : “와인을 디캔팅한 다음, 잔에 따르는데 벌써 향기로 가슴이 설레는 거 있지?”
A : “맛은 어땠어?”
B : “부드러운 감칠맛 속에 파워풀한 여름의 숨결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A : “와우!”
B : “그것은 마치, 모네의 정원을 거닐다가 불어오는 미풍 같았어. 깊고 달콤한 포도향을 품은 미풍이 내 코와 혀를 상냥하고도 농염하게 애무하더군.”
A : (내 지인 C를 바라보며) “이봐, 자네는 주말을 어떻게 보냈나?”
C : “어, 나?…… 어…….” ('난 그냥 집에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는 대충 이랬다. 거의 예외 없이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그렇게도 자랑을 했다. 어디 월요일 뿐인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그랬다. 다들 자신의 휴가가 어땠는지 낱낱이 보고했다. 첫돌도 안 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돛 단 배를 타고 지중해를 횡단했다는 커플도 있었다. 업무보고보다 훨씬 더 긴박하고 프로페셔널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음과 동시에 상대방의 경험도 듣고 싶어 했다. 끊임없이 “너의 주말은 어땠니?” “휴가는 어떻게 보냈어?”라고 물어오기 일쑤였다. 안타깝게도 내 가여운 지인의 대답은 매번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주말에 뭘 했는지, 휴가 때 어디에 갔었는지 등의 물음에 마냥 집에 있었다고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왠지, “난 루저야”라고 공포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급기야 그가 생각해낸 해법은 <와인 과외>였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했더니 회사일보다 직원들과의 시답잖은 대화에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를 받아서 어쩔 수가 없단다.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그는 규칙적으로 절망했다. 식사 파트너 선정의 문제는 그에게 있어 일생일대 최고의 고민이었는데… 도대체 분위기가 어떻길래 그럴까.
이에 우리는 한 점의 그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작품의 제목은 <루이 14세와 몰리에르의 이침 식사>이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쟝-레옹 제롬 (Jean-Léon Gérôme)이 1863년에 그렸다. 참고로, 루이 14세는 1638년에 태어나 1715년에 사망했다. 이 작품은 루이 14세가 사망하고도 150 년 정도 지나서 그려졌다.
프랑스 국왕은 항상 혼자 식사해 왔었다. 그건 조선시대의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왕은 혼자 식사함으로써 고귀해진다고 믿었다고 한다.
태양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루이 14세도 혼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따분해졌다. ‘나를 재미있게 해주는 사람을 한번 불러볼까?’ 절대권력을 가진 왕국의 태양은 그렇게 유명인사를 불러다 자신의 식탁에 앉히기 시작했다. 쟝-레옹 제롬의 그림에 당시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왜 그림 속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서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 그림을 보고 놀라야 하는 거지?
그림을 자세히 보면, 루이 14세와 몰리에르(Molière)만 앉아있다. 좌측 끝에는 신부님으로 보이는 인물도 서있다.
그림 속 일반인 중 유일하게 앉아 있는 사람은 당대 유명 작가였다. 그는 왕의 특별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왕과 마주 보고 앉아서 식사하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 우리 식으로 치면 인기 드라마 작가인 김수현 님이나, 작품과 방송 출연 등에 두루두루 지명도가 높은 김영하 님 정도가 아닐까. 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한 몰리에르의 본명은 쟝-바티스트 포클랑(Jean-Baptiste Poquelin)이었다. 몰리에르는 그의 예명이자 필명이다.
프랑스에는 이런 말이 있다. “왕의 식탁에는 왕의 동생이거나 왕의 특별한 부름을 받은 자만이 앉을 수 있다”
왕의 식탁 끄트머리에라도 앉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고, 대박사건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런 류의 장면이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왕의 모습을 보고 귀족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각자 돌아가서, 자신의 집에 방문한 사람들을 식탁 주변에 세워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맘에 내키는 사람 한 명씩 불러 앉혀서 권력 놀이를 즐겼다.
놀랍게도 이 전통은 지금까지 관습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주인으로부터 <앉으세요>라는 말을 듣기 전에 앉으면 실례가 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더욱이 그 시절과 똑같진 않지만, 합법적으로 계급과 서열이란 게 존재하는 직장에서는 여전히 건재하다.
로레알(L’Oréal)이 그랬다. 전 회장이었던 고(故) 베탕쿠르(Bettencourt) 여사는 생전에 소탈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녀는 점심시간에 항상 회사 내 식당을 이용했다.
구내식당에 우아하게 입장한 그녀는 늘 앉던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함께 식사할 인물을 고르기 위해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곧 한 사람을 공개적으로 지목하여 자신의 식탁으로 불러 앉혔다. 모든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큰 식탁에 회장님과 단 둘이 앉아 식사한 그는 그날부로 스타가 된다. 목에 깁스를 한 듯 뻣뻣해지며 말에 기운이 실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작은 특혜는 인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 같은 행사가 그저 우연히 생겨난 게 아니다.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버핏과 점심식사 한 번 하는 비용이 246억이라고 한다. 보통 투자 계열 쪽 기업 수준에서 접근하는 편이다. 이 경우 역시, 정보와 투자 감각이라는 좋은 패를 쥐고 있는 버핏의 권력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버핏은 이쪽 세계에서 왕인 셈이다.
회장의 부름을 받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다들 그 높으신 분으로부터 행여나 부름을 받을까 하여 잔뜩 기대했다. 허나 그 영광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회장님의 호명이 끝나면 직원들이 슬슬 흩어져 식사를 했다.
일반 직원들은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과 함께 식사하기를 고대한다. 그 말은, 자신에게 점심 프러포즈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회사 내에서 유리한 입장이 되기 위해, 낮은 곳의 사람은 위를 올려다본다. 식사 파트너가 한번 되어 주십사 굽신거리며 눈치를 보는 것이다. 높으신 분과의 성공적인 독대는 동료와 아랫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지를 견고하게 해 주는 효과까지 있다. 반면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현실에는 한 치의 자비도 없다.
프랑스는 시민혁명의 나라이다. <왕의 식사를 서민에게 대접하겠습니다>라는 모토로 왕실과 귀족의 셰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덕분에 발달한 식문화는 프랑스를 세계적인 미식의 나라로 올려놓았다. 그러기에 프랑스 식탁은 그 자체로써, 왕을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프랑스식 혁명정신을 뜻한다.
한편,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고 있는 프랑스에 아직도 과거의 관습을 유지하며 밥상머리 권력 놀이를 공공연히 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말하자면, 프랑스 식탁은 권력 파괴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권력게임의 놀이터인 셈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프랑스의 현실이란 말인가? 이 얼마나 엄청난 표리부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