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나는 왜 그 10년을 통과해야 했을까?

흉운이 품고 있던 희망의 씨앗

by 찐스마일

사람들은 내 지난 10년(임자대운)을 사주 용어로 ‘흉운(凶運)’이라 불렀다. 차가운 물이 범람해 내 삶을 통째로 휩쓸어버린 시간. 눈에 보이는 성취도, 결과도 없이 그저 물속에 잠겨 지내야 했던 계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분명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10년을 한마디로 ‘나빴다’고만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그 시간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필요했던 흉운’이라고.


그 시절의 나는 늘 정답을 찾으려 했다. 남들처럼, 아니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었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삶, 결과로 증명되는 삶이 맞는 길이라 믿었다.


그런데 인생이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아무리 애써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멈춰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질문이 생겼다. 사는 게 뭘까?


정답을 맞히는 게임처럼 살 것인가?아니면 주어진 시간을 그냥 살아내는 것인가? 예전의 나는 전자였다. 지금의 나는 후자에 가깝다. 인생은 결국, 맞히는 게 아니라 버티고 지나가는 쪽에 더 가깝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편안함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 그게 좋은 삶이라고.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상하게 마음이 더 괴로워졌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단순히 편한 삶보다, 어딘가에 쓰이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걸. 그걸 깨닫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그 시간은 나를 많이 무너뜨렸다. 특히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예전에는 쉽게 판단했다. “왜 저렇게 살까?” 그런데 내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 말이 더 이상 쉽게 나오지 않았다.


운이라는 게 얼마나 큰지, 사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 존재인지 직접 겪고 나니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 한마디가 생겼다.


돌이켜보면 그 10년은 무언가를 이루는 시간은 아니었다. 대신 나를 조금씩 바꾸는 시간이었다.

급했던 마음이 느려졌고, 단단하기만 했던 생각이 조금은 풀어졌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안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바뀌고 있었다. 서른일곱에서 마흔여섯까지. 누군가는 그 시간을 흉운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이제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그건 나를 멈춰 세우고, 돌아보게 하고, 다시 시작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흔일곱. 대운이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를 만나고,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안다. 그 10년의 물속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 흉운이 아니라, 내 인생에 꼭 필요했던 한 계절로.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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