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껍데기 졸업장이라도 간절했다

지진속에서 나는 버텼다

by 찐스마일

스물일곱 살의 나는 초보 컴퓨터 강사였다.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새벽 수업과 주말 수업을 맡았다. 남들이 기피하는 시간대였다. 잘 나가는 강사는 아니었지만, 젊었고 열의가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많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질문 속에 살았다. 사는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맞는 건지. 철학적인 질문들이 밀물처럼 머릿속을 채웠다. 아버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사셨다. 그러나 그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도 그렇게 살다가 끝나는 건 아닐까.’ 장례식 이후, 나는 새벽 수업을 정리했고 주말 수업도 내려놓았다. 오전 네 시간 수업만 남기고 삶의 속도를 줄였다. 수입은 줄었지만, 더는 미친 듯이 하루를 쪼개고 싶지 않았다.


대신 영어학원에 등록했고, 저녁이면 구도서관에 갔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사범대 편입을 결심했다. 강사는 언젠가 한계가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컴퓨터교육과는 지역에 단 한 곳뿐이었고, 졸업생도 적었다. 합격만 하면 교사 자리가 보장될 것처럼 보였다. 지원했고, 예비 3번을 받았다. 가능성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예비 1번까지 올라갔지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기운이 빠졌다. 그래도 준비한 편입을 허투루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학벌이라도 갖자.’ 강사 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 스스로를 설득하며 지역 국립대 공대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그러나 적응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상고를 졸업하고 전문대를 거쳐 편입한 나에게 공업수학, 미적분, 물리, 화학은 벽에 가까웠다.

나는 명백히 문과형 인간이었다. 그때 만난 화학 교수님이 아직도 기억난다. 연세가 지긋한 분이었고, 인격적으로 따뜻했다. “잘할 필요는 없지만, 알아두면 삶에 쓰이는 게 많다”며 가볍게 공부하라고 말해주던 분이었다. 등산을 함께 가기도 했다.


학점은 C인지 D인지였다. 사실상 F만 면한 수준이었다. 성적이 나온 날,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했다. 나는 20대 후반이고, 강사 일을 한다고. 공대 공부는 따라가기 어렵다고. 졸업장이 필요해서 이 학교에 왔다고. 사립대 등록금은 감당할 수 없었다고.


교수님은 한참을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해한다. 이 사회에선 껍데기라도 필요할 수 있지.” 그 이후 우리 과 전체의 학점이 한 단계씩 올라갔다. 나를 포함해서.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길게 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상고에 갔던 이야기, 겨우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마음에 남았던 아쉬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마음에 남는 건 다 해보고 살자’고 결심했다는 이야기까지.


돌아오는 길,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동기들의 도움과 나의 진심 덕분에 나는 무사히 졸업을 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인생에서 잘한 선택 중 하나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렇게 20대는 막을 내렸다. 남들은 결혼을 하고,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아가던 나이였다.


나는 연애도, 결혼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매일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정착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 길을 찾고 있던 사람이었다.

[길 위에서 펼친 운명의 지도]


지진의 틈바구니에서 피워낸 꽃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지각 변동이 가장 심했던 계축대운(27~36세)의 전반부였다. 흔들리는 땅 위에서 보낸 그 시간들을 명리학적으로 해석해 본다.


병술년 : 뜨겁고 단단한 벽을 마주하다 천간으로 들어온 인성(丙)은 배움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게 했지만, 지지의 술토(戌)는 사주 원국과 만나 거대한 흙의 충돌을 일으켰다. 문과형 인간인 나에게 공대의 물리와 화학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던 것은, 이 시기 운의 흐름이 매우 딱딱하고 메마른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정해년 : 마른 땅을 적신 인연의 물줄기 인성을 돕는 정화(丁)와 함께 비로소 지지로 해수(亥水, 재성)가 들어오며 마른 사주를 적셔주기 시작한 해다. 화학 교수님의 따뜻한 배려와 동기들의 도움으로 졸업을 한 것은, 이 시기에 찾아온 물의 기운이 굳은 땅을 부드럽게 녹여주었기에 가능했던 결실이었다.


인성(印星)이라는 생존의 껍데기 '껍데기'라 표현했던 졸업장은 명리학적으로 인성(印星), 즉 사회적 자격과 권위를 뜻한다. 인성과 비겁으로 이루어진 사주에서, 비록 전공은 낯설었을지라도 그 학위를 취득한 행위는 인생의 가드레일을 스스로 복구하려 했던 가장 눈부신 생존 전략이었다.


일요일 연재
이전 07화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남겨진 츄리닝 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