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도 유래를 모르는 프랑스 풍습
내게는, 소크라테스처럼 난처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는 프랑스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녀의 이름은 파트리샤. 원래 그 녀석은 친구의 친구였다. 부담 없이, 그냥 게임이나 하며 놀고먹자고 뭉쳤던 어느 나른한 토요일 오후의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섬기지 않고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형당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에서 에릭 와이너(Eric Weiner)의 주장은 약간 달랐다.
소크라테스는 실패자요 루저였다. 그는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철학’을 직판했다. 머릿속 실타래가 풀리지 않으면 밤새도록 한 군데에 우두커니 서있기 일쑤였다. 때론 다음날 오후까지 계속 그 자리에 서있기도 했다. 결코 평범치 않은 인물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던졌던 수많은 질문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철학의 본질이라나?!
소크라테스가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는 짐짓 미운 일곱 살 배기 꼬마와의 좌절스러운 말싸움과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와 이야기를 시작했던 사람은 논쟁에 쉽게 말려들었다. 어떤 주제였든 간에 그는 달아나는 사람을 끝까지 졸졸 쫓아다녔다. 일단 소크라테스와 얽히면 철저하게 탈탈 털리기 전에는 그를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에릭은 그런 류의 대화를 ‘전기가오리’에 뇌를 쏘이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을 짜증 나게 하지 않는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라고 한다. 말만 들어도 벌써 피곤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소크라테스야 말로 ‘괴짜’ ‘또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진정한 철학자였다. 아니, 오히려 '빌런'에 가까웠다는 게 더 맞을지도!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 이유에 대해 우리가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그가 높으신 분들께 무례한 질문을 너무 많이 던져 괘씸죄에 걸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차단(block)당한, 철학사의 첫 번째 순교자가 아닐는지.
파트리샤가 꼭 그랬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대화를 시작해서 상대방이 문을 쾅 닫고 나가기까지 계속 조잘거리며 황당하게 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잘 될 거라는 말보다는 잘되지 않을 백만 가지 이유를 들이댄다.
나 : « 넌 왜 이렇게 부정적이니? »
P : « ‘부정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지! »
일요일이 되어 교회에 갈라치면, 그녀로부터 대뜸 메시지가 날아온다.
P : «야~ 가서 하나님에게 내 안부 전해줘!»
나 : «그래 알았어. »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오는 또 하나의 메시지.
P : «하나님께 내 안부 전했어?»
그제야, 친구를 위한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 : «아 참, 깜빡했네, 다음엔 잊지 않을게.»
P : «넌 살아있지도 않는 신을 믿는구나. 적어도 네 선에서 신을 죽이고 있군.»
나 : «아니거든? 신은 살아계시거든?»
P : «어디 있는데? 장소를 말해주면 찾아가서 만나보게!»
나 : «오호~ 너 이제 하나님을 믿기로 한 거야?»
P : «당연하지. 난 하나님을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해!»
아니, 이건 또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사실, 파트리샤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부처님도, 천사도, 귀신도, 다 믿으면서 또한 믿지 않았다. 무신론자가 아니다. 이름도 생소한 불가지론자(Agnostic)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바로 또는 뒤집어서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한 번 더 의심하며, 증거가 있다면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인간은, 신의 존재를 가늠할 수도 없고 존재 자체를 규정지을 수 조차 없다. 고로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나는 크리스천이고 그녀는 불가지론자, 나는 창조론자, 그녀는 진화론자, 나는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인, 그녀는 긍정적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인 프랑스인…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이 없다. 종교, 예술, 철학, 문학 등 사사건건 모든 면에서 약 올리듯 걸고넘어지는 그녀의 질문을 보면 얄미워 죽겠다. 우주의 도움이라도 받아서 친구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평소의 나긋나긋하고 생글생글한 얼굴로 나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무턱대고 미워할 수만은 없다.
