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남겨진 츄리닝 바지

스물일곱, 인생의 가드레일이 사라진 날

by 찐스마일

내 가장 젊은 날...27대운으로 들어가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이.
하지만 내 기억 속의 27살은 빛나기보다 무너져 내렸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말한다. 27세부터 36세까지, 계축대운.


37대운이 나를 철들게 한 깊은 수련의 시간이었다면, 27대운은 그저 나를 부수고 지나간 지진의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고난 끝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27대운은 그렇지 않았다. 그 터널을 빠져나온 뒤 내 손에 남은 것은 성장이 아니라 지독한 피로와, 오래 남은 흉터뿐이었다.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나의 뿌리였다. 나는 1남 4녀 중 셋째 딸이다. 부모님은 함께 가게를 하셨고, 늘 바쁘셨다. 다섯 남매를 키우며 가게를 지키느라
밤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는 삶이 당연한 줄 알았다.


27세가 되던 해 1월, 저녁 무렵 부모님이 매출을 정리하며 나누던 대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버지가 며칠 뒤 병원 예약이 잡혀 있다는 이야기였다. 치질이 심해져서 한번 가봐야겠다는 말.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직장 초년생으로 나 역시 버거운 하루를 살던 시기였고, 부모님은 늘 든든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재검을 권했다.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혹시 모르니까.”
그 말 뒤에 이런 결과가 숨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며칠 후,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 시절, 암은 지금과 달랐다. 완치라는 말보다 사형선고에 가까운 단어였다. 그리고 이미 말기였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대장암 4기. 수술도 의미가 없다는 말과 함께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집안은 몇 달간 숨죽인 듯 조용했다.


어느 날, 병원을 다녀오는 엄마와 아빠를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적이 있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부모를 ‘부모’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다.


늘 단단해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게 강하지도 않았을 두 사람이 다섯 남매를 키우며 얼마나 버거운 삶을 살았을지 그제야 마음에 와 닿았다.

아버지는 1월에 진단을 받고 그해 8월 마지막 날, 결국 돌아가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전조는 있었다. 내가 26살이던 겨울, 작은언니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유난히 짜증이 많았다. 엄마는 “요즘 너희 아버지 사람이 변했다”고 말했다.


결혼식 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신부보다 아버지의 야윈 얼굴을 먼저 걱정했다.

“살이 너무 빠지셨어요.” 매일 보던 우리는 몰랐다.


아버지가 이미 몸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걸.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한가운데, 병원에 간다며 급히 벗어두고 간 아버지의 츄리닝 바지가 놓여 있었다. 그 바지를 보며 아버지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부모의 죽음은 아주 슬플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이 “슬프다”고 말할 수 있을 때는 아직 진짜로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몇 달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1월까지만 해도 엄마와 가게를 오가며 일상을 살던 사람이었기에 처음엔 잠시 집을 비운 것 같았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갔다. 그게 참 신기했다. 미래를 대비하며 성실히 살아온 아버지에게 그 미래는 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재는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가끔씩, 그러나 아주 선명한 통증으로 찾아왔다.

위로 나오지도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는 가시. 그것이 내가 알게 된 부모의 죽음에 대한 자식의 슬픔이었다. 그렇게 인생의 가장 든든한 가드레일이 사라진 도로 위에서 나는 방향을 잃었다.


27살, 계축대운의 지진은 이렇게 나에게서 한 그루 거목이 쓰러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때가 내 10년의 지진이 시작된 시발점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길 위에서 펼친 운명의 지도]

군겁쟁재(群劫爭財)의 비극: 내 사주에서 아버지는 재성(財星)인 '물(水)'의 기운이다. 그런데 27세 계축대운에 들어온 약한 물인 '계수'는 나의 강한 화토(火土)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증발해 버렸다. 명리적으로 이를 '군겁쟁재'라 하는데, 이는 재성으로 상징되는 아버지와 경제적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아픔으로 나타났다.


사고구비(四庫具備)의 지각 변동: 원국에 있던 진(辰), 술(戌), 미(未)에 대운의 축(丑)이 더해져 지각 변동의 글자인 네 개의 흙이 완성되었다. 이 거대한 땅들이 서로 부딪치며 일어난 지진은 내 인생의 가장 든든한 가드레일이었던 아버지를 앗아가며, 평온했던 삶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해갈되지 않는 가시: 대운의 계수(癸水)는 나의 마른 땅을 적시기엔 너무나 적은 물이었다. 마치 목에 걸린 가시처럼 넘기지도 뱉지도 못하는 그 먹먹한 슬픔은, 충분히 해갈되지 못한 채 증발해 버린 계수의 성질과 닮아 있다.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37세, 나는 왜 그 10년을 통과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