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여자가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
예전에 내가 살던 동네의 어떤 프랑스 할머니가 옆집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해 준 적이 있었다.
“옆집 여자 미쳤으니까 조심해요. 쉿!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그래서 나는 그 이웃 아줌마가 정말 미친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를 만나 보고는 깜짝 놀랐다. 너무나도 정상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왜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을까? 훗날 알게 된 사실은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그 이웃 아주머니는 진짜 미쳤던 게 아니라 단지, 화난 감정의 표현이 솔직했고, 속마음을 큰 소리로 표현하는 푼수 스타일이었을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프랑스에서는 부정적 감정을 거칠게 표현하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손가락질받는다는 것을.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더러 그런 표현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학부형이 찾아와서 상담 중에 언성을 살짝 높였다면, 선생님들 사이에서 그 학부형은 ‘미친X’ 으로 통해버린다. 그래서 화가 날수록 조근조근 목소리를 낮추는 기술이 필요하다. 다혈질인 나로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화가 났는데 목소리가 낮아질 수가 있는지 언제나 의문이다.
내가 목소리 톤을 조금만 높여도 프랑스 친구들은 “코리안 드라마 찍냐?”라고 놀린다. 불에 기름을 붓는 소리다. K-문화에 자부심이 있는 내게 하는 소리치고는 너무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로 들린다. 그러나 나의 날것 그대로의 감정 표현법은 그들이 소화하기 힘든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프랑스에서 20년을 넘게 살아도 감정처리방식이 여전히 한국식이라는 게 놀라울 뿐이다.
화가 나거나 우울하더라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 그랬을 경우 꼭 탈이 났다. 적절하게 가려가면서 결정적 순간이 왔을 때, 내게 엿 먹인 상대방의 뒤통수에 일격을 가해야 고수이다. 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드러내면 하수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바로 앞에서 마구 화를 내버리고는 뒤끝이 없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것을 죽음까지 간직할 수도 있다. 내가 겪어본 프랑스인들은 백이면 백 다 뒤끝 작렬이다. 직접적으로 표현만 하지 않을 뿐이지.
최근에 한국 드라마를 하나 보았는데,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프랑스 친구들이 화가 난 나를 한국 드라마에 비유했던 명백한 이유가 내 눈에 보였다. 등장인물이 화를 내는 장면이 심각할 정도였다. 상도 뒤엎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아주 주변을 박살 내버렸다. 타인 앞에서 부정적 감정 표현을 극도로 꺼리는 그들의 시선에 한국 드라마는 해도 너무 한, 미친드라마였다.
그래서 내가 세어봤다. 분노 표출 장면이 몇 번 나오는지. 어떤 에피소드에는 주인공은 물론, 조연들까지 화를 내면서 테이블 위의 물건들을 팔로 싹 쓸어서 바닥에 패대기치는 장면이 10번을 넘겼다. 1시간 남짓한 방영시간 동안 거의 5~6분에 한번 꼴로 극렬한 분노 장면이 나온 것이다. 울랄라! 결국 나조차도 민망해서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참고로 그 드라마는 인기도 많았고 시청률도 높아서 그 해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 정서를 정말 잘 드러낸 드라마였다. 말하자면, 지극히 한국식으로만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이었던 거다.
프랑스 파리에는 도시 한복판에 공동묘지가 있다. 몽파르나스, 팡테옹, 몽마르트르, 앵발리드, 페흐 라쉐즈 등의 명소를 비롯하여 여러 성당에도 묘지가 있다. 연고를 찾을 수 없는 가여운 600만 구의 뼈가 지하 미로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카타콤(Catacombe)이란 곳도 있다.
한국에서는 공동묘지가 도시와 동떨어진 시골이나 산속에 있는 게 보통이다. 수많은 괴담과 납량특집 전설이 발생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무섭고 음산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공동묘지는 삶의 터전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 그들은 ‘죽음’이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와 관련 있는 사람들은 교회나 성당에 안치되기도 하는데, 그 위치는 신자들이 예배드리는 바로 아래쪽 지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집에서 도보로 5분 정도의 거리에 <페흐 라 쉐즈 (Père-Lachaise)라는 공동묘지가 있다. 파리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묘지이다.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요지에 위치한데다, 넓이는 자그마치 45헥타르에 달한다.-1헥타르는 가로 100미터, 세로 100미터의 크기이다. 파리의 금싸라기 땅 한가운데 있기에는 심하게 큰 게 아닌가 싶다.