그렇게 자칭, 타칭 똑똑하고 현명한 그녀에게 허점이 하나 발견되었으니…. 그녀를 놀려먹을 만한 절호의 기회가 왔지 뭔가! 얏호!
한 번은 파트리샤와 함께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카트에 이것저것 담았다. 그러다 육류 코너에서 그녀가 생닭 한 팩을 들고 바구니에 담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P : “음, 이건 일요일에 해 먹어야 할 통닭!”
나 : “왜? 닭고기를 꼭 일요일에 먹어야 해? 평일에 먹어도 되잖아.”
P : “아니지, 닭고기는 일요일이지!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닭고기는 일요일에 먹어왔었어”
나 : “프랑스에서 일요일에 닭고기를 먹었던 유래를 알아?”
P : (한쪽 입술만 올리고 씩 웃으며, 큰 소리로 야단치듯)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해오던 풍습인데…”
나 : "아니, 프랑스인인 네가 그걸 모른단 말이야?"
P : "............"
프랑스인인 파트리샤가, 그것도 자타 공인 철학자에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지 않은 게 없는 그녀가 자기 나라 풍습의 유래와 역사를 모른다고???
“너, 헛똑똑이였구나!”
근데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어느 인기 유튜버의, “일요일 점심엔 통닭 한 마리를 먹어야지”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프랑스인과 결혼한 그는 자신의 일상과 프랑스 문화를 접목한 비디오로 무척 인기를 끌었다. 그는 영상에서, “일요일에 통닭을 먹는 먹는 이유가 뭔지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익히 알고 있던 정답을 예상하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정말 실망스럽게도, “그 이유는? 바로 <간편해서>입니다.”라고 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내가 다 민망했다. 그들이 진정 그 이유를 모른단 말인가! 에이 아니겠지. 그냥 해본 농담일 거야.
프랑스 민족을 프랑스어로 “골 (Gaulle)족”이라고 한다. 라틴어로는 프랑스 사람들을 ‘갈리아(Gallia) 지역에 사는 사람’ 이란 뜻으로 ‘갈루스(Gallus)’라고 불렀다. 그런데 하필 이 단어가 ‘닭’을 가리키는 라틴어 단어 ‘갈루스(gallus)’와 발음이 같다. 동음이의 단어인 것이다.
프랑스 사람, 즉 골족이 지나갈 때 주변국 사람들이 “저기 갈루스가 지나가네”라고 했다. 그들은 ‘프랑스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말했겠지만, “저기 닭들이 지나가네” 로 들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은 체구가 작으면서 민첩하여 ‘닭’에 비유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부르던 명칭으로 인해 점차 ‘닭’은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다.
앙리 4세 때는 프랑스가 닭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건이 나온다.
그 스토리는, 지난번 글, 프랑스 국왕은 미개한 방식으로 음식을 먹었다?! 에서도 언급했던 카트린느 드 메디치라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부유한 상인의 가문, 메디치(Medicis) 가의 딸로 태어났다. 1533년에 프랑스로 시집오면서 그녀는 이탈리아 요리사를 대동했다. 또한 친정에서 사용하던 식기류와 조리도구를 함께 가지고 와서 프랑스 식문화를 하드웨어적으로 많이 발전시켰다.
그녀가 시집오기 전의 프랑스는 식사할 때 손으로 집어 먹을 만큼 미개했었다는 것은 매우 씁쓸한 사실이다.
카트린느가 시집올 때의 나이가 열네 살이었다. 남편인 앙리 2세도 같은 나이였다.
카트린느는 왕족이 아닌 상인 집안 딸이라고 프랑스인들로부터 멸시당했다. 자신을 향한 부당한 처우에 대한 보복인지 타고난 천성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하고 냉철한, 권력 지향주의적 여성이 되었다.
왕궁 내, 권력을 향한 피바람과 온갖 권모술수 가운데,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던 자신의 남편과 3명의 아들을 연달아 왕위에 등극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섭정을 하던 말년에는, ‘종교’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프랑스를 하나로 통일시켜 더 큰 세력을 가지겠다는 야망을 키웠다.
