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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Nov 28. 2022

나의 지적 연인 안토니 이야기

남녀 간 우정이 가능하다 VS 불가능하다

나에겐 젠더와 나이를 뛰어넘은, 안토니라는 정말 좋은 친구가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우정은 언제나 열띤 논쟁거리이다. 어렸을 때는 남녀의 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남녀 간에 그 어떤 흑심도 품지 않은 순수한 우정은 상당히 드문 일이라고 여겨졌다. 적어도 이 친구를 만나기 전까진…….


안토니는 나보다 열살이나 넘게 어리다. 하나 사고방식이나 인품에 있어서는 나보다 열다섯 살은 족히 더 성숙한 것 같다.


그와의 첫 만남은 직장에서였다. 그는 내가 일하고 있던 부서에 새로 들어온 신참이었다. 나는 선임이자 사수로서 그의 상관 격이었다. 처음 볼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그의 묵직한 자세가 참 맘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업무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 가르쳤다. 나만의 꿀팁과 비법도 아낌없이 전수했다. 아마 그 녀석이 경거망동하는 스타일이었거나, 얕은수를 쓰는 비열함을 보였다면 나 또한 그에게 골탕을 먹이고 심술을 부렸을지 모른다.


그는 일을 배우는 속도가 빨랐고 위기 대처능력도 뛰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라! 이 놈 봐라?!
참 희한하게 괜찮은 녀석일세!’

싶었다.


구약 성경, 잠언에는, “물에 비치면 얼굴이 보이는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품은 마음이 상대의 거울에 비치고, 상대방의 상태도 내 마음속 거울에 비쳐 서로 훤히 알게 된다는 뜻이다.


그의 성실하고 진중한 마음과 부하직원을 아끼는 나의 마음이 서로 맞닿아 우리는 매우 독특한 팀워크를 형성했다. 흔히들 말하는 ‘바이브’가 맞아서일까. ‘케미’가 맞다고 해야 하나. 함께 일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우리는 자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오후 6시에 퇴근한 후 바로 회사 근처 바에 앉아 어떤 때는 커피나 차, 어떤 때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이어가곤 했다.




한 번은 바 종업원이 문 닫을 시간이니 계산해 달라고 했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우리는 식음을 전폐하고 여덟 시간 동안 부동자세로 대화에 열을 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화 주제는 예술, 문학, 철학, 정치, 사회문제 등 다양했다. 회사 동료나 상관의 험담은 거의 한 적이 없었다. 내 인격이 고매해서가 아니다. 그와 마주 앉으면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원래의 성향은, 글은 써도 말은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손에 음료 한 잔 들고 서너시간 서서 대화를 나눠야 하는 서양식 칵테일파티는 내가 가장 꺼리고 싫어하는 일이다.


잡담이 곧 경쟁력이라는데,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그 ‘잡담’이란 게 내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안토니를 알게 된 후로, 핑퐁처럼 주고받는 대화의 진정한 묘미를 알게 되었다.


안토니처럼 상대방의 지적 수준과 관심사를 꿰뚫어, 맞춤식 대화를 유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알아 갈수록 정말 희한한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참나, 당신만 즐거웠지, 안토니는 괴로웠을 거라고! 퇴근 후 집에 가지도 못하고 붙잡혀서 새벽 2시까지 상사와 대화를 하다니……. 그야말로 업무의 연장선상이 아니고 뭐겠어?”라고.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안토니가 정말 힘들었다면, 매일 그렇게 나와 대화를 나누진 못했을 거니까.


“그러니까!! 안토니는 매.일. 감정을 숨긴 거라고!!”

“아니, 이 사람¹아!! 그 입 다물지 못하실까?!?!”


어쨌거나, 대화를 끝내고 헤어질 때 안토니가 항상 클리셰처럼 내게 했던 말이 있다.


“사라! 행복해야 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째 안토니가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추구하곤 있으나 현실의 벽으로 인해 공허하게 외칠 수밖에 없는, ‘역설’로만 들리는 건 왜일까?


헐, 설마 안토니가 나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 말을 한건가? 진정 내가 눈치도 없는 멍충이인가? 그와의 대화를 끝내줘야하나?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각주1. 여기서 '이 사람'이란, 내 마음의 소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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