짐 모리슨, 에디트 피아프, 오스카 와일드, 카뮈, 마르셀 푸르스트, 이브 몽땅, 쇼팽과 같은 유명인들이 주로 묻혀있다. 묘비에 적혀있는 그들의 일생을 읽어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들 중 하나이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사람들 무덤도 있다. 아마 50년/100년 계약 등으로 묘지 부지를 구입했던 부유층이었을 것이다. 후손의 무관심으로 황폐해진 무덤도 있고, 꽃으로 꾸며진 무덤도 있다. 최근에 유명을 달리한 사람의 무덤일수록 화려하다. 어떤 무덤은 아늑한 오두막 같아서 그 속에 들어가 한번 누워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죽음 체험 이벤트인가?)
말이 공동묘지이지, 봄에 꽃피고 가을에 단풍지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평소엔 한가하지만, 주말이나 방학 때는 사람들로 꽤 붐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식물원 느낌도 있기에 관광객도 많이 몰린다.
얼마 전, 늦은 오후에 묘지를 산책하다가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쌀쌀한 가을 날씨에, 하늘은 잔뜩 흐렸다. 모인 사람들은 고인의 가족 및 친척들로 보였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게 있었는데, 모인 사람들 대다수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햇빛도 비치지 않았는데 말이다. 또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모두가 너무 덤덤했다는 것이다. 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뿐더러 흐느끼는 사람조차 없었다. 선글라스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걸까.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처리에 있어 동. 서양은 서로 다르다.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반대이다. 한마디로 말해, 서양인들은 긍정적 감정을 드러내고, 부정적 감정은 감춘다. 그에 비해 한국인들은 긍정적 감정을 감추고 부정적 감정은 드러낸다.
긍정적인 감정을 먼저 보자면, 서양인들은 부모 앞에서 애인과 키스하거나 애정표현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사랑의 감정은 긍정적 감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반대로 우리는 어른 앞에서 사랑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 자녀가 아무리 귀엽고 배우자나 애인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집안 어르신들 앞에서 표현해선 안 된다.
상상해보라. 과연 부모님 앞에서 애인과 껴안고 뽀뽀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강심장이 우리 중에 몇이나 될지.
부정적인 감정을 보자면, 서양인들은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은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자신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장례식 장면에서도 등장인물이 커다란 선글라스를 착용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걸 감추려고 사용하는 것이므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선글라스를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인들은 슬픔과 분노와 같은 감정을 굉장히 쉽게 드러낸다. 상을 당한 경우, 땅을 치고 통곡하는 모습을 주저하지 않고 보여준다.
삼국시대 때, 부모 상을 당하면, 상주가 산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곡하는 풍습이 있었다. 요즘에야 3년상이라고 하는 풍습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가족들이 큰소리로 울며 슬픔을 표출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이다. 오히려 '보여주기 식'으로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장례식 절차 역시 동양과 서양이 판이하게 다르다. 유교적 전통으로 진행되는 한국의 장례식은 주로 종합병원 장례식장이나 시마다 구비된 전문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게 보통이다. 드물게 자택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양의 장례식은 주로 교회나 성당에서 치른다. 그들은 “너 농담하니? 장례식을 어떻게 병원에서 치른다는 거지? 너무 신기하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시신이 들어있는 관을 교회나 성당에서 좀처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장례식을 보면서, 어느 누구도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어떻게 살아가든 인생은 고통, 후회, 상실을 동반하고 종국에는 '죽음'이 찾아온다. 그 사실을 겸허히 그리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게 바로 "깨달음"이 아닐까.
아무튼, 서양에서는 조금만 언성을 높이거나 눈물을 보여도 손가락을 관자놀이 근처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미쳤냐고 한다. 그러므로 부정적 감정표현은 될 수 있는 한 정제하고 긍정적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일전에 <곰 같은 여우 VS 여우 같은 곰>에 올렸던 팁을 공유할까 한다.
1. 속에 품고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 보여주지 말 것! - 그것이 상대방에게 느끼는 불편함이나 증오일 경우는 더더욱!
2. 내가 가진 재능을 자랑하듯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조심할 것! - 그로 인해 상대가 나에게 질투를 느끼거나 경쟁심을 느낀다면 오히려 나에게 손해이기 때문.
3. “저 사람 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다”라는 상태가 되어야 할 것! - 감정을 1에서 10까지 분류했을 때, 부정적 감정을 4 이하로 표출하지 말고 긍정적 감정을 6 이상으로 표출하지 말 것!
4. 모든 사람에게 공평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5. 칭찬이나 선물은 반드시 1대 1로 할 것! - 두 명 앞에서 한 명만 칭찬하면 나머지 한 명은 당신의 적이 된다. - *여행 다녀온 후 10개의 선물을 10명의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죽 나누어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각각의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줘야 효과적.
6. 가진 게 없고 약할수록 강한 척 하라. 가진 게 많고 강할수록 약한 척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