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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숙 Sep 17. 2023

까를로비 바리 온천, 메테르니히 별장, 바이로이트

2023년 4월 18일

-또 한 번의 3박4일 패키지여행이 시작됐다. 숙소주인인 데친샘과 강선생, 우리 팀 아홉 명 전원이 함께 움직이는 일정이다. 짜인 일정대로 움직이느라 잠시의 여유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고,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차가 심하게 흔들려서 가뜩이나 멀미 체질인 나는 휴대폰을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해서 4일간 기록 가운데 건물 이름이나 도시 이름, 인물의 기록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검색해서 수정하는걸로 하고 일단 써나가기로...


-3박4일 일정 중 가장 먼저 간 곳은 까를로비 바리. 카를로비바리는 체코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카를로비 바리 주의 주도로 온천과 스파로 유명한데, 특히 마시는 온천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곳이다. 우릴 인솔한 강 선생이 길거리 가게에서 파는 온천수 전용 컵 하나 기념으로 사서 온천수가 나오는 콜로나다가 보이면 물을 받아 마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온천수가 수십 종의 광물이 포함된 미네랄 온천수라서 위장병에 좋고 변비에도 좋고 고혈압 심장병 신장 노화방지 피부병 등등에 좋다고 하는데, 솔직히 믿어지지는 않았다. 

까를로비 바리 온천수뿐 아니라 나는 온천의 효용 자체를 안 믿었다. 그래서 피 맛이 난다는 온천수를 한 잔도 받아 마시지 않았다. 괜히 잘못 마셨다가 종일 구역질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기와 달리 나름 민감한 데가 있어 비린 생선을 먹거나 덜 익은 고기나 닭고기를 먹고 나면 속이 메슥거리는 증세에 시달린다. 특히 컨디션 안 좋을 때 비위 안 맞는 음식이나 음료를 먹으면 죽음이다. 안 그래도 멀미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는 판인데 속 메슥거림까지 겪게 되면...

이런 내가 별종인 듯, 내 주변 사람들, 특히 여자들 대부분은 온천을 되게 좋아하는 듯했다. 저번 부다페스트에 갔을 때도 동행들 둘은 새벽같이 일어나 유럽에서 제일 좋다는 세체니온천을 다녀왔지만 나는 그 시간에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걸로 만족하며 시간을 보낸 터였다. 오늘도 나 말고는 다들 체코에서 가장 좋다는 까를로비 바리의 온천에 몸을 담그고 싶어 했다. 물론 패키지라 그럴 수도 없었지만. 

온천 아니라도 구경은 할만했다. 도시 안을 흐르는 테플라강을 중심으로 온천건물과 콜로라도가 멋진 외양을 자랑하며 서 있고, 반대쪽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전통과자 가게, 기념품 가게, 명품숍, 목욕 용품 가게 등 온갖 상점들이 늘어서 둘러보기도 좋았다. 둘러보더 셋 다 쇼핑에 열을 올렸는데, 나는 빨간 스니커즈 하나를 사서 그 자리에서 신었다. 신고있던 건 어디다 집어넣고.

성수기에는 휴양을 위해 찾는 사람이 넘친다는 이 도시의 효용성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14세기 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4세라고 한다. 까를로비 바리라는 지명도 카를4세의 이름 카를로비에 바리(vary)를 붙인 데서 유래된 거라 한다.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까를4세가 1440년대 사냥 중 사냥개에게 물린 사슴이 샘 속에 들어갔다 나아서 나오는 걸 보고 ‘워따 여기가 온천인게비~~’ 하여 개발이 시작됐고, 괴테를 비롯해 1700년대 유럽의 셀럽들이 많이 방문했다고 하는데, 아이돌이나 유명인을 내세운 광고와 다를 바 없는 마케팅 수법이려니 싶었다.      

-까를로비 바리에서 잠시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라즈네 킨즈바르트. 오스트리아 수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옛 여름 별장이 있는 곳이다. 가이드에 의하면 1773년 메테르니히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별장을 지어 본거지로 활용한 듯도 한데, 이건 자료를 찾아봐야 확실할 것 같다. 

아무튼 메테르니히 집안이 워낙 짱짱했는데 아버지와 조부도 재상쯤 되는 직위를 누렸고, 메테르니히 본인도 일찌감치 정치에 입문,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본거지로 활용했다는 여름 별장이 거의 관청 규모인 것만 봐도 세력이 겁나 셌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1800년대 빈 회의 때 활약으로 떴다는데, 내가 또 남의 나라 정치가 이야기는 조금 길어지면 혼선이 생기고 하품이 나오는지라 별장 정원을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하느라 가이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한마디씩 들리는 말로 짐작해보면 엄청 보수주의자였던 듯.

앙시앙레짐(구체제회복)에 앞장서면서 전쟁 후 국가 간 세력이 한 군데로 기울지 않게 조정을 잘해 자신의 입지도 다지고 권력의 중심에 선 듯했다. 한마디로 밀땅으로 국가간 (억지)평화를 유지한 외교전략가랄까.   

 

-메테르니히 때문에 학구적인 탐방을 한 후 바이로이트로 이동, 동네를 산책했다. 다소 이른 시간에 도착해 배가 고파질 때까지 바그너 축제극장, 변경백 극장이 있는 곳 주변을 산책하다 엄청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겨우겨우 자리를 예약했다며 생색을 내는 데친 샘의 말대로 유명하긴 유명한지 식당이 굉장히 넓었는데 거의 만석이었다. 

떡처럼 찐득찐득한 감자 말고는 특별할 게 없는 음식 네댓 가지를 가운데 놓고 앞접시에 덜어서 먹는 어수선한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많이 마시는 사람은 두세 잔씩, 기본만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딱 한 잔, 무알콜주의자 두 사람은 영잔. 

술이 좀 됐고 분위기가 산만해졌을 때 부다페스트를 같이 갔던 3인조 셋이 먼저 일어나 나왔다. 어디 카페라도 가서 차라도 마시려고 했는데 도대체 들어갈 데가 없었다. 카페도 술집도 거의 다 문을 닫아버린 뒤였다. 저녁 여덟 시밖에 안 됐는데 왜 다들 문을 닫냐고! 온 동네 헤매다 겨우 한 집 발견했다. 바다에서 표류하다 섬을 발견한 조난자처럼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맥주와 커피를 각자 기호대로 시키고 또 다른 여행의 꿈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다. 그리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에서의 우리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독일의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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