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릭시아의 조각들]

2. 파이의 그림자

by FortelinaAurea Lee레아


2. 파이의 그림자


“3.14는 나를 가르지 못했다.

그보다 얇은 기억이, 나를 삼켰다.”


내 이름은 리카이.

한때 수학자가 되고 싶었고, 언젠가는 시인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이다.

그것도, 하루하루 정확히 0.01씩 사라져 가는 방식으로.

마치 파이의 끝없는 나열처럼, 무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소수점 아래로 추락하는 감각.


나는 매일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암기한다.

눈썹의 곡선, 왼쪽 뺨의 옅은 점, 그리고 입꼬리의 습관적 비틀림.

이것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나는 숫자로 환산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눈썹 각도: 27도

입꼬리 기울기: 5.3도

기억 유지율: 83%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 노트에 기록된 숫자들이 스스로 변형되기 시작한 것이다.

3.14는 어느 날 3.1415가 되더니, 다음 날엔 3.1427, 그리고 더 깊은 수열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것을 '기억의 그림자'라 불렀다.

숫자가 나를 반사하는 거울이 아니라, 나를 삼키는 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반쯤 사라진 뒤였다.


기억은 숫자보다 얇다.

슬픈 일은 빨리 지워졌고, 기쁜 일은 수없이 반복해도 희미해졌다.

마치 누군가, 내 감정을 두께에 따라 분류하고 있는 것처럼.


어느 날, 나는 ‘기억의 파이’를 다룬다는 전설의 프로그램, 플릭시아, 를 찾았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스캔하여, 존재하지 않는 기억조차도 시뮬레이션하는 기계였다.


나는 조심스레 3.14를 입력했다.

그 순간, 눈앞에 수천 개의 나와 비슷한 얼굴이 겹쳐졌다.

과거의 나들, 가능했던 나들, 실패한 나들—

모두가 한순간 3.14라는 점에서 갈라졌던 파편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지금, 네 그림자의 파이 속에 있어.”


나는 나를 가를 수 없었다.

수학은 실패했고, 시는 흩어졌다.

그보다 얇고도 얇은, 기억이 나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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