막내딸, 마르게리트를 나바르(Navarre)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작은 나라) 왕자와 결혼시키면서, 결혼식을 빌미로 위그노(Huguenot)들을 초대해 한날한시에 모두 죽여버렸다.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였고, 나바르는 개신교 국가였기에, 양국 간의 결혼식은 숨어있던 개신교도들을 초대하는 매우 훌륭한 핑계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 (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 »이다. 지금도 파리의 카타콤(Catacombe)에 가면 신원을 알 수 없는 600만 구 시신의 뼈가 쌓여 있다.
프랑스에는 장 칼뱅(Jean Calvin)이라는 종교개혁가가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뛰어난 재능이 다 한 가지씩은 있다. 그것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라고 외쳤다. 훗날 그가 주창한 « 직업 소명설 »이 자본주의의 원조가 아닌가 하는 평을 듣기도 했다.
어쨌거나 칼뱅의 직업 소명설로 인해 개신교도들은 모두 자신의 재능과 신체를 이용한 특출 난 기술이 한 가지씩은 있었다.
섭정 왕후의 핍박을 피해, 위그노(Huguenot)라 불리던 개신교도들은 이웃나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철강 전문가들은 독일로, 시계 제작 장인은 스위스로… 이름난 기술자들이 전 유럽으로 흩어졌다. 프랑스는 안타깝게도 뛰어난 장인들을 이웃나라에 다 뺏기는 결과가 되었다.
이렇게 개신교도들을 다 처단하고 나서 카트린느가 종교를 구심점으로 하여 강력한 권력을 쥐는가 했는데, 욕심이 과했던 걸까. 그녀의 아들들이 차례로 죽어버렸다.
그래서 프랑스는 어쩔 수 없이, 개신교도들을 제거하기 위해 도구로 결혼시켰던, 먼 친척 나바르 왕을 앙리 4세로 등극시킬 수밖에 없었다. 카트린느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웃지 못할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앙리 4세로 즉위한, 헨리케(Henrike)라는 이름의 나바르 왕자는 원래 개신교 출신이었다. 이때까지 핍박받던 개신교도들이 ‘이제 우리가 기를 좀 펴고 살아보나?’라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 파리를 얻기 위해서는 일요일에 예배가 아닌 미사를 드릴 가치가 있다 »라고 하며, 즉위와 동시에 가톨릭으로 개종해 버렸다. 아마도 그는 정치적 야망이 매우 컸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허락하는 제도적 정당성을 마련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이 바로 « 낭트칙령 »이다.
그리고 그는 공포했다.
«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짐은 왕국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 »
« Si Dieu me donne encore de la vie, je ferai qu’il n’y aura point de laboureur en mon Royaume qui n’ait moyen d’avoir une poule dans son pot le dimanche. »
그 유명한 «1주 1닭 » 공약이다.
앙리 4세는 정말 나라의 경제를 끌어올려 국민에게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먹였다. 그 후로 프랑스는 지금까지 <일요일엔 닭고기지!>라는 문화가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닭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면서 프랑스의 수도원이나 성당의 꼭대기에 십자가와 함께 걸린 닭 모형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수탉이 프랑스의 상징으로써 늘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주변국들은 수탉의 울음소리가 허풍스럽고 품위 없는 소리라며 조소했다. 실제로 나폴레옹 집권 시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 치고 ‘닭’이 너무 힘없는 동물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래서 더 힘센 동물로 교체되었다가 나폴레옹 집권이 끝나자 다시 닭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가 스승을 배신했던 순간, 수탉의 울음소리로 인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수탉을 악을 물리치는 새, 태양을 맞이하는 새로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자, 이제 우리는 웬만한 프랑스인들보다 프랑스에 대한 깨알 같은 지식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일요일에 닭고기를 먹는 프랑스인!
그럼 우리는 일요일에 무엇을 먹을까?
짜파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