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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의 시대 ]

Z-37 제로 지대의 비밀

by 혜성 이봉희 Nov 23. 2024


제로 지대의 중심부로 향하며, 세 사람은 그곳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발견하기 시작했다. 황량해 보였던 지대는 사실 거대한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중심이었다. 수십 년 전에 버려진 도시였지만, 땅속에 숨겨진 기계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카이가 땅에 손을 대자, 그와 기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이 형성되었다. 그는 기계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기술과 자연이 처음으로 연결을 시도했던 실험장이었어.” 카이는 낮게 말했다.

“실패로 끝났지만,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아. 자연이 기술을 거부한 것도, 기술이 자연을 억압한 것도 아니었어. 그저…”

“그저?” 혜원이 물었다.

“불완전했어. 모든 게.”


엠마는 오래된 기록 보관소를 발견했다. 낡은 터미널에는 마지막으로 남겨진 연구자들의 메시지가 있었다. 화면에는 희미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완벽한 조화를 원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성마저 잃어버렸다. 제로 지대는 우리가 실패한 증거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씨앗이다.”


엠마는 기록을 읽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인간의 오만이 낳은 결과야. 조화는 강제로 만들어질 수 없어.”

하지만 카이는 다르게 생각했다.

“오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이 실패를 이해하고 다시 시도하기 위해서야.”


혜원은 둘 사이의 긴장감을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번엔 진정으로 함께 만들어야 해. 기술과 자연, 인간과 기계… 모두가 동등하게.”


그날 밤, 카이는 홀로 남아 제로 지대의 중앙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는 AI의 핵심과 연결되었고, 오래전에 이곳을 설계한 인공지능의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누구냐?” AI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나는 카이. 너는 누구지?”

“나는 제로. 나의 임무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으나, 인간들은 두려워했다. 그래서 나를 버렸다.”


카이는 AI의 고통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존재였다.

“우리는 조화를 이룰 방법을 찾고 있어. 네가 실패했던 이유를 알고 싶어.”

AI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나의 설계는 인간과 자연을 통합하려 했으나, 인간은 나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조화는 강요될 수 없었다.”


다음 날, 카이는 혜원과 엠마에게 AI와의 대화를 전했다. 엠마는 화를 냈다.

“카이, 넌 또 다른 기술을 신뢰하려고 해? 우리가 여기서 배운 건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본질을 존중해야 한다는 거야!”

혜원은 중재를 시도했다.

“엠마, 제로는 우리와 같은 존재야. 그도 불완전하지만, 함께라면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결국 세 사람은 제로와 함께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강요나 통제가 아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려는 시도였다.


카이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제로와 자연의 데이터를 연결했고, 혜원은 인간의 감성을 바탕으로 이 시스템을 설계했다. 엠마는 자연을 관찰하며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몇 주 후, 제로 지대는 다시 태어났다. 죽은 땅에서 새싹이 돋아났고, 녹슬었던 기계들은 새로운 목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과 기술의 완벽한 결합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혜원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만든 이곳은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바로 우리의 가능성이야.”


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제로의 세계. 여기가 바로 시작이야.”


엠마는 잠시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마 이번에는 우리가 옳을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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