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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pr 10. 2019

 열여섯. 치킨 누들 수프

아이들 점심 도시락 메뉴가 늘 고민이다. 


물론, 급식 먹어도 되긴 하지만 아이들이 도시락을 선호한다. 아마도 점심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런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이곳 학교 점심시간은 보통 25분 정도이다. 도시락을 싸가면 점심시간 시작하자마자 도시락 들고 자리에 앉아 먹으면 된다. 즉 배식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밥 먹을 시간이 길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급식을 먹으려면 줄 서서 음식을 받아야 하는 시간도 걸리니까 말이다. 


그런데 메뉴가 항상 고민스럽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지만, 아무리 다문화 인종이 어우러져 산다지만, 김치 같은 한식은 아주 민폐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도시락으로 한식은 과감히 패스한다. 언젠가 한 번은 새우 넣고 볶음밥을 싸줬다. 큰 아이는 친구들이 냄새가 좋지 않다고 했다며, 다시는 싸가지 않겠다 선언했다. 도시락 메뉴에서 볶음밥이 제외되는 것은 둘째치고 혹여나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메뉴 선정을 더욱 고민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샌드위치, 핫도그, 과일 등등을 싸는데 맨날 그게 그거인 메뉴이다. 워낙에 점심을 간단히 먹고 마는 문화라, 저걸 먹고 배는 찰까 싶긴 한데, 점심시간이 워낙 짧다 보니 푸짐하게 싸줘도 다 먹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아이가 느닷없이 도시락으로 치킨 누들 수프를 싸 달란다.

헉! 어, 어, 그래.......


큰 아이는 웬만한 국수류는 다 좋아한다. 최고 애정 하는 음식 중 하나는 삼계탕 되시겠다. 우리는 삼계탕을 끓여서 대부분 닭죽을 끓여먹지만, 여기에서는 치킨 수프에 누들을 넣어 먹는다. 이곳 사람들에게 치킨 누들 수프란 일종의 영혼의 음식이라고 해야 할까? 감기 기운이 있어 으슬으슬 거리면 치킨 누들 수프를 먹는다. 일종의 민간 감기약 되겠다. 몸을 보호하고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복날 삼계탕을 끓여먹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야 하려나?


치킨 다리만 12개 들어있는 팩을 사다가 끓인다. 저번에는 우리 식대로 황기, 헛개나무, 대추 등 여러 가지 약재들을 넣고 끓였더니, 또 여기 애들이 그 냄새를 싫어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통 양파와 통마늘, 파뿌리만 잔뜩 넣어 닭다리를 끓인다. 후추도 넣으면 좋은데, 아이들이 고춧가루보다도 후추를 더 매워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넣지 않기로 한다. 간단한 음식이긴 하다. 끓여내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말이다.  한 솥을 끓였다. 다 끓여 식히고 난 다음 소분을 한다. 


닭다리 하나(살 발라내서), 국물 다섯 국자가 한 패키지이다. 

닭다리가 12개였으니 총 12개의 치킨 누들 수프 포장이 완성된다. 커다란 통에 세워지게 넣은 다음, 냉동실에 얼려둔다.  닭죽만 먹어본 우리는 국수도 넣어서 먹어? 하며 의아하겠지만, 맛이 꽤 괜찮다. 가벼운 고기 국수 같은 느낌이랄까? 


큰 아이는 질리지도 않고 좋아하는 한 가지 음식을 집중해서 먹는 습관이 있다. 그래도 워낙에 키도, 체구도 작은 편인지라 뭐든 먹기만 해라 하는 심정으로 매끼 만들어 바친다. 아마 일주일 내내 점심 도시락으로 싸 달라고 할 것이다. 아침에 도시락을  쌀 때는 포장 하나 꺼내 냄비에 넣어 데워내고, 국수(소면이나 쌀국수)를 따로 삶는다. 보온 통에 고기 섞인 수프를 담고, 국수는 다른 통에 따로 담는다. 가끔 아이의 허락이 떨어지면 수프에 쪽파를 쫑쫑 썰어 몇 개씩 넣기도 한다.


별거 없어 보이는 도시락이지만 바쁜 아침에 끓이고, 삶으려면 복잡스러운 메뉴. 그래도 입 짧은 아이가 텅텅 빈 도시락 통을 가지고 오게 하는 마법의 메뉴. 너무 맛있었다며, 더 먹고 싶었는데 시간이 모자랐다고 아쉬워하는 아이를 보며 입이 귀에 걸리는 메뉴.


이렇게 나에게도 치킨 누들 수프가 영혼의 음식이 된다. 이곳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의미로.


소박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 메뉴를 위해 나는  얼마나 동동거리며 불 올리고, 끓이고, 삶아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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